RJ 저널 23년 12월호
전쟁, 그리고 회복적 정의
2023 세계불꽃축제가 지난 10월 7일에 여의도에서 열렸고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최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방산업체인 한화입니다. 폭약을 연구하면서 나오는 기술이 불꽃놀이의 기술과 다르지 않으며 다만 폭죽의 불꽃은 하늘에서 전소하지만 폭약의 불꽃은 목표물에 부딪히며 연소한다는 것 이 차이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물은 사람입니다. 한화는 이 행사를 주최하면서 전 세계에 자신들의 뛰어난 폭약과 발사기술을 홍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2년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무기박람회인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 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23)가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되었습니다. 34개국, 550개 업체가 참가해서 2.320개의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정부는 연일 역대 최대 규모, 최대 수주액이라고 자랑합니다. 여기에는 민주 시위를 탄압하고 국내외 분쟁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국가와 업체들도 참가했습니다. 우리는 왜 모든 무기가 향하는 곳은 상대일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걸까요? 왜 우리가 수출한 무기의 최대 희생자는 민간인이며 우리가 판매한 무기는 돌고 돌아 결국 우리를 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최근 5년간 한국의 무기 수출 규모가 74%나 급증했고, 이 무기들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국인 미국,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호주에 판매되었습니다. 'K방산'이 폴란드에 서 "7.6조원 잭팟"을 터뜨렸다는 보도들에는 우리가 수출한 무기로 죽음을 맞았을 우크라이나의 여성과 어린이의 얼굴들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의 어머니 고향은 황해도 사리원입니다. 1950년 6월, 외할머니께서는 내일 만나자며 어린 세 딸을 먼저 피신 시키셨지만 당신은 끝내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셨습니다. 12살, 초등 5학년... 몽금포에서 백령도를 거쳐 목포와 진도로 이어진 피난길은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 외롭고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요즘들어 고생스러웠던 당시의 이야기를, 사무치는 그리움과 전쟁의 참혹함을, 극한에 몰린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다시 이야기하십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져도 너와 내가 결코 이 전쟁의 참상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1983년 한 방송사의 이산가족상봉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하염없이 눈물지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90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아직도 어머니의 어머니를 그리워하십니다
전쟁은 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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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J 저널 23년 12월호
전쟁, 그리고 회복적 정의
2023 세계불꽃축제가 지난 10월 7일에 여의도에서 열렸고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최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방산업체인 한화입니다. 폭약을 연구하면서 나오는 기술이 불꽃놀이의 기술과 다르지 않으며 다만 폭죽의 불꽃은 하늘에서 전소하지만 폭약의 불꽃은 목표물에 부딪히며 연소한다는 것 이 차이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물은 사람입니다. 한화는 이 행사를 주최하면서 전 세계에 자신들의 뛰어난 폭약과 발사기술을 홍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2년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무기박람회인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 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23)가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되었습니다. 34개국, 550개 업체가 참가해서 2.320개의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정부는 연일 역대 최대 규모, 최대 수주액이라고 자랑합니다. 여기에는 민주 시위를 탄압하고 국내외 분쟁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국가와 업체들도 참가했습니다. 우리는 왜 모든 무기가 향하는 곳은 상대일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걸까요? 왜 우리가 수출한 무기의 최대 희생자는 민간인이며 우리가 판매한 무기는 돌고 돌아 결국 우리를 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최근 5년간 한국의 무기 수출 규모가 74%나 급증했고, 이 무기들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국인 미국,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호주에 판매되었습니다. 'K방산'이 폴란드에 서 "7.6조원 잭팟"을 터뜨렸다는 보도들에는 우리가 수출한 무기로 죽음을 맞았을 우크라이나의 여성과 어린이의 얼굴들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의 어머니 고향은 황해도 사리원입니다. 1950년 6월, 외할머니께서는 내일 만나자며 어린 세 딸을 먼저 피신 시키셨지만 당신은 끝내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셨습니다. 12살, 초등 5학년... 몽금포에서 백령도를 거쳐 목포와 진도로 이어진 피난길은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 외롭고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요즘들어 고생스러웠던 당시의 이야기를, 사무치는 그리움과 전쟁의 참혹함을, 극한에 몰린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다시 이야기하십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져도 너와 내가 결코 이 전쟁의 참상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1983년 한 방송사의 이산가족상봉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하염없이 눈물지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90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아직도 어머니의 어머니를 그리워하십니다
전쟁은 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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