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문제의 회복적 접근에 대한 우려와 기대 l 이재영 대표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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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문제의 회복적 접근에 대한 우려와 기대

이재영 대표 / 한국회복적정의협회



 가족 구성원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갈등, 범죄)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많은 우려와 관심을 동시에 받아왔다. 회복적 정의 분야의 학문적 연구와 실천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긴 나라에서는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가족문제’를 다루는 시도가 과연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다른 (사법)영역에 비해 가족문제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은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듯이 ‘가족이라는 특수한 관계 안에서 회복적 정의 접근이 시도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특수 관계상에서 벌어지는 피해 행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해-피해 관계와 전혀 다른 관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또한 확대가족까지 생각하면 물리적, 정신적, 관계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어 다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숙제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회복적 정의가 다루어야 할 ‘가족문제’를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눠 보면 세 가지 정도의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우선 부부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정서적, 관계적 폭력행위를 일컫는 가정폭력, 최근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부모나 친척에 의한 아동학대, 그리고 범죄의 영역은 아니지만 가족간의 관계위기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 사이에 생기는 가족갈등과 가정교육 범주에서 행해지는 훈육으로 인한 관계상의 문제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그 어떤 영역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기 쉬운 가정 내의 문제와 가족간의 갈등에 대해 회복적 정의 접근이 어려웠던 것은 어쩌면 가정이라는 매우 ‘사적’ 영역이 갖는 문화적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공동체 재통합을 위한 수치심의 활용으로 잘 알져진 호주의 세계적 회복적 정의 전문가 존 브레이스웨이트(John Braithwaite) 박사는 ‘회복적 정의와 가족 폭력1)’이란 책에서 가족문제의 회복적 접근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1994년부터 시작된 초기 ‘공동체 재통합을 위한 수치심의 활용 실험(RISE)’2)에서 가족문제를 제외했던 것에 대해 이후에 반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가정폭력 문제의 회복적 접근에 대한 페미니스트들과 지역의 여성운동 단체들의 우려와 저항을 정치적으로 극복할 자신감이나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많은 경우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성과 아동 들의 입장 및 안전이 가장 큰 고려사항이었던 여성단체들에게 회복적 정의는 주가해자인 남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장치’로 오해하기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폭력에 대한 회복적 접근이 뉴질랜드의 FGC(가족집단 컨퍼런스) 등의 회복적 사법 실천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면서 여타 다른 회복적 정의 접근과 비슷하게 피해자의 정당성 확보와 자신의 고통과 필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확보해 주고, 이후 재발 감소에도 영향을 준다는 결과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정폭력에 대한 회복적 접근이 확대되어 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을 위해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크게 보면 안전과 권한부여(Empowerment), 프라이버시 문제, 공동체 역할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진중하고 사려 깊은 고려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 회복적 접근에서 강조하듯이 권한부여라는 것은 피해자인 여성과 아동이 자신의 피해와 필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가해자인 남편(아빠)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유형과는 다른 고려가 필요하다. 결국 직접적 대면이 아닌 간접대면 방법(편지, 화상, 미세 조정subtle mediation 등)에 대해 어느 유형보다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민감한 고려사항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요소는 가해자 변화를 위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족이라는 특수관계 속에서 힘의 불균형에 익숙해 있는 피해자의 자기회복을 위한 피해와의 직면, 상대와의 심리적 직면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가족의 문제는 극히 사적 영역이다. 따라서 문제가 문제로 드러날 때는 이미 그 피해의 심각성이 높은 단계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폭력에 대한 회복적 접근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균형이 요구된다. 즉 당사자들의 사적 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개입하는 사람들(사법관계자, 진행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보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회복적 접근은 그 자체로 이미 개인 프라이버시 영역을 넘어 드러낸다는 의미이지만, 당사자 특히 피해자의 복잡한 양가감정(애정과 증오)을 고려하여 사적 영역임을 보장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 따라서 진행자는 문제의 영향과 해결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의 역사 속에 실존하는 다양한 감정적 여정을 따라가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존 브레이스웨이트 박사는 “대형 금융사건보다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크게 피해를 보고 있지만 가정 내의 문제에 대한 사유화(Privatization)가 실제로 더 큰 사회적 해악을 만들어 왔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회복적 정의는 정의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더불어 가족문제라는 문화적 편견을 극복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가정폭력의 회복적 접근에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가족, 지역사회)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필요를 만들어낸다. 가족의 문제가 자동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환원되는 환경은 여전히 부족공동체 성격을 띠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FGC의 시도처럼 원가족 구성원의 건강한 역할부여와 확장된 지역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현대적 의미에서 공동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시도해 볼 만하다. 또한 사회의 사회복지 영역과 회복적 정의 접근의 만남은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가정폭력의 확대는 공동체성과 반비례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제한적 현실의 한계 속에서도 공동체의 역할을 높이는 길을 찾는 것이 회복적 정의가 가정폭력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배경을 장기적으로 높이는 요소가 된다.


 결론적으로 보면, 가족문제에 대한 회복적 접근은 그 어떤 유형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회복적 접근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선입견 또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아동학대의 사회적 문제화나 전통적 개념의 부부와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회복적 정의 실천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확대되고 있는 외국의 가족문제에 대한 회복적 접근이 시사하는 바를 잘 살펴보고 심도 있는 연구와 실천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1) Restorative Justice and Family Violence, Heather Strang & John Braithwait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2) Reintegrative Shaming Experiments(RISE):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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