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저널 12월호] 왜, 회복적 대화모임이 필요한가? _ 유기남 (생활인권전문상담사)

2022-02-21
조회수 655


왜, 회복적 대화모임이 필요한가?


유기남



갈등조정자문단 사업을 지원하면서

 

지난 4년간 학교폭력 갈등조정 및 관계회복프로그램 지원업무를 담당하면서 직접 상황을 보고 듣고 느낀 점은 학교폭력 사안이 있는 모든 곳에는 회복적 대화모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그 누구라도 그들의 자녀가 학교폭력에 관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피해 학생 측에서는 자녀가 그 피해로 인하여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며 분노하고, 가해 학생 측에서는 뭔가 자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찾으면서 어떻게 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때부터 서로의 입장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지고 상황은 힘들어지게 된다.

 

수십 명의 동급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행으로 코뼈가 골절되고, 학교에 오면 두통으로 학교생활이 힘들어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은 학생이 있었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심리적 상처가 깊어서 일 년이 지난 일이지만 주도했던 친구를 마주했을 때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던 학생이 회복적 대화모임으로 관계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가끔 학부모들이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해서 학교에서의 사안처리가 미흡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전화를 한다. 가끔은 교사들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 시간이 넘게 자녀의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때론 울기도 하고, 학교와 상대학생 학부모의 태도에 분노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이야기를 한다. 상담자인 나는 당연히 학부모의 하소연을 끝까지 듣고 상담을 하고 있지만, 그 내용들은 학교와 상대학생 및 학부모가 듣고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들이다.

 


00중 신체폭력으로 코뼈가 골절된 사례

 

어느 날 수민이(가명) 어머니가 첫 번째 전화를 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흥분되어 있었으며 원망이 가득한 음성으로 담임교사에 대한 불만을 먼저 말했다. 자녀가 같은 반 학생에게 맞아서 코뼈가 골절이 되었는데 담임은 자녀를 보건실로 보내기는커녕 사실확인서를 받고 사과문을 쓰게 하는 등 응급처치보다 사실확인과 사과를 주고받게 했다는 것이다. 억지 화해를 시켰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로 인하여 늦은 시간에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연이어 휴일까지 겹쳐서 곧바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여서 후유증이나 더 상태가 나빠지게 될까봐 가슴을 졸였다고 했다. 코 안이 부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자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며 담임교사가 일처리를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따져 물었다.

 

또 한 가지는 상대학생들 중에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자녀를 괴롭힌 학생도 있고, 폭행이 있었던 상황에서 싸움을 부추긴 학생들도 있었다는 등등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는 자녀에게도 잘못이 있어서 쌍방으로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여 코뼈 골절로 많은 피해를 받은 자녀가 가해학생이 된다는 부분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첫 번째 통화에서는 사안발생 이후에 상대학생 측의 대응 태도와 학교에서 미흡하게 대처한 일로 화나고 속상하다는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학교폭력 사안처리에 대한 안내를 하는 것으로 상담을 마쳤다.

 

두 번째 전화가 왔던 날, 수민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결 안정을 찾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분노와 불안이 섞인 음성이었다. 지속적인 괴롭힘과 코뼈 부상을 당하게 원인을 제공한 학생과 그쪽 어머니가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으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치료비 부담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다행이라고 하며 화가 좀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아직 자녀가 치료 중인데 치료비 얘기를 하니까 자신이 꼭 금전적인 문제로 행동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부담이 된다고 했고, 치료비를 받고 나면 학교폭력 문제가 끝나버리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진단서가 제출되었기 때문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사안임을 안내하고 두 번째 상담이 끝났다.

 

세 번째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재발방지와 관련해서 상대학생 측에게 약속을 받아야 하는데 상대학생의 보호자가 사과는 할 수 있는데 재발방지에 대한 것은 확실하게 약속을 해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도 재발방지에 대해서는 해당 학생들에게 주의는 주겠지만 약속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의 얘기를 듣고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하였다. 나는 상대학생 어머니와 학교 측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은 이상 제3자가 재발방지 약속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피해학생이 그 일로 인하여 어떤 피해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가해학생이 직접 듣고 자신의 행동이 미친 영향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나서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 앞에서 재발방지 약속을 하게 되면 그 약속이 지켜질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교육지원청에서의 갈등조정 지원사업을 안내했다.

 

수민이 어머니는 이성적으로 갈등조정 대화모임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였고, 학교측에 갈등조정지원을 요청하였다. 수민이 어머니의 현명한 판단으로 6명의 학생 및 보호자들이 갈등조정에 동의를 하였다, 직면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관련 당사자인 학생들과 보호자들은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서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듣고 사안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보호자들은 그 상황에서 자녀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자기 자녀가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 자리에 참여한 어른들은 피해학생이나 잘못을 한 학생들에게 똑같이 연민을 느끼며 가슴 뭉클한 시간을 함께 했다.

 

사전모임에서 피해학생 측은 신체적 피해는 물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피해학생이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힘들어하는 상황이라서 상대학생에게 높은 수위의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심각하게 폭력을 행사하여 상해를 입힌 가해학생 측에서는 강제전학 조치가 내려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으로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자녀지도에 대한 자기 반성을 하였고 학생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회복적 대화모임에 참관을 하다 보면 피-가해 학생과 보호자들의 각각 처한 상황과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그 상황들이 안타깝기 그지없어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본 대화모임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직접 사과 및 부모와 함께 재발방지 약속을 했다. 때론 서로 붙들고 울기도 하고 화해와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5시간 또는 8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수민이와 상대학생들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고 화해는 했지만, 학교폭력 사안처리 절차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개최되었다. 수민이는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심의위원회 피해학생 진술에서 가해학생과 같은 반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었고,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하여 가해학생들의 반성과 화해 정도가 매우 높음이 인정되어 가해학생들에게도 낮은 수위의 조치가 내려졌다. 관계회복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여겨져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

 

시간이 지나서 수민이 어머니에게 갈등조정프로그램을 안내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찾아와서 인사하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자녀가 아직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상담을 받고 있지만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회복적 대화모임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하며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나는 오히려 수민이 어머니의 현명한 선택이 자녀의 회복을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살 것 같아요”라는 어머니의 말이 내 귓전을 맴돌고 있다. 내가 계속해서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복적 대화모임에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유기남 씨는 2010년 5월부터 현재까지 경기도구리남양주교육지원청에서 생활인권전문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학교폭력, 학생인권침해 신고 접수 및 민원상담과 사안처리 절차에 대한 안내, 그리고 갈등조정지원단 사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위의 글은 [RJ 저널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독자 투고는 누구나에게 열려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research@karj.or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