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에게 회복적 환경 만들기 l 유기남(학폭심의위원, 경찰활동 조정자)

202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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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아이들에게 회복적 환경 만들기       



유기남 / 학폭심의위원, 경찰활동 조정자




요즘 학교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과 폭력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인격적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오히려 폭력적 언행에 능숙해지고 있는 듯하다.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교사의 무능력과 가해 학생의 개인적인 인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가해 학생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왔지만 이는 폭력이 악순환될 뿐 적절한 대처가 되지 못했다. 징계 이후 가해 학생에 대한 낙인 효과가 커져갔고, 피해 학생은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을 가해 학생의 개인적 문제로만 접근하는 방식은 학교폭력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개인의 부족한 인성도 문제지만, 개인의 인성이 가정·경제·사회 등의 구조적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형성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학교폭력의 원인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인성의 문제라고만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학생 개인보다는 오히려 경쟁과 폭력적 구조를 강화하고 유지시키고 있는 기성세대와 사회에 책임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에 따라 자녀의 인성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자녀교육을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과 관계를 잘 맺고, 학교생활을 편안하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어쩌다 학교폭력과 관련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우리 아이들을 회복시키고 배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살펴주는 것” 


부모들이 내게 묻는다면 회복적 정의의 가치, 곧 ‘존중’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권유하고 싶다. 존중이란 무엇인가? 수라 하트(Sura Hart)에 따르면, “존중이란 말의 핵심 의미는 ‘살핀다’이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 특히 그들이 갖고 있는 느낌과 욕구를 살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 욕구를 살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아준다는 것이다.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들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특히 자녀가 사춘기, 청소년기일 때 감정의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건 자녀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시험을 못 봐서 야단을 쳤을 때, 아이가 “시험을 어떻게 매번 잘 보겠어 요?”라고 대꾸할 수 있다. 이에 많은 부모가 “너 그거 말이라고 해? 네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 그렇지. ○○이는 왜 늘 1등을 하는 건데.”라고 쏘아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잘 받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자기 신뢰, 자기 확신을 갖기 어렵다. 


어른들은 아이의 밥을 굶긴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미안해하지만, 자녀를 존중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해서 감정적 상처를 준 것은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부모가 일상생활에서 자녀에게 존중으로 대하면 자녀 역시 친구들과 문제 없이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교육에서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들어주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는 선물같이 온다.” 


그러면 자녀가 학교폭력의 피해 또는 가해 관련학생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최근 5년간 학교폭력 갈등조정 및 관계회복프로그램을 경험해왔다.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보고 듣고 느낀 점은 모든 학교폭력 사안이 있는 곳에는 회복적 대화모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회복적 대화모임의 실제 사례들은 내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가령 수십 명의 동급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행으로 코뼈가 골절되는 피해를 입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았던 경우에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여 심리적 상처가 깊어서 일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친구를 마주했을 때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경우에도 양측은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 관계회복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copyright. Motion array.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학교폭력에 관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피해 학생 측은 자녀가 그 피해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분노하고, 가해 학생 측은 자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연장선 상에서 가해 학생 측은 어떻게 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때부터 서로의 입장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지고 상황은 힘들어지게 된다. 


교육청에서 상담사로 근무했을 당시에 학부모들이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해서 학교에서의 사안 처리가 미흡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교사들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 민원전화를 종종 받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한 시간이 넘게 자녀의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때론 울기도 하고, 학교와 상대학생 학부모의 태도에 분노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상담자인 나는 당연히 학부모의 하소연을 끝까지 듣고 상담을 하지만, 그 내용들은 학교와 상대학생 및 학부모가 듣고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들이다. 


몇 년 전에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어머니가 자녀가 다른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여 코뼈가 부러졌는데 방어 차원에서 발길질 한번 한 것으로 쌍방폭행이라는 얘기를 듣고 분노에 차서 교육청으로 억울하다며 전화를 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흥분되어 있었으며 원망이 가득한 음성으로 담임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먼저 말했다. 자녀가 다쳤는데 응급처치는 뒤로 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한 채 사과를 주고받게 했다는 것이다. 억지 화해를 시켰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로 인하여 늦은 시간에 병원에 가게 되었고 곧바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여서 후유증이 생기거나 더 상태가 나빠지게 될까봐 가슴을 졸였다고 했다. 담임교사가 일처리를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따져 물었다. 


며칠 후, 다시 전화를 준 그 학생의 어머니 목소리는 한결 안정을 찾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분노와 불안이 섞인 음성이었다.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자녀를 힘들게 했고 다른 학생이 폭행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학생과 그 어머니가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으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치료비 부담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다행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화가 좀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아직 자녀가 치료 중인데 치료비 얘기를 하니 까 자신이 꼭 금전적인 문제로 행동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부담이 된다고 했고 치료비를 받고 나면 학교폭력 문제가 끝나버리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학교에 진단서를 제출해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될 사안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다소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일주일 후, 그 학생의 어머니에게 또다시 전화가 왔다. 이제는 재발방지와 관련해서 상대학생 측에게 약속을 받아야 하는데, 상대학생의 보호자가 사과는 할 수 있는데 자녀의 재발방지는 확실하게 약속을 해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였고, 학교 측에서도 재발방지에 대해서는 해당 학생들에게 주의는 주겠지만 약속은 해줄 수 없다고 해서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나는 상대학생 어머니와 학교 측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당사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은 이상 제3자가 재발방지 약속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피해 학생이 그 일로 인하여 어떤 피해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지를 가해 학생이 직접 듣고 자신의 행동이 미친 영향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비로소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으며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 앞에서 피해 학생에게 재발방지 약속을 하게 되면, 그 약속이 지켜질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교육지원청에서 갈등조정 대화모임을 지원하고 있다고 안내해드렸다. 


다행히 그 어머니는 회복적 대화모임의 필요성을 잘 이해했고, 학교를 통하여 갈등조정 대화모임을 요청했다. 그 어머니의 현명한 판단으로 6명의 관련학생 및 보호자들이 갈등조정에 동의를 하였다. 직면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관련 당사자인 학생들과 보호자들은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서 피해 학생의 피해 상황을 직접 듣고 사안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가해 학생들은 그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피해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자기 자녀가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 자리에 참여한 어른들은 피해 학생이나 잘못을 한 학생들에게 똑같이 연민을 느끼며, 가슴 뭉클한 시간을 함께했다. 


사전모임에서 피해 학생은 신체적 피해는 물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힘들어하는 상황이라서 상대 학생에게 높은 수위의 학교폭력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심각하게 폭력을 행사하여 상해를 입힌 가해 학생 측에서는 강제전학 조치가 내려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자녀지도에 대한 자책감을 보였고, 학생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회복적 대화모임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고, 상대의 입장을 듣는다. 그 결과 행위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부모와 재발방지 약속을 한다. 피해 학생은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고 불안과 막연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안정을 찾는다. 때론 서로 붙잡고 우는 모습, 화해하는 모습, 부모들이 상대학생을 격려해주는 모습도 보았다. 나는 회복적 대화모임이 학생들에게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관련학생들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고 화해는 했지만, 이후 학교폭력 사안처리 절차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심 의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코뼈가 부러지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 학생은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하여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심의위원회에 참석하여 가해 학생과 같은 반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한 가해 학생들의 반성과 화해 정도가 ‘매우 높음’으로 인정되어, 가해 학생들에게도 낮은 수위의 조치가 내려졌다. 



이처럼 회복적 대화모임에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c. pixabay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 피해 학생 어머니가 갈등조정프로그램을 안내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해왔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찾아와서 인사하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했다. 자녀가 아직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상담을 받고 있지만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회복적 대화모임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하시며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오히려 어머님의 현명한 선택이 자녀의 회복을 도운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이처럼 회복적 대화모임에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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