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도,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는 우리 아이들 l 장민지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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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지도,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는 우리 아이들    

     

장민지 /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은 비장애 아동과 다른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어느 정도 순화시켜 독특한 아이 또는 특별한 아이 정도로 표현한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장애 아동을 이상하게도, 특별 하게도 보지 않는다. 물론 평범하게도 보지 않으며, 아이 그 자체로 바라보면서 존엄한 존재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그런 마을이 과연 있을까, 생각이 들겠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몇 가정이 서로 의지하며 도우며 살아간다. 비슷한 유형의 장애 아동 가정끼리 서로 협력하면서 지내겠지, 생각되겠지만 아니다. 장애 아동 가정을 중심으로 주위 일반 가정들에서 협력하고 연대하며 지내고 있는 모습이다. 


가정들은 첫째들끼리, 둘째들끼리 자녀들의 연령이 똑같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함께 먹고 놀고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7세가 된 무렵에는 한 가정에서만 둘째 쌍둥이 형제가 장애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유아 시절부터 함께 성장해왔기에 3세까지는 평범하게 생활을 하다가 4세부터 비장애 아동과 다른 모습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고, 최종 장애판정은 7세가 되었을 때 받게 되었다. 장애 아동 가정은 10세 비장애 딸과 발달장애를 가진 8세 남자 쌍둥이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가정에서 장애 아동이 한 명만 있어도 가정이 힘든 경우가 많은데 무려 두 명이나 장애가 있는 아동을 키우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지 말문이 막히고 그저 대단하다는 마음뿐이다. 나 또한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장애가 없는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힘든 경우가 많은데, 쌍둥이 장애 아동을 키우는 가정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이 되는 일을 찾고 노력할 뿐이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경험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공포스러운 마음이 든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경우라면 처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이를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의 가정과 같이 3세까지는 보통 아이들과 비슷하게 성장하다가 4세 때부터는 비장애 아동과 다른 행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 경우라면 부모가 최종 장애판정까지 받아들이기에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된다. 자신의 쌍둥이 자녀가 비장애 아동 아니 느린 아이 정도만이라도 되고자 몇 년간 센터 치료를 다니며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나 결국 만 7세에 발달장애로 최종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장애 아동의 부모들에게 이런 경험은 무시할 수도, 피해 갈 수도 없는 시련이다. 이런 시련에서도 회복탄력성을 갖고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주위 가정들이 서로 위로하고 협력하며 함께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를 결함이나 부족이 아닌 하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비장애 아동들 속에서 녹아들어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가야 할지는 잘 모르고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서로 구분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 운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즉 존중이 살아 있는 삶이다. 



시선의 폭력 


어느 날 장애 아동 부모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원래 장애 아동 엄마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센터를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엄마가 풀타임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나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여 쌍둥이들을 데리고 센터를 가게 되었다. 내가 도와주는 역할은 유치원에서 아동을 찾아서 센터에 데려다주는 것이다. 일반 아동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장애 아동에게는 낯선 차를 타는 것, 차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차에 내려서 함께 걸어가는 것 등 쉬운 행동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6개월간 경험하였다. 


무사히 센터를 가게 되면 한 아이만 데려온 부모는 장애 아동 두 명의 양쪽 손을 잡고 입장하는 나를 보며 ‘그나마 다행이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런 시선들은 나를 어렵고 아프며 힘들게 만드는데 실제 장애 아동 엄마는 얼마나 많은 아픔을 마음에 가지고 살았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장애 때문에 고통스럽고 장애 때문에 무시 당하는데 여기에 더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상처가 아이를 무겁게 짓누른다. 


남을 죽이는 시선이 있다. 나는 그런 경험을 센터 일을 도와주면서 매번 느끼게 되었다. 시선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험은 실제로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장애인이 시선 때문에 받은 상처를 이야기한다. 자신을 탐색하듯 살피거나 외면하는 시선은 견디기 힘들다. 너무 빤히 쳐다보는 시선은 저질스러운 호기심을 내보인다. 그렇다고 아예 눈길을 주지 않는 행동은 거부를 의미한다. 시선을 통해 받은 피해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일반 아동이나 장애 아동이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있는 그대로의 시선,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존엄의 시선이 중요하다. 존엄의 시선은 어렵지 않다. 그냥 일반 아동을 대하듯 이상하게도, 아프게도, 특별하게도 대하지 않고 평범하게 여기면 된다. 


여러 학회와 출판물들은 장애아를 ‘남과 다른’ 아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보편성을 무시하고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닮음’을 무시하고 ‘다름’을 강조한다. 이것은 장애 아동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다름’은 눈에 띈다.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고 주의를 끈다. 반면 ‘닮음’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그런 만큼 불안하다.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완전히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나와 근본적으로 무관한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모든 인간은 유일하다. 어쩌면 우리의 다름은 생각만큼 큰 차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름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폐 아동 또는 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나와 닮은 존재로 받아들여 내가 인정하지 않는 나 자신의 어떤 면이 있는, 나의 거울을 보는 시선처럼 여기면 된다. 장애를 가진 이들의 부모에게 전문적으로 돕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한 마을의 이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냥 평범한 아동을 대하듯 바라보는 시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편견도 동정도 아니다. 이상하게도 아프게도 보지 않고, 한 인격체로 존귀한 아이로 바라보며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충분히 필요한 시간, 회복적 시간


장애 아동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에는 원인이 없다. 어떤 부모가 장애 아동을 키우고 싶겠는가? 그래서 부모는 잘못이 없다. 부모에게 이런저런 제안을 하기보다는 옆에서 부모의 말을 들어주고 인정해주면 된다.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말을 걸지 않더라도 나란히 있어 주는 시간이 괜찮은 마음, 뭔가를 물어보면 놀라지 않고 잘 듣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을 품는다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에 한 걸음 더 가까워 진다. 


물론 부모를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일이 쉽지 않다. 장애 아이 부모가 느끼는 고뇌와 증오심과 죽음에 대한 생각 들에 귀를 기울여주고 아무 말 없이 특별히 뭔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순간들이 부모와 아이의 미래에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장애 아동 가정의 부모들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자녀를 통해서 알게 된 사이지만 부모들은 가족, 친척보다 더 끈끈하게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비장애 가정에서 장애 아동의 가정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자녀들을 함께 양육하고 함께 성장시키고 있다. 또한 자녀들끼리도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둘째 자녀들끼리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데 비장애 아동은 장애 아동이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고 하여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장애 아동을 도와준다. 같은 공간에서 놀이를 할 때는 자폐성 장애 아동은 혼자 놀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옆에서 비장애 아동끼리 같이 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폐성 장애 아동에게 다가가 장난을 걸어보기도 하고 상호작용을 시도하는데 반응이 없거나 이상하여도 상처받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정말 순수하게 편견 없이 존엄한 인간으로 서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그 속에서도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해하고 서로 맞추며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힘들수록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회복적 정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배운 적도 없는 이들이지만 회복적 정의 가치가 녹아든 마을답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가 비장애 아동처럼 남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으로 변화가 된다는 기적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사회 일원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자폐 장애가 있는 아동이 부모 또는 타인과 소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편으로는 환경이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되었다고 하여도 상황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아이를 치료해주던 치료사가 바뀐다거나 학년이 바뀌면서 새로운 학교, 친구, 교사에게 적응을 한다거나, 학 교프로그램이 맞지 않거나 많은 돌발 상황들이 발생한다. 그러면 부모는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서 위태롭게 걸어가야 한다. 


장애아동 부모는 자녀에게 복잡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균형 잡고 한발 한발 걸어가는데 주변에서 갖가지 충고와 지시가 들어와 집중이 안 되고 죄책감마저 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한 사소한 성과와 작은 발전에 큰 기쁨을 얻고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다. 그 부모들은 긴 여정의 삶을 생각하기에 천천히 아이에 맞게 성장 하도록 돕고 있었다. 


자폐증 최고 권위자가 알려주는 부모 행동 지침서 「독특해도 괜찮아」 책에서는 엄마가 자폐증 자녀를 위해 식이요법, 각종 치료를 병행하면서 아들을 변화시키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는데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부모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의 방식을 멈추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사례가 있다. 엄마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원래 완전했고 행복한 아이였다.’ 고 말한다. 자폐 아동을 키우면서 가지는 목표는 아이를 고쳐서 정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장애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장애로 불편을 겪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를 바꾸려면 삶의 문화가 바뀌어야 하며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회복적 정의 절차를 사용한다면 장애 아동의 삶을 존중하면서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장애 아동 가정의 개인적인 변화와 비장애 가정들과의 연결된 관계, 이러한 삶이 문화가 된다면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 날 것이라 기대한다.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천천히 해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과 마을 공동체가 건강하고 정의로워질수록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족들의 삶은 평화롭다. 건강한 나무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고 서로 상생하며 살아간다. 장애 아동 가정과 비장애 아동 가정이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회복적 정의 운동의 나무가 널리 확산 되어 뿌리 깊이 내려 그들에게 안전한 그늘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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