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에세이]회복적 정의는 공동체성의 회복 l 최원영 제주지부 회원

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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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는 공동체성의 회복

내가 만난 RJ l 최원영 <웰빙무브> 활동가, <엄마들의 몸 공부> 파트너




최원영: 몸이 아팠었고, 몸 공부를 해나가며 움직임을 통해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도와준 임상원 박사님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깁니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날 거예요”라는 말을 믿었고, 제주에서 <웰빙무브> 활동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며 그러한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움직임은 뇌=감각=감정이기에, well 잘 존재하기 being 위해 잘 움직이는 move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 몸과의 소통을 몸 공부와 움직임으로 해오고 있다면, 타인과 세상과의 소통을 <회복적 정의> 방식으로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회복적 정의> 책 48쪽 : 밑줄 쫙쫙! 심리 상담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그 무언가를 만났습니다. 그래! 이거였어!


 저는 공동주택(아파트)에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집안에서 뛰지 말라는 단속을 하며 키우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라는 생각과 층간소음 보복 행위가 무서운 것도 제 내면 깊숙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제가 직적 경험한 것과 지인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케이스1. 나의 피해와 필요를 직접 이야기하기 : 하남 미사신도시 거주


 제가 셋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여름날, 아랫집에서 수시로 담배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기분 좋게 문을 열어뒀다가 순식간에 들어오는 담배 냄새에 환기하느라 고생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느 집인지 알 방법이 없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래층 집 몇 군데에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데 창문으로 담배 냄새가 들어옵니다. 어느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가 있는 안방 쪽에서 흡연을 자제 부탁드립니다.”라며 과일과 함께 인사를 드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 감사하게도 담배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습니다.


케이스2. 층간소음의 다양한 경우 : 분당으로 이사한 지인


 아는 지인은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층간소음이 걱정되어 1층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 후 마음껏 뛰어놀게 했는데, 며칠 뒤 위층에서 찾아왔답니다. 위층 아이가 시험 기간인데 1층집 아이들 소리 때문로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층간소음이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도 위층에 영향을 주는 것이구나!’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케이스3. 반상회 하는 정겨운 우리 아파트 : 제주시 한 동짜리 작은 아파트


 저는 지금 제주시에 있는 한 동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에는 신기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반상회’입니다. 반상회 공지 글을 보는데, 어릴 적 집마다 돌아가며 반상회를 했던 추억과 함께 그때 먹었던 요구르트 병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반상회는 어른들만 이야기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동네 작은 모임이었고,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노는 날이었습니다. 저희 아파트 반상회는 추억의 반상회는 아닙니다. 공동으로 의견을 결정해야 하거나 불만 사항이 접수되면 반상회를 공지하고 주차장에서 어른들만 참석해서 진행합니다. 갈등이 잘 해결되지는 않지만, 의견을 말하고픈 사안이 있으면 이야기를 꺼내어 하고,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반상회를 열고 참석하는 것 같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 부분을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층간소음 피해로 인한 갈등 문제는 내가 한 행동이 어느 정도 주변에 피해를 주는지 모르고 살았기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행동이 지금 나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상대의 관점에서 들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행동 또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가 조금씩 이해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회복적 정의는 공동체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응보적 정의에 익숙하고, 저의 삶의 방향성은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국가에서 법적으로 판결을 해 벌을 받겠지‘라는 생각으로 억울한 일이 생겨도 스스로 이것을 보상받거나 해결해 보려는 주체성을 잃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잘 해결이 되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우리 사회는 ’착하면 손해, 정직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고, 이렇게 사회 불신이 가득 찬 채 돌아가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살면서 착하게 살았지만 뭔가 손해 본 듯했고, 목소리 큰 사람에게 밀려 해결되지 못한 억울한 일들과 속상함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어쩌면 해도 안될 일이라는 암묵적인 포기의 마음이 생겨나서 사회시스템이나 국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무기력함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내 목소리를 내려면 되려 ‘본전도 못 찾을 수 있으니 제발 가만있으라’라는 우려 섞인 눈빛을 보내는 주변인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도 하구요.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저는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길들여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 능력으로 해결이 안 되고 감당이 안 되는 힘든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는 것 또한 트라우마가 된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엔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 이유가 어찌 보면 사회가 응보적 정의로 돌아가는 것 때문 아닐까요? 힘을 가진 몇몇이 힘을 독점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기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회복적 정의는 단순히 피해 입은 상황에 대한 피해 회복의 주체성 회복을 넘어서, 삶에 대한 의지의 회복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 이 사회는 안전하고 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줄 거예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살 만한 세상이라는 삶에 대한 의지의 회복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공동체성이 가장 낮고, 자살률도 높은 국가에 속합니다. 힘들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자기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용기내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지받고 용기내어 잘 살아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지지하며 함께 해 나갈때 세상은 긍정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회복적 정의를 좋아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내 목소리를 내었을 때 안전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할 사람들이 있어.”


 이상과도 같은 안전한 공동체성을 만난 부분이 회복적 정의에서 가장 반가웠던 내용이었습니다. 공부하고 느낀것들을 조금씩 제 삶의 반경에 실천해 보면서, 내 목소리를 내어도 안전한 공동체를 확장해 가보려 합니다. 우리인간은 ‘안전하다’ 느낄 때, 건강한 움직임도 가능하고 관계도 가능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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