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 17>을 보고 l 위험한 리더와 회복적 접근
장민지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봉준호 감독은 사회학 전공자답게 생태계 문제, 계급갈등 문제 등 기술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폐해를 풍자하거나 개인의 인간성 상실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많이 찍었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기생충> 이후 6년만에 내놓은 <미키 17>은 미국에서 미국배우들을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봉테일스러운 작품이다. 이번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인간은 정말로 대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술 발전이 오히려 인간성을 말소하는 역설, 자본과 권력의 병폐가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의 저항 가능성 등을 탐구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계층적·경제적 구조를 성찰하도록 한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장르 영화의 오락성과 사회 비판의 깊이를 결합해, 단순한 SF가 아닌 인간 조건에 대한 우화를 창조한다.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쉬턴의 소설 「미키 7」을 각색한 SF영화로, 얼음으로 뒤덮인 외계 행성 니플하임을 배경으로 복제인간 ‘미키’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미키 반스는 사채를 끌어다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하고 악덕 사채업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정치인 케네스 마샬이 함장이자 일종의 독재자로 군림하는 니플하임 행성 이주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아무런 기술도 없던 미키는 '익스펜더블'이라는 분야에 막무가내로 지원하여 지구를 떠나 니플하임으로 간다. 미키의 임무는 온갖 인체실험을 당하는 익스펜더블로 미키의 신체 정보와 기억을 모조리 백업해 두고 그가 사망하면 인체 생성 프린터를 통해 육체를 형성한 다음, 백업해 둔 기억을 덮어씌워 기술적으로 재생산된다.
위험한 리더는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가
<미키 17>에는 극악무도한 독재자 부부 마샬과 일파가 등장한다. 영화를 본 후 현실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관객이 많을 것 같은데,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2021년에 썼고 2022년에 촬영이 다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이 미래를 예언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다. 감독이 독재자 부부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 참고한 대상은 필리핀의 마르코스 부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부부라고 말했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 부부가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재자 부부는 현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갈등과 분열, 혼란을 일으키는 불통 리더십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야욕에 빠져 다수의 고통과 절망에 무감각하며, 도덕적 양심과 수치심을 잃어 주변과 공감하지 못한다. 영화에서도 독재자 부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교활하고 교묘하며, 너무 충동적이어서 이성적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자신들이 남보다 우월하고 권력을 차지할 자격을 갖췄다고 확신하면서 미키의 정체성을 무시하며 소모품 취급을 한다. 타인은 자신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거나 자신의 욕구 충족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만 가치 있을 뿐이다. 심지어 미키를 자신들의 기준에서 도움이 되지 않으면 괴롭히고 학대해도 되는 장애물로 간주하며, 거리낌 없이 죽이기도 한다.
독재자 부부는 화려한 의상으로 단장한 모습, 공식 석상에서의 과장된 행보, 언론을 통한 이미지 관리 등으로 신격화된 권력을 강조한다. 권력을 독점하고 과시적 이미지를 뽐내며 국민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자원 착취와 억압 정책을 펼친다. 모든 결정은 독재자 부부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들은 책임감 있는 인물로 보이려고 애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진면모가 드러나면서 무능과 부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몰락하게 된다.
위험한 리더를 넘어선 회복적 접근
영화 후반부에 외계생명체 크리퍼의 등장으로 갈등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마샬과 일파는 크리퍼와의 갈등 원인이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됐음을 감추고, 외계인의 공격으로 프레임을 전환시킨다. 이들은 단순히 무력으로 크리퍼를 없애려 한다. 그들이 주도하는 시스템은 갈등을 억압으로만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회복적 정의 관점으로 본다면 크리퍼의 피해를 인정하고 인간들의 책임 있는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반면 미키는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상호 이해와 관계 회복을 위해 대화하고 소통하려 한다. 회복적 정의에서 말하는 당사자 피해 회복을 위해 회복적 대화를 하는 시도가 영화에 등장한다. 인간이 크리퍼에게 가한 살해나 침략과 같은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협상으로 책임을 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해체하고 공정한 자원 분배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구조적 변화를 시도한다. 또한 인간과 크리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공동체가 참여하여 양측이 협력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회복적 정의 실천가들이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하는 것은 미키가 통역기를 이용하여 크리퍼와 소통하는 모습과 닮았다. 미키는 인간의 언어와 크리퍼의 언어를 연결하고자 노력하고, 크리퍼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통역기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 크리퍼의 고통과 요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공감적 소통으로 피해자 중심의 듣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대화의 장이 형성되어 갈등 당사자가 직접 대화하며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회복적 정의에서는 이러한 대화가 치유의 시작점으로 작용한다. 미키의 소통은 서로의 맥락을 존중하며 협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문화적 편견을 넘어 공동체 회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계엄 상황은 시민들이 막았다. 정치적, 사회적 조치보다 더 중요한 개개인의 연결됨이 나라를 구했다. 가장 혼란스럽고 분열돼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우리는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안전한 공동체로 회복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회복적 연결이다. 회복적 정의의 가치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가 소통하고 연결되도록 돕고, 회복적 연결이 점점 더 큰 연결로 나아가는 순환의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공감적 연결은 인간을 본래 자신의 상태로 회복되게 한다. 연결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장민지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봉준호 감독은 사회학 전공자답게 생태계 문제, 계급갈등 문제 등 기술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폐해를 풍자하거나 개인의 인간성 상실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많이 찍었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기생충> 이후 6년만에 내놓은 <미키 17>은 미국에서 미국배우들을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봉테일스러운 작품이다. 이번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인간은 정말로 대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술 발전이 오히려 인간성을 말소하는 역설, 자본과 권력의 병폐가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의 저항 가능성 등을 탐구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계층적·경제적 구조를 성찰하도록 한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장르 영화의 오락성과 사회 비판의 깊이를 결합해, 단순한 SF가 아닌 인간 조건에 대한 우화를 창조한다.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쉬턴의 소설 「미키 7」을 각색한 SF영화로, 얼음으로 뒤덮인 외계 행성 니플하임을 배경으로 복제인간 ‘미키’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미키 반스는 사채를 끌어다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하고 악덕 사채업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정치인 케네스 마샬이 함장이자 일종의 독재자로 군림하는 니플하임 행성 이주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아무런 기술도 없던 미키는 '익스펜더블'이라는 분야에 막무가내로 지원하여 지구를 떠나 니플하임으로 간다. 미키의 임무는 온갖 인체실험을 당하는 익스펜더블로 미키의 신체 정보와 기억을 모조리 백업해 두고 그가 사망하면 인체 생성 프린터를 통해 육체를 형성한 다음, 백업해 둔 기억을 덮어씌워 기술적으로 재생산된다.
위험한 리더는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가
<미키 17>에는 극악무도한 독재자 부부 마샬과 일파가 등장한다. 영화를 본 후 현실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관객이 많을 것 같은데,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2021년에 썼고 2022년에 촬영이 다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이 미래를 예언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다. 감독이 독재자 부부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 참고한 대상은 필리핀의 마르코스 부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부부라고 말했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 부부가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재자 부부는 현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갈등과 분열, 혼란을 일으키는 불통 리더십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야욕에 빠져 다수의 고통과 절망에 무감각하며, 도덕적 양심과 수치심을 잃어 주변과 공감하지 못한다. 영화에서도 독재자 부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교활하고 교묘하며, 너무 충동적이어서 이성적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자신들이 남보다 우월하고 권력을 차지할 자격을 갖췄다고 확신하면서 미키의 정체성을 무시하며 소모품 취급을 한다. 타인은 자신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거나 자신의 욕구 충족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만 가치 있을 뿐이다. 심지어 미키를 자신들의 기준에서 도움이 되지 않으면 괴롭히고 학대해도 되는 장애물로 간주하며, 거리낌 없이 죽이기도 한다.
독재자 부부는 화려한 의상으로 단장한 모습, 공식 석상에서의 과장된 행보, 언론을 통한 이미지 관리 등으로 신격화된 권력을 강조한다. 권력을 독점하고 과시적 이미지를 뽐내며 국민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자원 착취와 억압 정책을 펼친다. 모든 결정은 독재자 부부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들은 책임감 있는 인물로 보이려고 애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진면모가 드러나면서 무능과 부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몰락하게 된다.
위험한 리더를 넘어선 회복적 접근
영화 후반부에 외계생명체 크리퍼의 등장으로 갈등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마샬과 일파는 크리퍼와의 갈등 원인이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됐음을 감추고, 외계인의 공격으로 프레임을 전환시킨다. 이들은 단순히 무력으로 크리퍼를 없애려 한다. 그들이 주도하는 시스템은 갈등을 억압으로만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회복적 정의 관점으로 본다면 크리퍼의 피해를 인정하고 인간들의 책임 있는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반면 미키는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상호 이해와 관계 회복을 위해 대화하고 소통하려 한다. 회복적 정의에서 말하는 당사자 피해 회복을 위해 회복적 대화를 하는 시도가 영화에 등장한다. 인간이 크리퍼에게 가한 살해나 침략과 같은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협상으로 책임을 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해체하고 공정한 자원 분배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구조적 변화를 시도한다. 또한 인간과 크리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공동체가 참여하여 양측이 협력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회복적 정의 실천가들이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하는 것은 미키가 통역기를 이용하여 크리퍼와 소통하는 모습과 닮았다. 미키는 인간의 언어와 크리퍼의 언어를 연결하고자 노력하고, 크리퍼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통역기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 크리퍼의 고통과 요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공감적 소통으로 피해자 중심의 듣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대화의 장이 형성되어 갈등 당사자가 직접 대화하며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회복적 정의에서는 이러한 대화가 치유의 시작점으로 작용한다. 미키의 소통은 서로의 맥락을 존중하며 협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문화적 편견을 넘어 공동체 회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계엄 상황은 시민들이 막았다. 정치적, 사회적 조치보다 더 중요한 개개인의 연결됨이 나라를 구했다. 가장 혼란스럽고 분열돼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우리는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안전한 공동체로 회복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회복적 연결이다. 회복적 정의의 가치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가 소통하고 연결되도록 돕고, 회복적 연결이 점점 더 큰 연결로 나아가는 순환의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공감적 연결은 인간을 본래 자신의 상태로 회복되게 한다. 연결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