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학교, 희망은 어디에 l 김선희 경기도 성남 수내중 교사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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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학교, 희망은 어디에

     


김선희 / 경기도 성남 수내중 교사, <어른들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저자 





경쟁교육으로 인한 불신풍조와 학교업무 과부하 


 학교는 위기에 처해 있다. 

몇 해 전 국가 수준 교육과정 시안 공청회에서 시장경제 논리로 접근하는 개정 방향에 반대하며 나는 벌떡 일어나 발언했다. 

“현장의 요구를 무시한 채 이렇게 주지 교과 위주의 학습 경쟁 체제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학교당 최소 1인의 정신과 전문의를 배치해야 할 겁니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끄덕였고, 정책 관계자 대부분은 조소했다. 결국 입시 과열을 부추기는 개정 교육과정이 발표되었다. 


 요즘 자주 그때 일이 떠오른다. 

지난 7월, 한 초등학교의 2년차 교사가 1학년 담임을 맡다가 일과 전 빈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교사노조의 성명서에 의하면 학급 내 학교폭력(이하 학폭) 사안과 관련하여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 더 유난스러워진 학폭 사안들로 가슴 졸이는 동료를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에 간략한 한 줄 기사에 담긴 사연이 얼마나 기막힐지 조밀하게 그려진다. 학교 측에서 ‘해당 교사는 학폭 담당이 아닌 나이스 권한 부여 업무를 맡았다’고 해명했다. 나는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나이스 업무가 가장 몰리는 학기 말에 교육부가 굳이 대대적인 개편을 하면서 선생님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게다가 학급 내 학폭 사안이 발생하면 담임인 이상 학폭 담당 교사가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오전 내내 비는 시간과 쉬는 시간 없이 수업과 생활지도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식사 배분과 뒷처리가 미흡한 신입생들의 급식 지도로 교사 본인은 식사를 제대로 하기 힘들었을 것이 다. 오후에는 잡다한 행정업무와 수업준비는 물론 학부모 역할이 처음인 경우가 많을 부모님들에게 자잘한 문의 응대와 각종 안내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교사 한 명이 도대체 몇 사람 분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경쟁교육 시스템에서 학부모와 교사는 협력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초등학교에서 무슨 경쟁교육이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대입 경쟁 체제의 악영향은 유아기 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와 아이들은 교육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로 인한 과도한 걱정과 불안을 현장 교사들의 헌신으로 메꿔 온 지 오래다. 


 선생님의 죽음은 경쟁 시스템으로 신뢰가 무너진 교육 공동체와 학교 업무 구조 전반의 치명적 문제점을 한 눈에 보여주는 안타까운 순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교사의 업무는 늘어만 간다. 경제적 효율을 교육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뽑아 놓은 사람 써먹자’는 식의 업무 구조로 인해 세상이 바뀌어도 인력 구조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해오던 일도, 새로 들어온 일도 모두 기존 교사들의 몫이다. 나가는 일은 없고 들어오는 일만 있다. 너무 오랫동안 과부하되어 있음을 외면하고 돌려막기로 해결하려 들다 보니 결국 마음 약한 교사, 전입 교사, 신규 교사, 젊은 남자 교사, 기간제 교사, 열정 교사들이 뒷감당을 도맡게 된다. 모두가 고루 여력이 없어 생기는 일임에도 교사들끼리 서로 흉보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이쯤 되면 '시스템에 성실히 복무하는 게 오히려 비양심은 아닐지.' 선배 교사로서 부끄럽다. 


“선생님, 임계점에 이른 각개전투 현장에서 홀로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어요. 아침 일찍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과 의 만남을 준비하신 곱고 고운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평화로운 곳에서 안식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있음에


 13일간의 비교적 짧은 방학 끝에 다가오는 개학 며칠 전까지도 내 마음에 깊이 드리운 어둠은 도무지 가시지 않았다. ‘이런 심정으로 아이들을 어찌 만나나’ 걱정이 되었다. 수없이 터져 나오는 말들을 글에 다 담아내지도 못해 발을 동동 구르듯 급한 메모만 남기며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야 했다. 


 개학 하루 전, 군 복무중인 한 제자가 전화로 ‘요즘 교권 관련 뉴스 보면서 선생님들 안부가 궁금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랬구나. 고마워라.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워. 다 내 일 같고, 동료들 일 같거든. 한없이 슬프지만, 이 슬픔을 함께 나누며 더 나은 사회로 한 걸음 내딛는 기회로 삼아야지.” 제자 앞에서 밝고 단단한 음성으로 말하는 나를 발견하며 슬쩍 안심이 되었다.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환한 색채로 돌아갈 나에 대한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았다. 



희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시 


 지난 8월1일 개학 후 첫 수업은 ‘방학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나의 질문으로 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교사들의 고충에 대해 쏟아지는 보도를 접했을 아이들도 졸업한 제자와 같이 나와 선생님들의 마음을 궁금해할 것 같았다.

 “나는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으로 방학 내내 심적인 몸살을 앓았어요."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나와 강렬하게 연결됨을 느꼈다. 몇몇 아이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고민들을 글로 적으며 교육계의 변화를 이끄는 데 작게나마 참여하고자 애쓰기도 했어요. 다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에 품고 개학을 맞이하려니 몸과 마음이 무겁기도 했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속에서 일부 연민의 눈빛도 느껴졌다. 


"그런데 여러분을 만나는 순간 어느새 기운이 들어차네요. 나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이 그럴 거예요. 선생님들의 어려움은 극에 달했고, ‘묻지마’ 범죄까지 잇달아 더 불안한 시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시 희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해요. 여러분의 자람과 배움이 곧 우리가 맞을 새세상이에요. 그러니 또 한바탕 신나게 성장합시다.” 

 우리는 동시에 어깨를 쫙 펴며 반짝이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이초 교사의 마지막 외침, 연대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한 공감자’인 아이들에게 덥석 업힌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따각따각 키보드 소리 요란한 교무실’에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방학 내내 결심한 대로 용기 내어 교내 ‘교사 마음 돌봄 서클’을 제안했다. 그 또한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하니 스스로 수업 외 행정업무를 더하는 일이다. 하지만 못다 쓴 글을 가슴 속에서 끌어내는 일이기도 하니 누구보다 내가 살 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학교에서 교사 마음 챙길 시간이 어디 있어!’ 등의 적잖은 핀잔이나 외면도 예상되지만 더는 두렵지 않다. 그 모든 게 생생한 교사들의 지금 마음이요, 저마다의 다양한 애도 방식임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단 한 명일지라도 나와 같은 마음을 내는 동료가 있다면 언제든 따뜻한 연대의 작은 울타리를 만들자고 불쑥 손 내밀 수 있겠다. 그것이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속에서 홀로 떠난 서이초 선생님의 마지막 외침에 가장 적확하게 답하는 길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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