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글]새 정부의 사법개혁과 회복적 정의 l 이재영 회복적정의협회 이사장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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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사법개혁과 회복적 정의


주제글1 회복적 정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다 - 사법

이재영 회복적정의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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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연말 12.3 내란의 밤을 겪고 정확하게 7개월 뒤 한국 사회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을 치렀다. 7개월 동안 계엄선포, 국회의 해제, 윤석열 체포와 구속, 구속취소와 석방, 파면, 그리고 이재명 정부 탄생 등 너무나도 많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 그 기간 동안 국민들 대다수는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면서 조금씩이나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들이 이뤄진 것이지만,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고 불의를 정의로 회복하는 데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과 에너지가 소진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만큼 한국 사회에는 깊은 생채기가 패였고 많은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지금 한국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많은 과제 중에는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한 검찰개혁 중심의 사법개혁이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하여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검경수사권 조정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윤석열 검찰 정권에서 다시 회귀하려고 한 수사권 조정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원래의 계획대로 검찰의 기능과 권한을 기소와 공소유지에 한정하고 수사권은 경찰의 책임과 권한 속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 개혁방안이 제대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수처의 권한과 역량을 높여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와 범죄를 별도로 수사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이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법원의 독립성 확보 및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관평가위원회 설치를 통한 법관평가제도의 개선과 국민의 사법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국민참여재판 대상 확대 등의 정책이 실효적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결국 이런 사법개혁의 방향은 권력기관의 독점과 오남용을 막고 견제와 균형을 통해 사법이 본연의 임무인 사회정의 구현의 사회적 공기로 건강하고 투명하게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권력은 처벌권에서 나온다. 따라서 처벌권 실행의 책임을 부여받은 개인과 기관은 그 누구보다 더 높은 도덕성과 공정성을 요구 받는다. 그런 공정함이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합법적으로 부여받은 개인과 기관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사법이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고, 사회공동체를 이루는 근간 중에 하나가 무너지는 커다란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정의의 수호자를 자청하며 대권까지 거머줬던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과오는 바로 사법을 국민 불신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번영연구소(Prosperity Institute)1)의 2023년 국가별 번영 지수 발표에서 한국은 종합 29위라는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평가 항목 중 사법 시스템 신뢰도는 167개국 중 155위로 거의 낙제점을 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사법 시스템은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고, 이런 불신감은 사법이 사회적 갈등이나 불의를 해소하는 기능보다는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재생산하고 악화시켜 소모적 혼란으로 변질되게 만들고 있다. 정치권에서 당리당략에 따라 상대를 정치적으로 죽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남발했던 고소·고발 문화는 정치와 사법 모두를 불신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제 사회 전체에 질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 일반화되어버린 지 오래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관용의 문화가 자리 잡을 공간이 사라져가고 사법을 활용하여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승패문화가 만연하면서 돈과 권력 앞에 사법은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한낱 기술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찌보면 지금의 사법 시스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이기기만 하면 최고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법꾸라지들이 기생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새 정부가 추진중인 사법개혁은 내용과 제도의 개혁을 넘어 사회공동체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새 정부의 사법개혁이 단순히 악인을 응징하고 처단하는 응보적 개념의 완성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응보적 사법이 만드는 사회문화는 가해자의 고의적 책임의 회피, 피해자의 정의 필요 외면, 공동체성의 약화, 금권재판 현상 등을 고착시키고 종국에는 사법을 통한 보복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결국 사법 개혁은 사법 시스템의 정비를 넘어 좀 더 피해자 중심적이고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인간 중심의 정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는 회복적 정의(사법) 모델을 도입하는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회복적 정의 개념을 사법개혁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언급한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1997년 유엔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2)는 회원 국가들에게 범죄와 그 피해에 대한 대안적 대응전략으로 회복적 사법의 활용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발 맞춰 한국 정부도 이제 사법개혁의 방향성 안에 회복적 사법의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시점이 되었다. UNODC는 회복적 사법의 도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길이고, 가해자와 공동체의 책임과 역할을 피해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회복적 접근이 가져올 문화적 변화는 자발성에 기초한 책임감과 화해 그리고 사회적 대통합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12.3 내란으로 야기된 불의와 부조리, 사법 권한의 오남용이 불러온 사법 불신과 사회 가치의 혼돈 속에 출범한 새 정부의 사법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회복적 정의 관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복적 정의는 단순히 더 효과적인 사법 시스템의 개혁 프로그램을 넘어, ‘정의란 무엇이고 정의를 이루는 과정은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관점과 방식의 변화를 통해 사회적 화합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과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회복적 정의가 사법개혁의 핵심 의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혁신적인 방향 전환을 위해 국민 인식의 변화와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 선결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회복적 정의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국민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 캠페인, 언론 홍보, 실천 사례 공유 등 대중적 소통을 위한 대 국민 교육과 홍보전략이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종교계와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져야 한다. 정의의 회복이 절실한 시대에 회복적 정의가 올바른 길라잡이의 한 축이 되길 기대해 본다.



1) Legatum Institute라고 불리던 이 연구소는 현재 Prosperity Institute로 이름을 바뀌 운영되고 있다. 홈페이지(https://www.prosperity.com) 참조.

2) UNODC는 2006년과 2020년 두 번에 걸쳐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위한 핸드북>을 발간하며 회복적 정의 실천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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