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이야기]상상을 시작할 때, <평화란 어떤 걸까?> l 박성실 연구원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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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시작할 때, <평화란 어떤 걸까?>


박성실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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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란 어떤 것일까요?’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추상적이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요? 비현실적이라고요? 그런 분들을 위해 그림책 한권을 준비했어요. 하마다 게이코가 쓰고 그린, 《평화란 어떤 걸까?》(박종진 옮김/사계절 출판사)입니다.


 첫 장을 넘기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운 커다랗고 검은 비행기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왼쪽 구석에는 작은 글씨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쓰여 있지요. 이 책은 한국·중국·일본의 작가 및 출판사가 ‘아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기원하며 공동으로 기획한 ‘평화그림책’ 중 하나입니다. 20세기 초·중반 동북아시아는 전쟁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 때문이었죠. 지금까지도 한국과 중국에는 여전히 피해자가 생존해 있고, 피해 보상과 책임 소재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제국주의와 이념 분쟁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아직 휴전 상태고, 핵문제는 큰 숙제로 남겨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쟁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에서, 분단된 한반도에서 중요한 의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그의 여러 저서에서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했습니다. ‘전쟁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 평화’,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해석한 거죠. 평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림책 《평화란 어떤 걸까?》도 그렇습니다. 저자는 평화를 ‘~하지 않는것’과 ‘~할 수 있는 것’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가령 “집과 마을을 파괴하지 않는 것”과 “아침까지 푹 잘 수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폭력을 ‘전쟁’에 국한시키지 않고 다각도에서 접근해 ‘~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첨가해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한 상태를 그려낸 거죠.


 보통 폭력은 갈등에서 비롯됩니다. 인생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삶은 변화무쌍하고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갈등 한 가지를 제거하면 또 다른 갈등 상황이 나타납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기도 하죠. 갈등이 심화되면 폭력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삶은 갈등을 내포하고, 인간은 매순간 여러 층위의 폭력과 마주합니다. 통제하기 어려운 거죠. 따라서 평화를 ‘갈등 혹은 폭력의 부재’라고 보았을 때 평화가 현실에 도래하기란 요원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국제분쟁조정가 히즈키아스 아세파(Hizkias Assefa)는 그의 책, 《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패러다임》(KAP)에서 “진정한 평화는 갈등이나 폭력의 부재 이상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평화는 파괴적인 에너지를 협력적이며 건설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한 거죠.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갈등을 분석하고, 양쪽이 동일하게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해 협력하도록 갈등으로 쏠린 에너지를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 즉 갈등을 다루는 그 과정이 평화라는 말입니다.


 ‘평화’는 한자로 ‘평평할’ 평(平)에 ‘조화로운’ 화(和)를 씁니다. 여기서 ‘화’는 쌀 미(米)와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문자적으로 평화는 모두가 공평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라는 거죠. 생존의 욕구가 무시되지 않는 상태 말입니다. 위 그림책에서도 비슷한 문구가 나옵니다. “배가 고프면 누구든 밥을 먹을 수 있고”, 그뿐인가요?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는 것 등도 등장하죠. 평화는 ‘정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정의를 ‘올바름이 회복된 상태’라고 봤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언제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정의를 추구하기보다 다수에 순응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폭력의 길이라 해도 말입니다. 평화는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한쪽에서는 착취와 억압이 시작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얀마 내전, 수단 내전 등만 보아도 세상이 그저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부가 지나가고 민주주의가 도래한 대한민국에서도 정의 문제는 여전히 복잡하고, 사람들은 크든 작든 일상의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됩니다. 이렇듯 ‘평화’와 관련된 문제는 일상과 밀접한, 현실적인, 너무도 현실적인 것입니다. 회피할 수 없는 거죠. 곧 일상에서부터 크고 작은 갈등을 다루는 과정이 필요하며, 매 의제마다 정의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하는 것, 네가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너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책의 마지막 문구입니다. 나의 삶을 기뻐하고, 타인의 삶을 기뻐하는 것,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를 그립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평화가 어떤 상태인지조차 말하기 어려울까요?


 살면서 ‘평화’란 어떤 것인지 질문 받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요? 평화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본 경험은 얼마나 있었나요? 혹시 평화로운 상태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요? 평화에 대한 오해 때문에 평화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요? 혹시 구조의 폭력 앞에 무기력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인가요?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갈등을 건강하게 극복해본 경험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부분 세상은 갈등 상황에서 힘으로 우위를 점하거나 회피하라고 배우고 가르쳤으니까요. ‘성공’에 대해서는 끝도 없는 질문과 계획, 방법들을 찾아내면서 나와 너, 우리의 일상을 끝도 없이 좌지우지하는 ‘평화’에 대해서는 질문도, 구현 방법도 고민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평화란 어떤 것인가요?’ 지금 여기에 짧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평화에 대한 상상을 담아내고 있지요. 그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이 책을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당신은 평화를 원하나요? 당신의 평화는 어떤 건가요? 만약 당신이 대답을 주저하고 있다면, 지금이 평화에 대한 상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위 글은 매거진, <허브> 98호(2021.6)에 실린 글을 수정 및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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