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와 페미니즘
주제글1 회복적 정의와 여성
김훈태 前 초등학교 및 발도르프학교 교사, 회복적 정의연구소 연구원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을 한다는 건 늘 조심스럽다. 백인이 흑인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자본가가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심지어 부조리해 보인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해, 또는 페미니즘과 관련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페미니즘이 보편적 사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페미니즘과 가부장제
일차적으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는 현상이다.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가부장제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운동”(고영복, 2000)이자, 여성해방운동이다. 가부장제는 가부장으로서의 남성이 가족에 대해 지배권을 가지는 가족 형태로,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 지배 형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관념은 전통사회뿐 아니라 자본주의사회 곳곳에 녹아 있다(미즈, 2014).
그렇다면 한국의 20대 남성들은 성평등을 거부하는 걸까? 놀랍게도 한 연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은 20대 여성에만 뒤질 뿐 다른 어떤 세대・성별보다 높았다(최종숙, 2020). 그들은 남성의 육아나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한 보상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 다만 여성 가산점과 여성 할당제와 같은 ‘결과의 평등’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징병제에 의해 남성들은 피해를 보는데 정작 그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논리는 그들의 억울함에 대한 타당한 이유처럼 보인다.
억울함은 징병제뿐이 아니다. 20대 남성들은 스스로를 가부장제의 수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로 이득을 얻고 여성에게 피해를 준 건 기성세대의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여성차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남성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믿는다. 201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한 19-24세 남성은 33.8%, 24-29세 남성은 47%에 불과했다( 「2019년 한국의 성평등 보고서」). 같은 연령대 여성이 각각 90.8%, 86.2%라는 점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권력 사회이다. 여성가족부가 2025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발표한 성별 임금격차 조사 결과를 보면,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한 2980개 공시 대상 회사의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9780만원인 반면 여성의 평균임금은 6773만원에 불과했다. 성별 임금격차가 30.7%에 해당하는 것으로 OECD 1위이다. 남녀 간 졸업 후 2년 안에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잡은 비율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며, 90% 가량의 여성이 중소기업에 취업한다. 또한 결혼 이후 남성은 임금 변동이 없지만 여성은 소득이 낮아진다. 20대에게 취업 문제는 공통의 문제이지만 여성과 남성의 차별은 뚜렷해 보인다.
구조적 차별은 경제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36.1%가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19.4%는 전·현 배우자나 연인, 소개팅 상대 등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중 전·현 연인으로부터 여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6.7%였다. 지난 1년 동안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당한 비율은 3.5%였다. 그리고 10명 중 4명은 ‘일상생활에서 여성폭력 피해를 볼까 두렵다’라고 답했다. 남성들에게는 소개팅 상대가 못 생겼을까봐, 더치페이를 안 할까봐 등이 걱정이라면, 여성들에게는 실제로 폭력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큰 것이다.
남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과연 한국 사회의 2,30대 여성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2016년이후 매년 8% 이상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2023년 여성가족부 통계를 보면 성폭력 범죄는 7년간 (2015-2022) 32.6% 증가했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는 2.5배로 늘었다. 10년간(2013-2022)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은 여성이었으며, 2,30대 비중이 가장 높았다. 성폭력 피해 경험은 여성의 우울을 증폭시킨다. 또한 외모·성격 등을 통제당하며 형성된 낮은 자존감은 여성들이 성범죄 피해를 겪은 뒤 자신을 탓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 가부장제 문화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차별과 혐오의 문제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첫 문장이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각자의 삶에서 자유롭게 주인으로 살 권리가 있다. 또한 고유한 자아를 지닌 존재로서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똑같이 존엄하다. 다른 이들보다 우월한 사람도, 우월한 집단도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를, 또는 어떤 집단을 열등하게 여길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존재이다.
나는 세계인권선언의 저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감동을 느낀다. 그 많은 전쟁을 겪고 부조리한 사회체제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지성을 가진 인류의 한 일원으로서 우리는 타인을 차별해서는 안 되고 착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월감을 느끼며 타인을 멸시하거나 혐오하는 것이 곧 폭력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이 근대 인류의 크나큰 성취라고 생각한다. 세계인권선언은 근대사회의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인권선언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고, 권력을 차지한 이들의 존엄과 권리는 특별해 보인다. 사랑을 가르쳤던 예수의 뜻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주류 교회에서는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 혐오는 2,30대를 넘어 이제 10대 아이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기성세대와 달리 아무런 권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들이다. 이처럼 이상과 달리 근대사회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차별과 혐오는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차별은 사회구조적 실재이고, 혐오는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다(박이대승, 2026).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지만, 타인을 모욕, 비하, 조롱하는 행위는 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그런 행위가 차별을 지지하고 강화한다면 차별 행위의 일종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와 달리, 사회적 약자가 지배 집단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고 조롱을 하는 것은 다양한 평가 기준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방송에 나와 특정 신체조건을 갖추지 못하는 남성은 루저(loser)라고 발언했다면 그것은 부적절할지언정 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남성이 온라인에서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 대해 특정 음식에 빗댄 조롱을 했다면 그것은 성차별에 해당하므로 제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행위가 현재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주체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페미니즘이 극단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여성혐오에 맞서 똑같은 방식으로 조롱하고 혐오하는 ‘미러링’이 유행하면서 혐오문화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나는 소위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것과 페미니즘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폭발한 여성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일부 표현은 지나치게 응보적이라고 여긴다. 강한 반감은 또 다른 반감을 증폭시킨다.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으로 남성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옳은 접근이라고 볼 수 없다. 사회운동은 기본적으로 보편성을 지향해야 한다. 극단적 혐오세력에 대해 비난하고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남성 일반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는 운동을 고립시킬 뿐이다. 남는 것이 혐오와 폐허뿐이라면 우리는 운동을 왜 하는 것일까?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혐오로 번진 분노와 반감을 부정할 게 아니라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특히 젊은 세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남성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얼마 전 타계한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병리적 현상은 타인을 객체(대상)로 여기는 주체-객체의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국가나 시장 같은 시스템의 논리이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생활세계에 필요한 사고방식은 나도 주체이고 너도 주체라는 상호주체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다. 여성을 객체로 여기는 가부장제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또한 그동안 남성 중심의 권력을 바탕으로 여성이 소외되었으니 남성도 소외되어야 한다는 식의 ‘급진적’ 사고방식은 페미니즘과 거리가 멀다. 여성해방이 곧 인간해방의 길이어야 할 테니 말이다.
참고문헌
고영복. 2000. 『사회학사전』. 사회문화연구소.
박이대승. 2026.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오월의 봄.
미즈, 마리아. 2014. 최재인 역.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최종숙. 2020.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성향과 젠더의식 비교를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1) 이정봉, “성평등 좋은데 페미는 싫다? 외신들이 심해생물 보듯 뜯어 보는 ‘한국 이대남’”. 『중앙일보』. 2022.02.16.
2) 김효실, “2030세대, 남녀차별 심각성보다 세대갈등 더 크게 느껴”. 『한겨레』. 2025.12.17.
3) 우혜림, “‘딸이니까’‘여자라서’ …내가 나인게 문제라면 뭘 할 수 있죠”. 『경향신문』.2025.12.22.
4) 그렇다고 젊은 남성들이 입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2,30대 젊은 남성들의 박탈감과 억울함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성세대에 비해 그들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 환경적으로 세상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고 비난하는 것은 사회적 연대를 해치는 일이다.
주제글1 회복적 정의와 여성
김훈태 前 초등학교 및 발도르프학교 교사, 회복적 정의연구소 연구원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을 한다는 건 늘 조심스럽다. 백인이 흑인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자본가가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심지어 부조리해 보인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해, 또는 페미니즘과 관련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페미니즘이 보편적 사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페미니즘과 가부장제
일차적으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는 현상이다.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가부장제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운동”(고영복, 2000)이자, 여성해방운동이다. 가부장제는 가부장으로서의 남성이 가족에 대해 지배권을 가지는 가족 형태로,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 지배 형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관념은 전통사회뿐 아니라 자본주의사회 곳곳에 녹아 있다(미즈, 2014).
그렇다면 한국의 20대 남성들은 성평등을 거부하는 걸까? 놀랍게도 한 연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은 20대 여성에만 뒤질 뿐 다른 어떤 세대・성별보다 높았다(최종숙, 2020). 그들은 남성의 육아나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한 보상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 다만 여성 가산점과 여성 할당제와 같은 ‘결과의 평등’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징병제에 의해 남성들은 피해를 보는데 정작 그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논리는 그들의 억울함에 대한 타당한 이유처럼 보인다.
억울함은 징병제뿐이 아니다. 20대 남성들은 스스로를 가부장제의 수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로 이득을 얻고 여성에게 피해를 준 건 기성세대의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여성차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남성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믿는다. 201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한 19-24세 남성은 33.8%, 24-29세 남성은 47%에 불과했다( 「2019년 한국의 성평등 보고서」). 같은 연령대 여성이 각각 90.8%, 86.2%라는 점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권력 사회이다. 여성가족부가 2025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발표한 성별 임금격차 조사 결과를 보면,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한 2980개 공시 대상 회사의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9780만원인 반면 여성의 평균임금은 6773만원에 불과했다. 성별 임금격차가 30.7%에 해당하는 것으로 OECD 1위이다. 남녀 간 졸업 후 2년 안에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잡은 비율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며, 90% 가량의 여성이 중소기업에 취업한다. 또한 결혼 이후 남성은 임금 변동이 없지만 여성은 소득이 낮아진다. 20대에게 취업 문제는 공통의 문제이지만 여성과 남성의 차별은 뚜렷해 보인다.
구조적 차별은 경제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36.1%가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19.4%는 전·현 배우자나 연인, 소개팅 상대 등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중 전·현 연인으로부터 여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6.7%였다. 지난 1년 동안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당한 비율은 3.5%였다. 그리고 10명 중 4명은 ‘일상생활에서 여성폭력 피해를 볼까 두렵다’라고 답했다. 남성들에게는 소개팅 상대가 못 생겼을까봐, 더치페이를 안 할까봐 등이 걱정이라면, 여성들에게는 실제로 폭력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큰 것이다.
남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과연 한국 사회의 2,30대 여성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2016년이후 매년 8% 이상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2023년 여성가족부 통계를 보면 성폭력 범죄는 7년간 (2015-2022) 32.6% 증가했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는 2.5배로 늘었다. 10년간(2013-2022)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은 여성이었으며, 2,30대 비중이 가장 높았다. 성폭력 피해 경험은 여성의 우울을 증폭시킨다. 또한 외모·성격 등을 통제당하며 형성된 낮은 자존감은 여성들이 성범죄 피해를 겪은 뒤 자신을 탓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 가부장제 문화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차별과 혐오의 문제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첫 문장이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각자의 삶에서 자유롭게 주인으로 살 권리가 있다. 또한 고유한 자아를 지닌 존재로서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똑같이 존엄하다. 다른 이들보다 우월한 사람도, 우월한 집단도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를, 또는 어떤 집단을 열등하게 여길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존재이다.
나는 세계인권선언의 저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감동을 느낀다. 그 많은 전쟁을 겪고 부조리한 사회체제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지성을 가진 인류의 한 일원으로서 우리는 타인을 차별해서는 안 되고 착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월감을 느끼며 타인을 멸시하거나 혐오하는 것이 곧 폭력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이 근대 인류의 크나큰 성취라고 생각한다. 세계인권선언은 근대사회의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인권선언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고, 권력을 차지한 이들의 존엄과 권리는 특별해 보인다. 사랑을 가르쳤던 예수의 뜻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주류 교회에서는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 혐오는 2,30대를 넘어 이제 10대 아이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기성세대와 달리 아무런 권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들이다. 이처럼 이상과 달리 근대사회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차별과 혐오는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차별은 사회구조적 실재이고, 혐오는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다(박이대승, 2026).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지만, 타인을 모욕, 비하, 조롱하는 행위는 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그런 행위가 차별을 지지하고 강화한다면 차별 행위의 일종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와 달리, 사회적 약자가 지배 집단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고 조롱을 하는 것은 다양한 평가 기준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방송에 나와 특정 신체조건을 갖추지 못하는 남성은 루저(loser)라고 발언했다면 그것은 부적절할지언정 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남성이 온라인에서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 대해 특정 음식에 빗댄 조롱을 했다면 그것은 성차별에 해당하므로 제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행위가 현재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주체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페미니즘이 극단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여성혐오에 맞서 똑같은 방식으로 조롱하고 혐오하는 ‘미러링’이 유행하면서 혐오문화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나는 소위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것과 페미니즘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폭발한 여성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일부 표현은 지나치게 응보적이라고 여긴다. 강한 반감은 또 다른 반감을 증폭시킨다.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으로 남성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옳은 접근이라고 볼 수 없다. 사회운동은 기본적으로 보편성을 지향해야 한다. 극단적 혐오세력에 대해 비난하고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남성 일반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는 운동을 고립시킬 뿐이다. 남는 것이 혐오와 폐허뿐이라면 우리는 운동을 왜 하는 것일까?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혐오로 번진 분노와 반감을 부정할 게 아니라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특히 젊은 세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남성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얼마 전 타계한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병리적 현상은 타인을 객체(대상)로 여기는 주체-객체의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국가나 시장 같은 시스템의 논리이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생활세계에 필요한 사고방식은 나도 주체이고 너도 주체라는 상호주체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다. 여성을 객체로 여기는 가부장제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또한 그동안 남성 중심의 권력을 바탕으로 여성이 소외되었으니 남성도 소외되어야 한다는 식의 ‘급진적’ 사고방식은 페미니즘과 거리가 멀다. 여성해방이 곧 인간해방의 길이어야 할 테니 말이다.
참고문헌
고영복. 2000. 『사회학사전』. 사회문화연구소.
박이대승. 2026.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오월의 봄.
미즈, 마리아. 2014. 최재인 역.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최종숙. 2020.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성향과 젠더의식 비교를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1) 이정봉, “성평등 좋은데 페미는 싫다? 외신들이 심해생물 보듯 뜯어 보는 ‘한국 이대남’”. 『중앙일보』. 2022.02.16.
2) 김효실, “2030세대, 남녀차별 심각성보다 세대갈등 더 크게 느껴”. 『한겨레』. 2025.12.17.
3) 우혜림, “‘딸이니까’‘여자라서’ …내가 나인게 문제라면 뭘 할 수 있죠”. 『경향신문』.2025.12.22.
4) 그렇다고 젊은 남성들이 입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2,30대 젊은 남성들의 박탈감과 억울함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성세대에 비해 그들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 환경적으로 세상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고 비난하는 것은 사회적 연대를 해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