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간절히 돌보는 사람들이다
RJ 현장 가정형 wee 센터 이야기
김동원 원주여학생가정형Wee센터 센터장

김동원: 제주도에서 평화활동가로 살다가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여학생들만 있는 작은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에 관심이 많아 2019년에는 여러 평화단체들과 함께 ‘광주평화기행워크숍’을 코디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이 진행한 회복적 대화모임을 경험하고 회복적 정의의 매력에 풍덩 빠졌다.
『학생을 위한 또 하나의 울타리』 가정형Wee센터
가정형Wee센터1)는 위(We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서 위기, 가정 위기, 학교 위기로 인해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들에게 교육・상담・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원가정 또는 원적학교로 복귀하도록 지원하는 기숙형 모델이다. 2010년 대전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에 19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가정형Wee센터에 오는 학생들은 가정폭력, 아동학대, 가정해체 등의 가정 위기 또는 학교폭력, 교우관계문제 등의 학교 위기를 겪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더해 우울, 불안, 트라우마 등의 정서 위기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이 민간위탁방식으로 운영하는 원주여학생가정형Wee센터(이하 숨길학교)는 강원도에 속한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교사, 상담사, 임상심리사, 교육복지사 등의 전문인력이 교육・상담・돌봄을 모두 수행하는 기숙형태의 대안학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길잡이 교사’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서라도 위기에 놓인 학생들에게 길이 되어주고, 실질적인 울타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어떤 길이고 울타리였는가?2)
숨길학교에서 지낸 지 4년이 넘었다. 이곳에서 나는 ‘달맞이’라는 이름을 쓴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동료 교사든 나를 ‘달맞이’라고 부른다. 꽃말조차 아름답기 그지없는 ‘달맞이’3)라는 이름처럼 어여쁘게 학생들을 만날 기대를 안고 일을 시작했다. 훌륭한 교사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특별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첫 번째 학생은 내가 담임을 맡을 때의 첫 학생이다. 그 학생은 걷는 건 좋아했는데 자전거 타는 걸 너무나도 싫어했다. 자전거 수업때마다 내 앞에서 자전거를 내던져버렸다. 자전거만 보면 토할 거 같다는 학생은 내가 끈질기게 버틴 탓에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일주에 성공했다. 그 학생은 숨길학교를 떠나 원래 있던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자전거보다 나를 보면 토할 거 같은 느낌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학생 덕분에 학생들 곁에서 참을성 있게 어려움을 함께 넘어서는 길잡이 같은 교사가 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두 번째 학생은 동료 교사 모두가 꺼려하는 학생이었다. 폭력적인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고, 가정으로부터 분리가 되어 숨길학교로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도 폭력적이었지만, 그 부모도 학생에게 매를 맞고 있었다. 나중에는 동료 교사들이 학생에게서 욕을 듣고 멱살을 잡히기까지 했다. 부모는 나에게 자기 딸이 평생 동안 있을 ‘수용소 같은 병원’을 찾아봐 달라며 눈물 섞인 하소연을 했다. 그 부모의 눈물을 보고 오히려 나는 어떻게 해서든 학생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겠노라 다짐을 했고, 지금은 여느 가정처럼 잘 지내고 있다. 학생이든 부모든 어느 한 쪽이 상대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면 나는 그걸 희망 삼아 그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되겠다며 다짐했다. 그렇게 아무리 미워도 희망을 바라보게 되었다.
세 번째 학생은 돈 벌게 해준다는 말만 믿고 따라갔다가 성 피해를 당한 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동학대만큼이나 많은 사례가 성폭력이었다. 학생의 사연을 듣기만 해도 그 학생의 겪은 피해가 고스란히 내 몸에 각인되는 느낌이었다. 어떤 경우는 아무 고통도 못 느낄 정도로 무감각해지는 경험도 있었다. 정신을 압도하는 고통을 겪으면 이렇게 무감각해진다는 걸 이해했다. 어떻게 그 학생의 아픔을 돌봐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또다시 가해 남성에게서 피해학생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학생과 보호자의 동의를 받았고 경찰에는 함정수사를 제안해 가해 남성을 현장에서 즉시 검거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계획이었는데, 나는 어떻게든 용기내어 가해 남성을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면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함을 배웠다.
내가 해 온 일은 학생들의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폭력 속에 사무쳐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무언가를 잃지 않도록 대신 지켜주고 회복시켜주는 일이었다. 그 앞에서 나는 흔들림 없이 단단해야 했고, 모든 걸 포기한 그들보다 더 절박해야 했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온화해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 학생들에게 울타리 지주목 하나하나를 세울 수가 있었다.
회복적 생활학교라는 간판을 걸지 못해도 상관없다
숨길학교에 있는 달맞이는 숨길학교를 회복적 생활학교로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덤벼들었지만 매번 현실 앞에 주저앉았다. 폭력을 겪어 온 우리 학생들과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갇힌 학부모들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저없이 내뱉는다. 그런 그들에게 ‘서로를 포기하지 말자,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는 말을 감히 꺼낼 수가 없었다. 숨길학교는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기 어려운 불모지인가? 이 질문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학생들이 나에게 준 선물 같은 교훈들을 되새겨 보았다. 인내, 희망, 용기... 나를 비롯해 숨길학교에 있는 동료들 모두가 학생들에게 어떤 울타리를 만들어 왔는지 따져보았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시선에서 숨길학교를 다시 이해해 보았다.
숨길학교는 서클대화를 수시로 한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동그랗게만 앉으면 벌 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보다. 어느 날 서클대화가 끝난 뒤 갈등의 두 당사자들이 조용히 나를 찾아 온 적이 있다. 서클대화가 힘들어 죽겠으니 차라리 매를 맞는 게 낫겠다며 씩씩거렸다. 그 즉시 서클대화를 중단했다. 이미 그 두 학생은 같은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점점 숨길학교가 서클대화를 통해 갈등을 마주하고 풀어가는 특이한 학교라는 인식이 생겼고, 이제는 서클대화를 하자며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한다.
숨길학교는 들어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건 어려운 곳이다.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이 오면 최선을 다해서 환대와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최선을 다해서 관계를 놓지 않는다. 학교와 가정생활이 힘들어서 숨길학교에 온 학생들인데, 숨길학교 생활이 더 힘들어서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울며불며 교사들에게 매달리는 게 숨길학교의 일상이기도 하다. 아무리 규칙을 어겨도 퇴교를 당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왜 이렇게 나를 놓지 않는지’, 그런 선생님들을 끔찍해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곳처럼 생각했지만, 점점 ‘나를 붙잡아 주는 곳’ 이라는 생각으로 바뀐다. 관계라는 단어를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관계에서 희망을 잃어 마음의 병을 얻거나 비행에 의존하는 학생들, 방황을 해오던 학생들이 다시 관계를 통해 제자리를 찾아간다. 양육을 포기하겠다는 부모의 입에서는 “그럼에도 키워보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숨길학교는 집안 문제에 간섭을 잘한다. 가족의 개념은 다양해지면서도 느슨해졌고, 개인주의화되면서 이제 가족문제는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학생들의 위기는 모두 가족에서 기인되는데, 제대로 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가족을 깊이 만나야 한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숨길학교는 집안까지 들어가서 집안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끄집어내는 걸 잘한다. 어느 부모는 자기 자녀를 숨길학교에 보내놓고는 나 몰라라 한 적이 있다. 전화를 받아도 불친절한 건 일쑤이고 학생이 가족 관계로 힘들어 한다는 말을 하면 왜 남의 가족일에 신경 쓰냐며 화내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안 볼 사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정에서 학생이 부모에게 맞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학생도 부모에게 해를 가했는지, 부모는 자신의 딸을 경찰에 신고해버렸다. 학생은 폭력사건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고 부모는 취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며 각오가 단단했다. ‘이제는 하다못해 훈육도 외주를 주는가 보다’라는 생각에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설득은 해야 했다. 부모를 찾아가기도 했고, 학교로 찾아오게도 만들었다. 설득만 했을까. 안 오면 큰일이 생길 것처럼 나름의 협박(?)도 했다. 부모는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회복적 경찰활동 제도를 안내했지만 끝끝내 학생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 과정에서 부모는 자녀에 대한 양육을 포기하겠다는 말보다 노력하겠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실제로 노력을 했다. 학생은 대학을 갔고, 부모는 관계를 아예 끊지 않았다.
숨길학교를 회복적 생활학교라고 내세우기는 부끄럽지만, 숨길학교는 회복적 정의가 간절히도 지키고자하는 소중한 가치들을 나름대로 지켜오고 있었다.
회복적 정의는 돌봄의 다른 말이다
돌봄을 받아 보았는가? 내가 온전히 나의 존재로 성장하고, 스스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관계를 맺어 보았는가? 헌신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받아 보았는가?
돌봄은 단순히 곁에 머물며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 그 이상으로 심오하면서도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돌봄은 서로를 믿고 때로는 인내하며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는 게 돌봄이다.
숨길학교는 돌봄의 가치를 근간으로 세워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오고 있다. 상처 속에 갇힌 학생과 학부모를 차별과 편견 없이 안아준다. 폭력의 피해자든 행위자든 존재 그대로 만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을 믿고, 그들도 우리를 믿게 만든다. 그 과정이 정말 지난하고 괴롭지만 신뢰가 생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을 존재로서 돌보는 것부터 한다. 그 다음에는 관계를 돌본다. 관계를 단절하고 싶어 해도 희망을 갖고 기다려준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학생을 가정과 학교로 복귀시키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일이다. 때로는 우리 학생들이 겪은 심한 갈등이나 폭력을 돌보기도 한다. 표현이 우습지만, 실제로 돌보는 것이다. 그 갈등과 폭력을 대신 지워주고 싶을 만큼 슬퍼하고 분노하지만, 그 갈등과 폭력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결의 가능성이 생긴다. 미워하고 분노하면서도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느 날 나는 성 피해의 가해 남성이 있는 교도소로 찾아가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목적은 단 하나, 피해 당사자가 원하는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 그러면서 깨달았다. ‘무모하고 치욕스럽더라도 이러한 폭력도 돌봐야하는 게 나의 일이구나’라는 걸 말이다.
내가 있는 곳이 일반적인 교육현장과는 다르지만,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기에 점점 현실이 어렵다는 걸 나도 안다. 나 자신을 회복적 정의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회복적 정의가 우리 사회에서 잊혀지지 않고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잘 돌봐야한다는 것도 잘 안다. 회복적 정의를 믿어야 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회복적 정의를 돌보는 마음으로 곳곳에서 헌신하는 당신들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어느 책에서 한 작가는 ‘헌신이 사라지면 돌봄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부디 힘든 조건 속에서도 돌봄을 포기하지 않길...
1) 가정형Wee센터는 2008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주도로 만들어진 위(Wee)프로젝트를 통해 치유와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일상과 환경의 변화를 주는 대안적 형태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전체 19개소 중 여학생 8개소, 남학생 7개소, 초등학생 2개소, 통합형 2개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역 시・도 교육청에 따라 운영형태는 크게 위탁교육형, 통학형으로 나누어진다.
2) 학생과 관련한 사례는 비밀유지를 위해 사실과 다르게 일부를 각색하였고, 글의 취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였다.
3)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 무언의 사랑, 마법 등이다. [편집자 주]
RJ 현장 가정형 wee 센터 이야기
김동원 원주여학생가정형Wee센터 센터장
김동원: 제주도에서 평화활동가로 살다가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여학생들만 있는 작은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에 관심이 많아 2019년에는 여러 평화단체들과 함께 ‘광주평화기행워크숍’을 코디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이 진행한 회복적 대화모임을 경험하고 회복적 정의의 매력에 풍덩 빠졌다.
『학생을 위한 또 하나의 울타리』 가정형Wee센터
가정형Wee센터1)는 위(We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서 위기, 가정 위기, 학교 위기로 인해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들에게 교육・상담・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원가정 또는 원적학교로 복귀하도록 지원하는 기숙형 모델이다. 2010년 대전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에 19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가정형Wee센터에 오는 학생들은 가정폭력, 아동학대, 가정해체 등의 가정 위기 또는 학교폭력, 교우관계문제 등의 학교 위기를 겪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더해 우울, 불안, 트라우마 등의 정서 위기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이 민간위탁방식으로 운영하는 원주여학생가정형Wee센터(이하 숨길학교)는 강원도에 속한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교사, 상담사, 임상심리사, 교육복지사 등의 전문인력이 교육・상담・돌봄을 모두 수행하는 기숙형태의 대안학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길잡이 교사’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서라도 위기에 놓인 학생들에게 길이 되어주고, 실질적인 울타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어떤 길이고 울타리였는가?2)
숨길학교에서 지낸 지 4년이 넘었다. 이곳에서 나는 ‘달맞이’라는 이름을 쓴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동료 교사든 나를 ‘달맞이’라고 부른다. 꽃말조차 아름답기 그지없는 ‘달맞이’3)라는 이름처럼 어여쁘게 학생들을 만날 기대를 안고 일을 시작했다. 훌륭한 교사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특별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첫 번째 학생은 내가 담임을 맡을 때의 첫 학생이다. 그 학생은 걷는 건 좋아했는데 자전거 타는 걸 너무나도 싫어했다. 자전거 수업때마다 내 앞에서 자전거를 내던져버렸다. 자전거만 보면 토할 거 같다는 학생은 내가 끈질기게 버틴 탓에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일주에 성공했다. 그 학생은 숨길학교를 떠나 원래 있던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자전거보다 나를 보면 토할 거 같은 느낌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학생 덕분에 학생들 곁에서 참을성 있게 어려움을 함께 넘어서는 길잡이 같은 교사가 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두 번째 학생은 동료 교사 모두가 꺼려하는 학생이었다. 폭력적인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고, 가정으로부터 분리가 되어 숨길학교로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도 폭력적이었지만, 그 부모도 학생에게 매를 맞고 있었다. 나중에는 동료 교사들이 학생에게서 욕을 듣고 멱살을 잡히기까지 했다. 부모는 나에게 자기 딸이 평생 동안 있을 ‘수용소 같은 병원’을 찾아봐 달라며 눈물 섞인 하소연을 했다. 그 부모의 눈물을 보고 오히려 나는 어떻게 해서든 학생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겠노라 다짐을 했고, 지금은 여느 가정처럼 잘 지내고 있다. 학생이든 부모든 어느 한 쪽이 상대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면 나는 그걸 희망 삼아 그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되겠다며 다짐했다. 그렇게 아무리 미워도 희망을 바라보게 되었다.
세 번째 학생은 돈 벌게 해준다는 말만 믿고 따라갔다가 성 피해를 당한 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동학대만큼이나 많은 사례가 성폭력이었다. 학생의 사연을 듣기만 해도 그 학생의 겪은 피해가 고스란히 내 몸에 각인되는 느낌이었다. 어떤 경우는 아무 고통도 못 느낄 정도로 무감각해지는 경험도 있었다. 정신을 압도하는 고통을 겪으면 이렇게 무감각해진다는 걸 이해했다. 어떻게 그 학생의 아픔을 돌봐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또다시 가해 남성에게서 피해학생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학생과 보호자의 동의를 받았고 경찰에는 함정수사를 제안해 가해 남성을 현장에서 즉시 검거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계획이었는데, 나는 어떻게든 용기내어 가해 남성을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면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함을 배웠다.
내가 해 온 일은 학생들의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폭력 속에 사무쳐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무언가를 잃지 않도록 대신 지켜주고 회복시켜주는 일이었다. 그 앞에서 나는 흔들림 없이 단단해야 했고, 모든 걸 포기한 그들보다 더 절박해야 했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온화해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 학생들에게 울타리 지주목 하나하나를 세울 수가 있었다.
회복적 생활학교라는 간판을 걸지 못해도 상관없다
숨길학교에 있는 달맞이는 숨길학교를 회복적 생활학교로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덤벼들었지만 매번 현실 앞에 주저앉았다. 폭력을 겪어 온 우리 학생들과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갇힌 학부모들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저없이 내뱉는다. 그런 그들에게 ‘서로를 포기하지 말자,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는 말을 감히 꺼낼 수가 없었다. 숨길학교는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기 어려운 불모지인가? 이 질문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학생들이 나에게 준 선물 같은 교훈들을 되새겨 보았다. 인내, 희망, 용기... 나를 비롯해 숨길학교에 있는 동료들 모두가 학생들에게 어떤 울타리를 만들어 왔는지 따져보았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시선에서 숨길학교를 다시 이해해 보았다.
숨길학교는 서클대화를 수시로 한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동그랗게만 앉으면 벌 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보다. 어느 날 서클대화가 끝난 뒤 갈등의 두 당사자들이 조용히 나를 찾아 온 적이 있다. 서클대화가 힘들어 죽겠으니 차라리 매를 맞는 게 낫겠다며 씩씩거렸다. 그 즉시 서클대화를 중단했다. 이미 그 두 학생은 같은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점점 숨길학교가 서클대화를 통해 갈등을 마주하고 풀어가는 특이한 학교라는 인식이 생겼고, 이제는 서클대화를 하자며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한다.
숨길학교는 들어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건 어려운 곳이다.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이 오면 최선을 다해서 환대와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최선을 다해서 관계를 놓지 않는다. 학교와 가정생활이 힘들어서 숨길학교에 온 학생들인데, 숨길학교 생활이 더 힘들어서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울며불며 교사들에게 매달리는 게 숨길학교의 일상이기도 하다. 아무리 규칙을 어겨도 퇴교를 당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왜 이렇게 나를 놓지 않는지’, 그런 선생님들을 끔찍해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곳처럼 생각했지만, 점점 ‘나를 붙잡아 주는 곳’ 이라는 생각으로 바뀐다. 관계라는 단어를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관계에서 희망을 잃어 마음의 병을 얻거나 비행에 의존하는 학생들, 방황을 해오던 학생들이 다시 관계를 통해 제자리를 찾아간다. 양육을 포기하겠다는 부모의 입에서는 “그럼에도 키워보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숨길학교는 집안 문제에 간섭을 잘한다. 가족의 개념은 다양해지면서도 느슨해졌고, 개인주의화되면서 이제 가족문제는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학생들의 위기는 모두 가족에서 기인되는데, 제대로 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가족을 깊이 만나야 한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숨길학교는 집안까지 들어가서 집안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끄집어내는 걸 잘한다. 어느 부모는 자기 자녀를 숨길학교에 보내놓고는 나 몰라라 한 적이 있다. 전화를 받아도 불친절한 건 일쑤이고 학생이 가족 관계로 힘들어 한다는 말을 하면 왜 남의 가족일에 신경 쓰냐며 화내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안 볼 사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정에서 학생이 부모에게 맞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학생도 부모에게 해를 가했는지, 부모는 자신의 딸을 경찰에 신고해버렸다. 학생은 폭력사건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고 부모는 취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며 각오가 단단했다. ‘이제는 하다못해 훈육도 외주를 주는가 보다’라는 생각에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설득은 해야 했다. 부모를 찾아가기도 했고, 학교로 찾아오게도 만들었다. 설득만 했을까. 안 오면 큰일이 생길 것처럼 나름의 협박(?)도 했다. 부모는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회복적 경찰활동 제도를 안내했지만 끝끝내 학생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 과정에서 부모는 자녀에 대한 양육을 포기하겠다는 말보다 노력하겠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실제로 노력을 했다. 학생은 대학을 갔고, 부모는 관계를 아예 끊지 않았다.
숨길학교를 회복적 생활학교라고 내세우기는 부끄럽지만, 숨길학교는 회복적 정의가 간절히도 지키고자하는 소중한 가치들을 나름대로 지켜오고 있었다.
회복적 정의는 돌봄의 다른 말이다
돌봄을 받아 보았는가? 내가 온전히 나의 존재로 성장하고, 스스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관계를 맺어 보았는가? 헌신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받아 보았는가?
돌봄은 단순히 곁에 머물며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 그 이상으로 심오하면서도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돌봄은 서로를 믿고 때로는 인내하며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는 게 돌봄이다.
숨길학교는 돌봄의 가치를 근간으로 세워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오고 있다. 상처 속에 갇힌 학생과 학부모를 차별과 편견 없이 안아준다. 폭력의 피해자든 행위자든 존재 그대로 만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을 믿고, 그들도 우리를 믿게 만든다. 그 과정이 정말 지난하고 괴롭지만 신뢰가 생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을 존재로서 돌보는 것부터 한다. 그 다음에는 관계를 돌본다. 관계를 단절하고 싶어 해도 희망을 갖고 기다려준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학생을 가정과 학교로 복귀시키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일이다. 때로는 우리 학생들이 겪은 심한 갈등이나 폭력을 돌보기도 한다. 표현이 우습지만, 실제로 돌보는 것이다. 그 갈등과 폭력을 대신 지워주고 싶을 만큼 슬퍼하고 분노하지만, 그 갈등과 폭력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결의 가능성이 생긴다. 미워하고 분노하면서도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느 날 나는 성 피해의 가해 남성이 있는 교도소로 찾아가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목적은 단 하나, 피해 당사자가 원하는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 그러면서 깨달았다. ‘무모하고 치욕스럽더라도 이러한 폭력도 돌봐야하는 게 나의 일이구나’라는 걸 말이다.
내가 있는 곳이 일반적인 교육현장과는 다르지만,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기에 점점 현실이 어렵다는 걸 나도 안다. 나 자신을 회복적 정의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회복적 정의가 우리 사회에서 잊혀지지 않고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잘 돌봐야한다는 것도 잘 안다. 회복적 정의를 믿어야 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회복적 정의를 돌보는 마음으로 곳곳에서 헌신하는 당신들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어느 책에서 한 작가는 ‘헌신이 사라지면 돌봄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부디 힘든 조건 속에서도 돌봄을 포기하지 않길...
1) 가정형Wee센터는 2008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주도로 만들어진 위(Wee)프로젝트를 통해 치유와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일상과 환경의 변화를 주는 대안적 형태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전체 19개소 중 여학생 8개소, 남학생 7개소, 초등학생 2개소, 통합형 2개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역 시・도 교육청에 따라 운영형태는 크게 위탁교육형, 통학형으로 나누어진다.
2) 학생과 관련한 사례는 비밀유지를 위해 사실과 다르게 일부를 각색하였고, 글의 취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였다.
3)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 무언의 사랑, 마법 등이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