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에세이]내 삶에서의 회복적 정의 l 형가희 회원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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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의 회복적 정의


내가 만난 회복적 정의 l 형가희 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원



형가희: '학교 다닙니다'라는 자기 소개가 좋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일하며 학생들과 더불어 배우는 매일이 행복합니다. 올해부터는 존중과 책임, 관계의 무게를 느끼며 더욱 단단한 학급 공동체를 꾸리고 싶습니다.


 1. 회복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의 요소들을 대조하며 배우던 첫 시간의 충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잘못한만큼 벌을 받는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학교에서 아이들도 그렇게 가르쳐왔다. 기계적으로 "미안해"를 말하며 갈등을 서둘러 마무리하던 교실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나도 일단 잘못에 대해 선생님께 혼날 것은 다 혼났으니 막상 상대에 대한 사과는 그야말로 상황을 마무리하는 고정 단계처럼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잘못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이 친구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었는지 얼마나 생각했을까? 사과받은 아이의 마음이 풀리기는 했을까? 특히나 최근 저학년을 가르치며 "선생님이 혼내줄게"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 아이들에게 잘못에 대한 책임 보다는 혼나는 상황을 잘 넘어가는 방법만을 가르쳐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매일 같은 잘못을 하는 아이의 문제가 결국은 잘못을 직면하여 책임지는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음을 순간순간 절감하였다.


 직업 특성상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경찰이나 판사의 모습을 하곤 했다. 회복적 정의 연수를 마치고 난 이번 학기부터는 갈등의 중재자가 되고 싶다. 잘못한 학생의 잘못을 딱딱딱 짚어서 꾸중하고, 벌을 주고, 사과를 시키고, 피해입은 아이에게 '이제 됐지?'하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겠다. 모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서로 듣게 하겠다. 아이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스스로 헤아려 진심어린 사과와 자발적 책임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돕겠다. 그럼으로써 갈등이 생겨도 건강하게 해결하고 성장의 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건강한 학급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


 2. 어렸을 때 남동생과 내가 심하게 다투던 날에 우리 엄마는 항상 우리 둘 모두에게 "몇 대 맞을 거야?"라고 물으셨다. 싸움이 발생하면 엄마는 일단 둘을 모았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네가 이랬고, 이랬고, 이랬는 데, 또 그럴 거야?" 같은 내용의 추궁과 꾸중이 이어졌고, 그 중간중간 나가던 우리의 대꾸(나는 대답이라고 생각 했다)는 매와 눈빛으로 되돌아왔다. 엄마 본인의 말과 매와 눈빛으로 상황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론 늘 "그래서 너 몇 대 맞을 거야?" 하셨고, 우리는 그만큼을 맞고 화해했다. 그리고 그런 날 저녁이면 이어지던 맛있는 반찬이나 따뜻한 안아줌으로 마음을 풀어주던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엄마의 최선으로 그 모든 것이 마침내 마무리 되었다.


 아주 어릴 때는 맞기가 무서워서 다툼의 강도를 낮췄고, 조금 자란 후엔 맞을 것 같은 분위기면 동생과 내가 미리 "미안"을 외치며 다툼을 종료했다. 이렇게 눈치껏 적당히 잘 뭉개며 넘어갔으니 사실 정말 둘 다 맞은 횟수 자체는 많지 않다. 엄마의 엄격한 응보적 정의가 잘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자라고 보니, 그리고 회복적 정의를 알고 보니 그 때 내가 '안 혼나는 아이'로 '잘' 자라는 동안 배우지 못한 것이 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관계가 불편한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갈등이 생길 것 같은 상황이 되면 그 자리를 회피해버린다. 나의 힘듦이나 어려움, 때로는 잘못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풀어내는 게 너무 버거워서 쿨한 척이든, 둔한 척이든 하고 상황을 넘겨버린다. 사회생활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대강 넘기고 묻어둔 문제가 뿌리를 내려 전방위적으로 뻗어가는 상황들을 왕왕 마주하며 잘못을 직면하거나, 직면시키지 않고 그냥 넘겨버릴 수는 없는 것이었음을 수없이 체감하게 된다.


 어릴 적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엄마가 매를 내려놓고,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남매가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 사과든, 피해 복구의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 스스로 불편함과 어려움, 미안함을 구체적인 나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일흔이 넘은 엄마에게 그 때 왜 그랬냐고 따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시대 어린 엄마의 헌신을 나는 충분히 안다. 대신 내가 나에게 계속해서 말해줘야겠다. “어떻게 된 일이야? 그래서 마음은 어때?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이제 무엇을 할 거야?” “그래, 할 수 있어. 도와줄게.” 하며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직면하며 갈등을 풀어가고 싶다. 더불어 나의 아이들,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옛날 엄마가 들었던 응보의 도구인 매 대신 내가 드는 말의 매를 내려놓고 먼저 물어보겠다. 회복적 대화로 내가 속한 공동체의 회복적 정의를 조금씩 실현해 나감으로써 대를 이을 뻔한 응보적 훈육을 개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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