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에서 책임으로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과 회복적 정의의 결합
회복적 정의와 역사 이야기 l 한상희 제주 서귀포중 교감, '4.3이 나에게 건넨 말' 저자.

한상희: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역사‧사회‧지리‧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지역 기반 세계시민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4‧3을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피해‧관계‧책임‧공동체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Ⅰ.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과 정의의 방향
‘타인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수전 손택(1933~2004)은 그녀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과 폭력, 재난의 현장에서 포착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폭력과 억압, 차별의 현장에서 발생한 고통은 종종 연민이나 일시적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으로 소비된 채 빠르게 잊힌다. 그러나 손택은 이러한 감정 반응이 현실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무력감과 무감각을 강화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고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닿는 방식’이며, 이는 곧 책임과 행동을 동반하는 윤리적 실천의 문제이다.
이러한 태도는 1987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필화사건’에 대한 손택의 적극적 항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주 4·3은 제주도민 약 10%가 희생된 국가폭력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침묵이 강요되어 왔다.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처음으로 이 금기를 깼지만, 작품은 금서가 되고 작가는 고문을 당했다.
그 이후 4·3은 다시 긴 암흑의 역사로 매장되었다가 1987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그 참혹한 학살의 전모가 만천하에 폭로돼 충격을 주었다.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직후 <녹두서평> 잡지에 발표된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이었다. 하지만 제주 4·3을 항쟁과 통일의 역사로 재구성한 그 시는 군부독재정권의 용공조작사건으로 탄압받아 이산하 시인은 체포, 구속되고, 또 혹독한 고문과 함께 1년여 옥고까지 치러야 했다.
이때 미국 펜클럽 회장인 수전 손택은 ‘이산하 시인 국제구명위원회’를 조직해 노태우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한데 이어 직접 서울을 방문해 ‘이산하 시인을 석방하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타임지 선정 ‘세계 여성 영향력 1위’인 수전 손택의 국제적 연대와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산하 시인은 1년 후 석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 의해 제주4.3의 비극적 진실도 처음으로 국제 사회에 공개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같은 사례는 타인의 고통을 단순한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책임 있는 참여와 행동으로 전환할 때 실제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손택에게 타인의 고통은 단순히 일회적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마땅히 응답해야 할 윤리적 요청이었다. 이 문제의식은 여성의 고통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도 깊이 연결된다. 여성은 반복되는 폭력과 차별 속에서 피해자의 위치에 놓여 왔지만, 사회는 이를 구조적 문제로 성찰하기보다 일시적 감정 반응으로 소비해 왔다. 손택이 지적했듯, 고통의 이미지가 반복될수록 감수성 자체가 마비되는 역설이 발생하며, 타인의 고통은 윤리적 성찰의 계기가 아니라 시각적 소비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한다.
이 지점에서 회복적 정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여성 피해는 단순한 사건이나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책임의 부재와 관계의 붕괴, 그리고 공동체의 균열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를 직시하고, 책임을 묻고, 관계와 공동체의 회복을 정의의 핵심 가치로 삼는다. 본 글은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여성의 고통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침묵되어 왔는지를 분석하고, 회복적 정의가 제시하는 새로운 정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Ⅱ. 타인의 고통과 여성 피해를 보는 회복적 관점
1. ‘고통의 스펙터클화’와 여성 피해의 소비 구조
손택은 전쟁 사진과 폭력 이미지가 처음에는 강렬한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키지만, 반복될수록 관람자의 무력감과 거리감을 강화한다고 분석한다. 고통은 윤리적 책임을 촉발하기보다 감정적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며, 결국 일상의 일부로 무디게 소비된다. 이러한 분석은 여성 피해가 사회적으로 재현되는 방식과 정확히 맞물린다. 성폭력 피해자의 얼굴, 가정폭력 피해자의 상처, 구조적 빈곤 속 여성의 삶은 미디어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사람들은 댓글과 공감 버튼으로 반응하며 일시적 연민을 표하지만, 곧 피로감과 무감각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여성의 고통은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사건으로 환원된다. 이는 고통이 감각적 소비 대상으로 전락하는 손택의 문제의식이, 여성 폭력 담론에서도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소비 구조는 정의 실현을 가로막는 핵심적 장애 요인이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고통을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공동체 관계의 붕괴로 이해한다. 고통의 소비는 책임을 분산시키고 구조적 무책임을 강화하며, 폭력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회복적 정의는 피해 상황에 직면하고, 가해자가 이를 인정하며, 공동체가 책임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와 관계,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 가능성을 열어간다.
2. 침묵과 왜곡: 여성의 고통은 왜 말해지지 않는가
손택은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이미지의 생산과 해석은 언제나 권력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고 지적한다. 누가 고통을 기록하고, 누가 이를 해석하며,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가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다. 이러한 권력의 작동은 여성의 고통이 말해지는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던져지는 질문, “왜 그곳에 있었는가”,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는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하며,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이러한 질문은 가해자의 책임과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은폐하는 동시에, 여성의 침묵을 강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회복적 정의는 이와 같은 시선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한다. 피해자의 경험은 사건의 주변부가 아니라, 정의 실현의 중심에 놓인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그 영향에 대해 해석하는 과정은 피해자를 수동적 객체가 아닌 의미 생산의 주체로 재위치화한다. 동시에 이는 가해자와 공동체 모두에게 책임을 직면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의 침묵을 말로, 고립을 관계 속 회복으로 전환시키는 실천적 전환점이 된다.
3. 회복적 정의와 여성: 피해자를 넘어 회복의 주체로
회복적 정의는 처벌 중심 사법 체계의 한계를 넘어, 피해와 관계의 회복을 정의의 중심에 다시 놓는다. 정의의 핵심은 “누가 처벌받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피해를 입었고, 무엇이 훼손되었으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재구성된다. 이 틀에서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나 연약한 피해자가 아니라, 회복의 적극적 주체로 재위치화된다. 여성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가해자가 책임을 인식하며, 공동체가 이를 함께 감당하는 구조는 단순한 형벌보다 더 깊은 치유 효과를 낳는다. 이는 여성의 고통을 개인적 불행에서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전환시키며, 정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맥락에서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자율성과 존엄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기존 사법 체계가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온 2차 피해를 최소화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는 여성의 고통을 다시 말하게 하고, 다시 연결하며, 다시 책임지게 만드는 실천적 정의의 언어라 할 수 있다.
4. 고통의 재정치화
손택은 고통의 이미지가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분리될 때, 우리는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고통이 맥락을 상실한 채 소비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사회 구조를 성찰하게 하지 못하고 개인적 감정 반응으로 축소된다. 여성 폭력 역시 자주 개인적 불운이나 일탈적 사건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는 이러한 해석을 거부하며, 여성의 고통을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의 문제로 재정치화한다. 이는 정의를 처벌 중심의 법적 개념에서 공동체적 책임과 윤리적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전환은 여성의 고통을 동정의 대상에서 사회 변혁의 출발점으로 재위치화하며, 연민을 넘어 책임과 연대의 윤리를 요청한다.
Ⅲ. 연민에서 책임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에 머무는 반응은 폭력과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고통을 다시 소비하게 만들뿐이다. 회복적 정의가 제시하는 길은 분명하다. 피해자의 경험은 정의 실현의 중심에 놓여야 하며, 책임을 지고 행동하는 참여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여성 피해자의 사례는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가해자가 책임을 인식하며, 공동체가 이를 함께 감당할 때, 단순한 응보나 연민을 넘어 실질적 회복과 관계의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손택이 강조했듯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닿는다는 것은 연민에 머무르지 않고 함께 책임지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실천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이는 개인적 동정을 넘어 사회 구조를 성찰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확장하는 새로운 정의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결국 정의는 관람의 대상이나 처벌의 결과로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감당하고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낼 때 정의는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며 공동체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침묵을 깨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존재가 자리한다.
한상희: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역사‧사회‧지리‧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지역 기반 세계시민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4‧3을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피해‧관계‧책임‧공동체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Ⅰ.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과 정의의 방향
‘타인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수전 손택(1933~2004)은 그녀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과 폭력, 재난의 현장에서 포착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폭력과 억압, 차별의 현장에서 발생한 고통은 종종 연민이나 일시적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으로 소비된 채 빠르게 잊힌다. 그러나 손택은 이러한 감정 반응이 현실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무력감과 무감각을 강화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고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닿는 방식’이며, 이는 곧 책임과 행동을 동반하는 윤리적 실천의 문제이다.
이러한 태도는 1987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필화사건’에 대한 손택의 적극적 항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주 4·3은 제주도민 약 10%가 희생된 국가폭력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침묵이 강요되어 왔다.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처음으로 이 금기를 깼지만, 작품은 금서가 되고 작가는 고문을 당했다.
그 이후 4·3은 다시 긴 암흑의 역사로 매장되었다가 1987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그 참혹한 학살의 전모가 만천하에 폭로돼 충격을 주었다.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직후 <녹두서평> 잡지에 발표된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이었다. 하지만 제주 4·3을 항쟁과 통일의 역사로 재구성한 그 시는 군부독재정권의 용공조작사건으로 탄압받아 이산하 시인은 체포, 구속되고, 또 혹독한 고문과 함께 1년여 옥고까지 치러야 했다.
이때 미국 펜클럽 회장인 수전 손택은 ‘이산하 시인 국제구명위원회’를 조직해 노태우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한데 이어 직접 서울을 방문해 ‘이산하 시인을 석방하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타임지 선정 ‘세계 여성 영향력 1위’인 수전 손택의 국제적 연대와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산하 시인은 1년 후 석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 의해 제주4.3의 비극적 진실도 처음으로 국제 사회에 공개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같은 사례는 타인의 고통을 단순한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책임 있는 참여와 행동으로 전환할 때 실제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손택에게 타인의 고통은 단순히 일회적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마땅히 응답해야 할 윤리적 요청이었다. 이 문제의식은 여성의 고통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도 깊이 연결된다. 여성은 반복되는 폭력과 차별 속에서 피해자의 위치에 놓여 왔지만, 사회는 이를 구조적 문제로 성찰하기보다 일시적 감정 반응으로 소비해 왔다. 손택이 지적했듯, 고통의 이미지가 반복될수록 감수성 자체가 마비되는 역설이 발생하며, 타인의 고통은 윤리적 성찰의 계기가 아니라 시각적 소비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한다.
이 지점에서 회복적 정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여성 피해는 단순한 사건이나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책임의 부재와 관계의 붕괴, 그리고 공동체의 균열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를 직시하고, 책임을 묻고, 관계와 공동체의 회복을 정의의 핵심 가치로 삼는다. 본 글은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여성의 고통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침묵되어 왔는지를 분석하고, 회복적 정의가 제시하는 새로운 정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Ⅱ. 타인의 고통과 여성 피해를 보는 회복적 관점
1. ‘고통의 스펙터클화’와 여성 피해의 소비 구조
손택은 전쟁 사진과 폭력 이미지가 처음에는 강렬한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키지만, 반복될수록 관람자의 무력감과 거리감을 강화한다고 분석한다. 고통은 윤리적 책임을 촉발하기보다 감정적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며, 결국 일상의 일부로 무디게 소비된다. 이러한 분석은 여성 피해가 사회적으로 재현되는 방식과 정확히 맞물린다. 성폭력 피해자의 얼굴, 가정폭력 피해자의 상처, 구조적 빈곤 속 여성의 삶은 미디어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사람들은 댓글과 공감 버튼으로 반응하며 일시적 연민을 표하지만, 곧 피로감과 무감각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여성의 고통은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사건으로 환원된다. 이는 고통이 감각적 소비 대상으로 전락하는 손택의 문제의식이, 여성 폭력 담론에서도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소비 구조는 정의 실현을 가로막는 핵심적 장애 요인이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고통을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공동체 관계의 붕괴로 이해한다. 고통의 소비는 책임을 분산시키고 구조적 무책임을 강화하며, 폭력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회복적 정의는 피해 상황에 직면하고, 가해자가 이를 인정하며, 공동체가 책임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와 관계,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 가능성을 열어간다.
2. 침묵과 왜곡: 여성의 고통은 왜 말해지지 않는가
손택은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이미지의 생산과 해석은 언제나 권력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고 지적한다. 누가 고통을 기록하고, 누가 이를 해석하며,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가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다. 이러한 권력의 작동은 여성의 고통이 말해지는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던져지는 질문, “왜 그곳에 있었는가”,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는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하며,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이러한 질문은 가해자의 책임과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은폐하는 동시에, 여성의 침묵을 강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회복적 정의는 이와 같은 시선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한다. 피해자의 경험은 사건의 주변부가 아니라, 정의 실현의 중심에 놓인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그 영향에 대해 해석하는 과정은 피해자를 수동적 객체가 아닌 의미 생산의 주체로 재위치화한다. 동시에 이는 가해자와 공동체 모두에게 책임을 직면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의 침묵을 말로, 고립을 관계 속 회복으로 전환시키는 실천적 전환점이 된다.
3. 회복적 정의와 여성: 피해자를 넘어 회복의 주체로
회복적 정의는 처벌 중심 사법 체계의 한계를 넘어, 피해와 관계의 회복을 정의의 중심에 다시 놓는다. 정의의 핵심은 “누가 처벌받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피해를 입었고, 무엇이 훼손되었으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재구성된다. 이 틀에서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나 연약한 피해자가 아니라, 회복의 적극적 주체로 재위치화된다. 여성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가해자가 책임을 인식하며, 공동체가 이를 함께 감당하는 구조는 단순한 형벌보다 더 깊은 치유 효과를 낳는다. 이는 여성의 고통을 개인적 불행에서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전환시키며, 정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맥락에서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자율성과 존엄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기존 사법 체계가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온 2차 피해를 최소화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는 여성의 고통을 다시 말하게 하고, 다시 연결하며, 다시 책임지게 만드는 실천적 정의의 언어라 할 수 있다.
4. 고통의 재정치화
손택은 고통의 이미지가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분리될 때, 우리는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고통이 맥락을 상실한 채 소비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사회 구조를 성찰하게 하지 못하고 개인적 감정 반응으로 축소된다. 여성 폭력 역시 자주 개인적 불운이나 일탈적 사건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는 이러한 해석을 거부하며, 여성의 고통을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의 문제로 재정치화한다. 이는 정의를 처벌 중심의 법적 개념에서 공동체적 책임과 윤리적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전환은 여성의 고통을 동정의 대상에서 사회 변혁의 출발점으로 재위치화하며, 연민을 넘어 책임과 연대의 윤리를 요청한다.
Ⅲ. 연민에서 책임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에 머무는 반응은 폭력과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고통을 다시 소비하게 만들뿐이다. 회복적 정의가 제시하는 길은 분명하다. 피해자의 경험은 정의 실현의 중심에 놓여야 하며, 책임을 지고 행동하는 참여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여성 피해자의 사례는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가해자가 책임을 인식하며, 공동체가 이를 함께 감당할 때, 단순한 응보나 연민을 넘어 실질적 회복과 관계의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손택이 강조했듯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닿는다는 것은 연민에 머무르지 않고 함께 책임지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실천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이는 개인적 동정을 넘어 사회 구조를 성찰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확장하는 새로운 정의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결국 정의는 관람의 대상이나 처벌의 결과로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감당하고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낼 때 정의는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며 공동체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침묵을 깨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존재가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