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보다 예쁜, <우리 엄마>
박성실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엄마가 제일 예뻐!”, “수지보다 더?”, “당연하지!”, “너 수지가 누군지 알지?”
일곱 살 아들 지원이와 남편이 나눈 대화다. 지금 고등학생인 지원이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엄마인 나는 그 말이 너무도 신기하고, 고마워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다.
지원이 같은 아이가 등장하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의 <우리 엄마>(웅진 주니어)이다. “우리 엄마는 참 멋져요”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에는 아이의 눈으로 본 엄마가 묘사된다. 엄마는 굉장한 요리사이고, 재주꾼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때로 사자처럼 포효하지만, 천사처럼 노래한다.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튼튼하고, 영화배우나 무용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사랑한 다. 물론 엄마도 그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는 그 관계가 영원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글로 표현된 엄마는 실제 엄마와 사뭇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을 조금 덧입혀 재해석해 보면 최고의 요리사인 엄마는 사실 매일 같이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고, 남이 차려준 밥상을 꿈꾼다. 재주꾼인 줄만 알았던 엄마는 아이가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갖은 ‘쇼’를 시도한다. 짐을 드는 엄마는 힘이 세 보였지만, 돈 주고 장 본 걸 버릴 수 없어 안간힘을 쓰며 집까지 가져왔을 뿐이다. 아이가 예뻐 노래도 불러주고 함께 불러보기도 하지만,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과 쌓인 빨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아이를 맡길 안전한 곳 혹은 사람을 찾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러다 영영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 한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엄마는 이 시간이 지나간다는 걸 기억하며 좋은 엄마가 되어보기로 또다시 결심한다.
이런 결심의 원동력이 아이를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배우고, 절절히 끓어오르는 모성애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 같아 주저된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배우고 있다면 모든 엄마가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데 더 애쓰고 있을 터이고, 모성애가 넘친다면 아이를 닦달하는 대신 더 믿고 기다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사랑할 줄 아는 엄마가 된다는 것은 갑자기 저절로, 어느 순간에 마법처럼 가능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어느 책모임에서 ‘사랑을 느낀 순간이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질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원이가 신생아일 때 지원이의 작은 손을 내 손에 포개어 놓았던 순간 말이다. 당시 초보 엄마였던 나는 몸과 마음이 몹시 쇠약한 상태였고, 지원이는 의지할 데라고는 오로지 그런 나뿐이었다. 책임감과 고단함이 기쁨을 앞섰던 그 시간, 작고 보드라운 손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저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감정이 차올랐다. 가장 취약하다고 느꼈던 순간, 아이의 존재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자 그 벅찬 감정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줄곧 그 순간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삶에도 사랑이 찾아 왔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지원이는 나를 자주 안아주었다. 지원이는 방실방실 웃다가도 떼쓰며 우는 등,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다 드러내고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지원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엄마에게 강한 소속감을 느끼며, 엄마가 자신과 연결된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 충분한 인격과 배려, 따듯함과 강인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한결같이 엄마가 그런 존재라고 믿어주었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가도, 엄마를 믿고 엄마가 소개하는 세상에 한 걸음 내디뎠고, 성공의 기쁨이나 실패의 쓴맛을 엄마 품에 달려와 나눠주었다. 충분히 이기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엄마의 말에 마음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는 했다. 그 작은 손이 이제는 큰 손이 되어 내 손을 잡아줄 때까지, 아이는 한결같은 지지와 신뢰를 보내왔다. 멋지고, 사랑할만한 대상이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속삭였던 세상과 달리 그저 옆을 지키는 엄마이기만 해도,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 충분하다는 것을 지원이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오히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지원이를 점점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은 내 쪽이었다. 그렇게 지원이가 보여준 사랑은 나의 취약함과 이기심을 직면하도록 도왔고, 아이와 더불어 나를 성장시켰다. 내가 매일 지원이의 엄마로 살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이제 독립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 지원이는 내 행동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의견이 다른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개인공간을 고수하고, 또래와의 연결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이 지원이의 달콤함은 사라지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고군분투가 나는 어떤 어른인지 마주하도록, 고통스러운 각성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제 내가 받았던 아이의 사랑을 돌려줘야 할,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 아이를 인정하고, 믿고 지지할 시간이 나에게도 온 것이다.
이럴 때 그림책, <우리 엄마>는 큰 위로가 된다. 어린이 지원이를 기억하며 웃음 짓고, ‘수지’보다 예뻤던 시절을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좋은 엄마가 되어보리라 마음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박성실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엄마가 제일 예뻐!”, “수지보다 더?”, “당연하지!”, “너 수지가 누군지 알지?”
일곱 살 아들 지원이와 남편이 나눈 대화다. 지금 고등학생인 지원이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엄마인 나는 그 말이 너무도 신기하고, 고마워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다.
지원이 같은 아이가 등장하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의 <우리 엄마>(웅진 주니어)이다. “우리 엄마는 참 멋져요”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에는 아이의 눈으로 본 엄마가 묘사된다. 엄마는 굉장한 요리사이고, 재주꾼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때로 사자처럼 포효하지만, 천사처럼 노래한다.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튼튼하고, 영화배우나 무용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사랑한 다. 물론 엄마도 그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는 그 관계가 영원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글로 표현된 엄마는 실제 엄마와 사뭇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을 조금 덧입혀 재해석해 보면 최고의 요리사인 엄마는 사실 매일 같이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고, 남이 차려준 밥상을 꿈꾼다. 재주꾼인 줄만 알았던 엄마는 아이가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갖은 ‘쇼’를 시도한다. 짐을 드는 엄마는 힘이 세 보였지만, 돈 주고 장 본 걸 버릴 수 없어 안간힘을 쓰며 집까지 가져왔을 뿐이다. 아이가 예뻐 노래도 불러주고 함께 불러보기도 하지만,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과 쌓인 빨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아이를 맡길 안전한 곳 혹은 사람을 찾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러다 영영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 한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엄마는 이 시간이 지나간다는 걸 기억하며 좋은 엄마가 되어보기로 또다시 결심한다.
이런 결심의 원동력이 아이를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배우고, 절절히 끓어오르는 모성애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 같아 주저된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배우고 있다면 모든 엄마가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데 더 애쓰고 있을 터이고, 모성애가 넘친다면 아이를 닦달하는 대신 더 믿고 기다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사랑할 줄 아는 엄마가 된다는 것은 갑자기 저절로, 어느 순간에 마법처럼 가능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어느 책모임에서 ‘사랑을 느낀 순간이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질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원이가 신생아일 때 지원이의 작은 손을 내 손에 포개어 놓았던 순간 말이다. 당시 초보 엄마였던 나는 몸과 마음이 몹시 쇠약한 상태였고, 지원이는 의지할 데라고는 오로지 그런 나뿐이었다. 책임감과 고단함이 기쁨을 앞섰던 그 시간, 작고 보드라운 손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저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감정이 차올랐다. 가장 취약하다고 느꼈던 순간, 아이의 존재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자 그 벅찬 감정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줄곧 그 순간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삶에도 사랑이 찾아 왔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지원이는 나를 자주 안아주었다. 지원이는 방실방실 웃다가도 떼쓰며 우는 등,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다 드러내고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지원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엄마에게 강한 소속감을 느끼며, 엄마가 자신과 연결된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 충분한 인격과 배려, 따듯함과 강인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한결같이 엄마가 그런 존재라고 믿어주었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가도, 엄마를 믿고 엄마가 소개하는 세상에 한 걸음 내디뎠고, 성공의 기쁨이나 실패의 쓴맛을 엄마 품에 달려와 나눠주었다. 충분히 이기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엄마의 말에 마음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는 했다. 그 작은 손이 이제는 큰 손이 되어 내 손을 잡아줄 때까지, 아이는 한결같은 지지와 신뢰를 보내왔다. 멋지고, 사랑할만한 대상이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속삭였던 세상과 달리 그저 옆을 지키는 엄마이기만 해도,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 충분하다는 것을 지원이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오히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지원이를 점점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은 내 쪽이었다. 그렇게 지원이가 보여준 사랑은 나의 취약함과 이기심을 직면하도록 도왔고, 아이와 더불어 나를 성장시켰다. 내가 매일 지원이의 엄마로 살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이제 독립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 지원이는 내 행동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의견이 다른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개인공간을 고수하고, 또래와의 연결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이 지원이의 달콤함은 사라지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고군분투가 나는 어떤 어른인지 마주하도록, 고통스러운 각성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제 내가 받았던 아이의 사랑을 돌려줘야 할,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 아이를 인정하고, 믿고 지지할 시간이 나에게도 온 것이다.
이럴 때 그림책, <우리 엄마>는 큰 위로가 된다. 어린이 지원이를 기억하며 웃음 짓고, ‘수지’보다 예뻤던 시절을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좋은 엄마가 되어보리라 마음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