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정의는 어떻게 재구성되는가
주제글 2 l AI와 회복적 정의
한상희 제주 서귀포중 교장 l 협회 제주지부장

한상희: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역사‧사회‧지리‧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지역 기반 세계시민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4‧3을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피해‧관계‧책임‧공동체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는 정의를 대개 판결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누가 옳았고, 누가 잘못했는가가 가려지는 자리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AI의 본격화로 정의의 작동 방식을 다시 묻게 되는 시대에 있다. 처벌이 끝난 뒤에도 무엇이 계속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이 역사 속 장면들로부터 되돌아온다.
1. 처벌 중심 정의의 구조적 한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뉘른베르크 재판은 전범을 법정에 세우는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인간이 저지른 극단적 폭력에 법의 언어로 응답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분명한 전환이었다. 폭력에 대한 대응이 보복이 아니라 제도화된 판단으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재판이 모든 것을 매듭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이 있었다.
처벌은 이루어졌지만 전쟁 이후의 사회적 구조와 기억은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물리적 파괴는 복구될 수 있었지만, 관계의 붕괴와 신뢰의 훼손은 그 회복에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법정은 책임을 확정할 수 있었지만, 그 책임이 삶으로 되돌아오는 과정까지 포괄하지는 못했다. 정의는 사건을 종결하는 장치로는 기능했지만, 삶을 회복시키는 틀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미완성’ 여부가 아니라, 정의가 법정 안에서 완결된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시간을 하나의 단면으로 축소한다. 폭력은 특정 시점에 발생하지만, 그 여파는 기억과 관계, 침묵과 사회적 감각 속에서 오래 지속된다. 이 연속된 시간을 담아내지 못하는 정의는 과연 어디까지를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기억과 관계, 그리고 삶의 변화까지 포괄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정의라고 할 수 있는지 다시 묻게 된다.
따라서 정의를 법정 내부의 결론으로 한정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잘못을 규정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의 세계까지 끌어안지는 못한다. 판결이 내려진 자리에는 정리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가 남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계속 다시 구성되어야 하는 과정으로 옮겨간다.
2. 진실과 공동체로 확장되는 정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우분투(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공동체적 윤리)를 바탕으로, 가해자 처벌보다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말하게 했다. 이는 단순한 진상조사가 아니라, 국가폭력과 인종분리 체제를 마주한 사회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진실을 드러내고 사면을 조건적으로 검토하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자리에서 기억을 다시 말하도록 한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정의는 판단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을 거쳐 관계의 회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르완다에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르완다 가차차 재판(Gacaca court)은 1994년 집단학살이후 국가가 선택한 공동체 기반 사법 제도였다. 기존 형사재판만으로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건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직접 참여하는 공개 재판이 도입되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같은 공간에서 사건을 증언했고, 지역 주민들은 진실 확인과 판단 과정에 참여했다.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드러내고 공동체가 그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국가 중심의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가 책임과 기억을 함께 재구성하는 구조였다.
제주 4·3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진상 규명과 국가의 공식 사과가 이루어졌고, 이후 개정을 통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교육과 기록 사업을 통해 사건을 사회적으로 기억하려는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이 과정은 과거를 단순히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을 드러내고 책임을 확인하며 사회적 관계를 복원해 가는 흐름이었다. 정의는 단일한 판결이 아니라, 진상 규명에서 시작해 사과와 명 예회복, 기억과 교육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회복의 과정으로 확장된다.
3. 알고리즘은 판단처럼 보이게 작동한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판단 구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판단처럼 작동하는 시스템, 인공지능이다.
AI는 스스로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학습하고, 설정된 기준 안에서 결과를 산출한다. 겉으로는 객관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 사회의 권력 구조와 선택이 압축된 기록에 가깝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과거가 공정하지 않았다면,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결과를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판단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도 AI는 제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복지 행정에서는 위험 가구를 선별하고 지원 대상을 분류하는 과정에 데이터 기반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고, 교육에서는 학습 분석과 평가에 AI가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산업 영역에서도 채용과 인사 과정에 알고리즘이 개입하고 있다. 기술은 더 이상 바깥이 아니라 사회의 내부에서 작동한다.
이 변화의 핵심은 효율성에만 있지 않다. 어떤 집단이 과거에 더 많이 감시되고 더 자주 기록되었다면, AI는 그 패턴을 ‘위험’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위험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했던 불균형이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새로운 판단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과거의 편향을 더욱 정교하게 재생산할 수 있다.
이 점에서 AI는 단순한 미래 기술이라기보다, 과거가 압축된 구조에 가깝다. 그리고 그 압축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그것을 객관성으로 받아들인다.
4. 정의는 시스템 속에서 관계로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회복적 정의는 질문 자체를 바꾼다. 정의는 더 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스템이 관계를 어떻게 재배치하는가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개별 사건의 판단 기준이 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과 경험을 분류하고 기억하는지, 그 구조 자체가 이미 권력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스템은 중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축적된 선택과 배제의 결과다.
우리가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기술 장치가 아니라, 어떤 경험이 정상으로 분류되고 어떤 경험이 예외로 밀려나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기준의 집합이다. 판단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구성된 분류 체계 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정의를 논한다는 것은 개별 판단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그 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전체를 함께 묻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AI가 그렇게 판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그렇게 판단되도록 세계를 설계해 온 것이다.
AI는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책임 구조가 드러나는 표면에 가깝다. 따라서 AI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은 언제나 인간에게 있다.
5. 결론: 우리는 어떤 세계를 설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술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작동하는 사회를 더 분명하게 읽어내는 감각이다.
AI의 판단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판단이 어떤 역사 위에서 형성되었는지, 어떤 데이터가 남고 어떤 경험이 지워졌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읽어내는 일이다.
결국 핵심은 AI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AI를 만들고 사용하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있다. 정의의 문제는 다시 인간의 인식과 책임으로 돌아온다.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결론은 분명하다. 정의란 처벌의 정밀도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 가능성이다. 그리고 기술이 그 관계를 재편할수록,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설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세계는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밀어내고 있는가.
한상희: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역사‧사회‧지리‧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지역 기반 세계시민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4‧3을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피해‧관계‧책임‧공동체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는 정의를 대개 판결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누가 옳았고, 누가 잘못했는가가 가려지는 자리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AI의 본격화로 정의의 작동 방식을 다시 묻게 되는 시대에 있다. 처벌이 끝난 뒤에도 무엇이 계속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이 역사 속 장면들로부터 되돌아온다.
1. 처벌 중심 정의의 구조적 한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뉘른베르크 재판은 전범을 법정에 세우는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인간이 저지른 극단적 폭력에 법의 언어로 응답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분명한 전환이었다. 폭력에 대한 대응이 보복이 아니라 제도화된 판단으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재판이 모든 것을 매듭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이 있었다.
처벌은 이루어졌지만 전쟁 이후의 사회적 구조와 기억은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물리적 파괴는 복구될 수 있었지만, 관계의 붕괴와 신뢰의 훼손은 그 회복에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법정은 책임을 확정할 수 있었지만, 그 책임이 삶으로 되돌아오는 과정까지 포괄하지는 못했다. 정의는 사건을 종결하는 장치로는 기능했지만, 삶을 회복시키는 틀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미완성’ 여부가 아니라, 정의가 법정 안에서 완결된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시간을 하나의 단면으로 축소한다. 폭력은 특정 시점에 발생하지만, 그 여파는 기억과 관계, 침묵과 사회적 감각 속에서 오래 지속된다. 이 연속된 시간을 담아내지 못하는 정의는 과연 어디까지를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기억과 관계, 그리고 삶의 변화까지 포괄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정의라고 할 수 있는지 다시 묻게 된다.
따라서 정의를 법정 내부의 결론으로 한정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잘못을 규정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의 세계까지 끌어안지는 못한다. 판결이 내려진 자리에는 정리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가 남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계속 다시 구성되어야 하는 과정으로 옮겨간다.
2. 진실과 공동체로 확장되는 정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우분투(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공동체적 윤리)를 바탕으로, 가해자 처벌보다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말하게 했다. 이는 단순한 진상조사가 아니라, 국가폭력과 인종분리 체제를 마주한 사회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진실을 드러내고 사면을 조건적으로 검토하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자리에서 기억을 다시 말하도록 한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정의는 판단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을 거쳐 관계의 회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르완다에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르완다 가차차 재판(Gacaca court)은 1994년 집단학살이후 국가가 선택한 공동체 기반 사법 제도였다. 기존 형사재판만으로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건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직접 참여하는 공개 재판이 도입되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같은 공간에서 사건을 증언했고, 지역 주민들은 진실 확인과 판단 과정에 참여했다.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드러내고 공동체가 그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국가 중심의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가 책임과 기억을 함께 재구성하는 구조였다.
제주 4·3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진상 규명과 국가의 공식 사과가 이루어졌고, 이후 개정을 통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교육과 기록 사업을 통해 사건을 사회적으로 기억하려는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이 과정은 과거를 단순히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을 드러내고 책임을 확인하며 사회적 관계를 복원해 가는 흐름이었다. 정의는 단일한 판결이 아니라, 진상 규명에서 시작해 사과와 명 예회복, 기억과 교육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회복의 과정으로 확장된다.
3. 알고리즘은 판단처럼 보이게 작동한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판단 구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판단처럼 작동하는 시스템, 인공지능이다.
AI는 스스로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학습하고, 설정된 기준 안에서 결과를 산출한다. 겉으로는 객관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 사회의 권력 구조와 선택이 압축된 기록에 가깝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과거가 공정하지 않았다면,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결과를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판단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도 AI는 제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복지 행정에서는 위험 가구를 선별하고 지원 대상을 분류하는 과정에 데이터 기반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고, 교육에서는 학습 분석과 평가에 AI가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산업 영역에서도 채용과 인사 과정에 알고리즘이 개입하고 있다. 기술은 더 이상 바깥이 아니라 사회의 내부에서 작동한다.
이 변화의 핵심은 효율성에만 있지 않다. 어떤 집단이 과거에 더 많이 감시되고 더 자주 기록되었다면, AI는 그 패턴을 ‘위험’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위험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했던 불균형이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새로운 판단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과거의 편향을 더욱 정교하게 재생산할 수 있다.
이 점에서 AI는 단순한 미래 기술이라기보다, 과거가 압축된 구조에 가깝다. 그리고 그 압축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그것을 객관성으로 받아들인다.
4. 정의는 시스템 속에서 관계로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회복적 정의는 질문 자체를 바꾼다. 정의는 더 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스템이 관계를 어떻게 재배치하는가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개별 사건의 판단 기준이 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과 경험을 분류하고 기억하는지, 그 구조 자체가 이미 권력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스템은 중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축적된 선택과 배제의 결과다.
우리가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기술 장치가 아니라, 어떤 경험이 정상으로 분류되고 어떤 경험이 예외로 밀려나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기준의 집합이다. 판단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구성된 분류 체계 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정의를 논한다는 것은 개별 판단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그 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전체를 함께 묻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AI가 그렇게 판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그렇게 판단되도록 세계를 설계해 온 것이다.
AI는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책임 구조가 드러나는 표면에 가깝다. 따라서 AI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은 언제나 인간에게 있다.
5. 결론: 우리는 어떤 세계를 설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술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작동하는 사회를 더 분명하게 읽어내는 감각이다.
AI의 판단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판단이 어떤 역사 위에서 형성되었는지, 어떤 데이터가 남고 어떤 경험이 지워졌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읽어내는 일이다.
결국 핵심은 AI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AI를 만들고 사용하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있다. 정의의 문제는 다시 인간의 인식과 책임으로 돌아온다.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결론은 분명하다. 정의란 처벌의 정밀도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 가능성이다. 그리고 기술이 그 관계를 재편할수록,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설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세계는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밀어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