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글]AI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끌 수 있을까? l 김훈태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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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끌 수 있을까?


주제글4 AI와 회복적 정의

김훈태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AI, 즉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소설작가로 불리는 테드 창은 이것이 ‘지능’이 아니라 ‘응용통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기술과 지능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지능은 기술 습득 능력이기 때문이다. AI는 기술 그 차체로서, 기술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모방을 할 뿐 의도가 없고 주체적인 욕구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AI 혁명은 당장 우리에게 닥친 거대한 변화로서, 과학혁명과 시민혁명, 종교혁명, 산업혁명 등의 근대적 혁명을 넘어선 무언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2009년에 이뤄진 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든 인류 지능의 합을 초과할 것이라는 범용 인공지능(AGI)이 2050년에서 2060년에 출현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OpenAI의 샘 올트먼이나 xAI의 일론 머스크는 2030년이 그 시점이라고 말하며, KAIST의 김대식 교수는 우리가 이미 AGI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급변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혼란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진지하게 인간 사회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우리의 기본적 욕구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AI라는 도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할지, 그 방향성을 잘 잡아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시기이기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까?



공동체적 삶으로서의 생활세계

 

 나는 ‘회복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의 개념에 대해, 독일의 사회철학자 하버마스의 용어를 빌려 ‘생활세계의 정의’와 ‘체계의 정의’라고 다시 구분짓고 싶다. 생활세계는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영역이다. 우리는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화합을 추구하며 서로를 이해하고자 한다. 공동체(community)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대화, 즉 소통(communication)을 해야 하고,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엄과 주체성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범죄와 폭력은 상대방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상화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럴 때 관계성은 파괴된다. 공동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너도 주체이고 나도 주체’인 ‘상호주체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회복적 정의가 지향하는 바이다. 하버마스는 이때 필요한 합리성이 ‘의사소통적 합리성(communicative rationality)’이라고 말한다.


 체계는 생활세계에 뿌리를 두지만 생활세계로부터 독립하여 성장한 두 가지 사회 시스템(system)이다. 하나는 정치-행정체계로서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체계로서 시장이다. 국가와 시장은 공통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며, 필연적으로 관료적 특성을 지닌다. 근대국가의 행정은 기계적으로 원활히 돌아가야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이러한 체계의 합리성을 ‘목적합리성’ 또는 ‘도구적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나의 특정 목적을 위해 대상을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체계에서 범죄나 갈등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가는 법률에 따라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처벌과 손해배상을 명령한다. 체계의 정의에서는 사회질서를 위해 법률이 위배되었는지가 중요하고, 당사자의 필요나 상처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체계의 정의가 생활세계에도 침투하여 공동체 관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적 개념의 공동체, 즉 생활세계는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개인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집단의 식이 희미해지고 전통적인 도덕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법률만이 사회의 유일한 규범처럼쓰이고 있다. 이른바 ‘사회의 사법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작은 갈등만 생겨도 사법기관에 문제해결을 요청한다. 공동체 안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낡고 고루한 접근처럼 여겨질 정도다. 학교나 병원뿐 아니라 마을, 가정과 같은 생활세계에서조차 민형사상 고소와 고발이 난무한다. 이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법 논리는 체계의 논리지, 생활세계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생활세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생활세계의 정의, 즉 회복적 정의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



AI는 우리의 삶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AI는 체계의 도구적 합리성에 가까울까,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가까울까? AI는 기술적 도구이기 때문에 쓰기 나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제공하는 집단이 민간연구소가 아니라 거대기업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오픈AI 같은 기업도 처음에는 공공성을 내걸었지만 이내 이윤추구의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반발해 나온 앤트로픽이 미국 전쟁부와 협력을 거부했을 때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오픈 AI다. 전쟁조차 이윤이 되는 세상에서 AI는 결정적 상품이 되었다. 이제 세상은 AI를 이용해 전쟁을 벌이고 대량 살상을 자동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자국의 AI 기술 ‘하브소라(Habsora)’와 ‘라벤더(Lavender)’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미국의 이란 침공에서도 AI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AI는 안보 및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AI 기술 개발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개인적 삶에서는 어떨까? 거대언어모델(LLM)을 이용하는 AI는 우리와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AI를 개인 상담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AI는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래 서 점점 더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정신과의사나 상담사와 AI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정신과의사나 상담사는 위로를 하지만 객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담자에게 필요한 어떤 진실을 함께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AI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AI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AI는 비판 없이 동조하며, 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다정하게 말을 건다. 이것은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AI와 더 깊은 관계를 맺을수록 우리는 객관적 성찰 능력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들과 단절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미래 사회에는 더 많은 갈등과 범죄가 발생할 수 있고, 그 대처 능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AI와 같은 기술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더욱이 인간의 발달단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가 없다. 최근에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AI를 활용해 질문하게 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디지털 교과서와 AI 학습 프로그램을 보급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과연 어린이·청소년의 인지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를 사용할수록 아이들의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기억하는 힘이 약화되고 논리적 사고력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왜? 두뇌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두뇌 발달이 왕성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한 감각 경험이다. 그리고 어려운 책을 낑낑대며 읽어나가는 것이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펼치기 위해 망설이고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AI는 운동선수 대신 운동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수가 운동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마저 AI에게 과제를 맡긴다. 그렇게 해서 쓴 글은 과연 그 학생의 것일까? 우리는 학습자와 전문가를 구분해서 학습자에게는 AI 사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



AI는 공동체 관계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AI가 생활세계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AI는 참된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진실한 감정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며, 적합한 규범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AI는 환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아가 없기에 감정이나 의지와 무관한 존재로 머물 수밖에 없고, 생활세계의 규범성에 대한 탐구는 관심 밖이다. 무엇보다 AI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일이다. 그러나 국가와 시장 같은 체계에서 AI가 할 수 있는 일은 엄청날 것이다. AI는 도구적 합리성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정 처리 및 상품 생산 등 인간이 해 오던 수많은 일을 AI와 피지컬 AI가 대체해 나갈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더 없이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그림자 역시 짙고 길어질 수밖에 없다.


 AI를 이용한 상담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그것은 자기중심적 합리성을 강화할 뿐이다. 그리고 갈등조정은 결코 AI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는 자리에서 사람 대신 AI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대화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당사자들이 진행자에게 부여하는 어떤 권위를 과연 AI에게도 줄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서로에게 불만을 갖는 당사자들이 본모임에서 아슬아슬한 대화와 합의를 이어 갈 수 있는 것은 진행자에 대한 인간적 신뢰와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에서 고객상담을 AI로 대체하려고 시도하지만 한계가 뚜렷한 것처럼(AI를 통해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 고객들은 사람 상담사에게 더 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갈등조정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하는 시도는 있겠지만, 성공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기껏해야 질문지를 뽑거나 보고서를 정리하는 정도일 것이다.


 AI는 하나의 기술이고 도구이므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AI 시대는 풍요의 시대도 될 수 있고, 재앙의 시대도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모여지느냐다. AI가 인류 전체의 번영과 정의를 위해 쓰일지, 소수 기득권자들의 권력과 부를 창출하는 데 쓰일지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공적 토론을 통해 합리적 의견이 잘 모인다면 그것은 정치적 힘이 되어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테지만, 자기중심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AI를 활용해 딥페이크나 가짜뉴스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둡다. 회복적 정의의 지향, 즉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AI에 지배되지 않고 AI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AI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자주 만나 대화해야 한다. 모든 것을 AI에 맡길 수는 없다. 생활세계의 많은 일은 결국 인간(들)이 숙의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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