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의 주인, <플라스틱 인간>
박성실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특별한 것 없는 날이었어요. 제임스 씨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출근해,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한 번의 회의를 했죠. ‘아휴, 간지러워. 새로 산 스웨터 때문인가?’ 제임스 씨는 슬쩍슬쩍 배를 문질렀어요. 점점 더 간지러워 마구 긁어 댔죠. 그러다 배꼽이 열리며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투명 젤리 같은 ‘그것’은 사람 모양으로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았어요.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꽤 귀여웠죠. 과학자들은 ‘그것’을 “플라스틱 인간, 인간의 몸속에 쌓인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것’이 어떻게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였지만요.
이처럼 그림책, <플라스틱 인간>(국민서관)은 인간이 플라스틱 인간을 낳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미세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폐기물이나 물건에서 떨어져 나온 플라스틱 등이 바람이나 파도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분해된 아주 작은 입자를 말해요. 그 입자는 토양과 해수에 스며들고,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의 체내에 쌓이게 돼요. 그것이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죠.
그림책에서 사람들은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어요. 사람들은 플라스틱 인간이 나오는 영상을 보고, 광고하는 물건을 샀죠. 그 덕에 제임스 씨는 꽤 유명해졌어요. 돈도 많이 벌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스틱 인간을 낳았다는 이들이 곳곳에서 생겨났어요. 사람들은 ‘플라스틱 인간이 좋아하는 플라스틱’, ‘플라스틱 인간을 예쁘게 키우는 법’ 등을 공유하며 플라스틱 인간을 키우는 데 열을 올렸어요. 플라스틱 인간을 키우는 건 쉬웠어요. 산책을 시키거나 똥을 치울 필요 없이 그저 플라스틱만 주면 됐는데, 플라스틱은 어느 집에나 넘쳐 났으니까요. 혼자 사는 제임스 씨에게도 플라스틱 인간은 친구이자 가족이었어요. 제임스 씨는 플라스틱 인간에게 수어까지 가르쳤다니까요.
플라스틱은 인류에게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어요. 다양한 형태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고, 대량생산이 가능했어요. 절연성과 내산성, 내알칼리성은 물론, 내구성까지 뛰어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저렴했어요. 그렇게 인류는 플라스틱을 사랑해 왔고, 그만큼 플라스틱은 인간과 친숙해졌어요.
문제는 플라스틱의 생산 과정에서 엄청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거예요. 쓰레기도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오죠. 일반적으로 인간이 소비한 플라스틱은 소각 혹은 매립, 재활용하는데 소각하면 온실가스가 발생해요. 매립은 어떤가요? 플라스틱이 자연분해 되는 데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까지 걸린다고 하죠. 재활용하면 된다고요? 대한민국은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이 높은 나라임에도 그 비율이 14%에 그친다고 하니(그린피스, 2024. 5.), 지구는 점점 더 많은 플라스틱을 짊어지고 가겠죠.
그림책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플라스틱 인간은 어떻게 됐을까요? 플라스틱 인간은 플라스틱을 먹으며 몸집을 불려 갔어요. 그럴수록 더 많은 플라스틱을 먹었죠. 나중에는 닥치는 대로 플라스틱을 찾아다니느라 집이 난장판이 됐어요. 서랍장과 옷장은 열리고, 물건들은 헤쳐졌으며, 플라스틱이 제거된 물건들은 고장 난 채 바닥에 나뒹굴었죠.
그날도 그랬어요. 제임스 씨보다도 훌쩍 커버린 플라스틱 인간은 먹을 걸 찾으려 온 집안을 휘저었고, 제임스 씨는 힘없이 그걸 바라보고 있었어요. 초인종이 울렸어요. 제임스 씨가 문을 열자, 플라스틱 인간은 배달 음식을 낚아챘어요. 비닐을 먹어 치운 플라스틱 인간은 음식을 제임스 씨에게 던져 버리고는 용기를 와작와작 씹어 먹어버렸어요.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제임스 씨가 소리쳤어요. 플라스틱 인간은 먹는 걸 멈추고제임스 씨를 노려보았죠. 그리고 수어로 이렇게 말했어요.
“이 집의 주인은 바로 나!”
현재 우리는 문명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어요.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뉴스는 모든 부분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고, 생존하기 위해 인간이 AI보다 가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할 거라고 해요. 몇 년 안에 범용 인공지능(AGI)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될 거라고도 하죠. 인간이 만들고, 열광하던 인공지능이 주인 행세를 하며 인간을 위협할 거라는 거예요. ‘플라스틱 인간’의 도래라고 할까요?
이러한 전망은 인간의 가치를 존엄성이 아니라 쓸모에, 효율성에 두는 도구적 가치관에 기반해 있어요.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온 것이죠. AI는 그동안 인간이 언어로 구축해 놓은 세상을 그대로 학습했고, 그걸 토대로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플라스틱 인간이 “이 집의 주인은 나”라고 했을 때 제임스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불안하기보다 불길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느꼈을 불길함은 중심인 줄만 알았던 인간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뒤늦은 알아차림이었을 거예요.
플라스틱 인간은 제임스 씨에게서 나왔고, 제임스 씨는 그것을 애지중지 키웠어요. 이 집의 주인은 제임스 씨였죠. 정말 그런가요? 플라스틱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져요. 그것을 가공한 것이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은 플라스틱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어요. 원재료는 인간의 것이 아니니까요. 더욱이 플라스틱은 화석을 만들어낸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쳐요.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머물며, 영향을 미치는 존재죠. 반면 인간의 수명은 짧아요. 지구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생태계의 품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죠.
그런데도 인간은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지구를 대해 왔어요. 마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에요. 플라스틱 인간의 탄생은 생태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과 편리를 향한 욕망의 결과이자, 인간 중심성의 표상인거죠. 그러면 인공지능은 어떨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데이터와 알고리즘 등을 먹고 산다고 해도, 이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해요. 기후 위기 시기에 AI가 중심이 되는 세상은 인간은 물론 지구 전체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있어요. AGI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지구에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어떤 대답으로 돌아오게 될까요?
여름볕의 세례를 받으며 숲이 자라고 있어요. 녹음이 짙어지는 이 눈부신 계절에 숲을 즐기지 못하고 자꾸만 질문하게 돼요. 올해는 얼마나 더울까, 얼마나 비가 올까?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림책, <플라스틱 인간>은 이렇게 질문을 남겨요.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일까, 하고요.
*이 글은 매거진 《허브》 145호에 실린 글을 수정 및 보완한 것입니다.
박성실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특별한 것 없는 날이었어요. 제임스 씨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출근해,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한 번의 회의를 했죠. ‘아휴, 간지러워. 새로 산 스웨터 때문인가?’ 제임스 씨는 슬쩍슬쩍 배를 문질렀어요. 점점 더 간지러워 마구 긁어 댔죠. 그러다 배꼽이 열리며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투명 젤리 같은 ‘그것’은 사람 모양으로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았어요.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꽤 귀여웠죠. 과학자들은 ‘그것’을 “플라스틱 인간, 인간의 몸속에 쌓인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것’이 어떻게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였지만요.
이처럼 그림책, <플라스틱 인간>(국민서관)은 인간이 플라스틱 인간을 낳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미세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폐기물이나 물건에서 떨어져 나온 플라스틱 등이 바람이나 파도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분해된 아주 작은 입자를 말해요. 그 입자는 토양과 해수에 스며들고,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의 체내에 쌓이게 돼요. 그것이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죠.
그림책에서 사람들은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어요. 사람들은 플라스틱 인간이 나오는 영상을 보고, 광고하는 물건을 샀죠. 그 덕에 제임스 씨는 꽤 유명해졌어요. 돈도 많이 벌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스틱 인간을 낳았다는 이들이 곳곳에서 생겨났어요. 사람들은 ‘플라스틱 인간이 좋아하는 플라스틱’, ‘플라스틱 인간을 예쁘게 키우는 법’ 등을 공유하며 플라스틱 인간을 키우는 데 열을 올렸어요. 플라스틱 인간을 키우는 건 쉬웠어요. 산책을 시키거나 똥을 치울 필요 없이 그저 플라스틱만 주면 됐는데, 플라스틱은 어느 집에나 넘쳐 났으니까요. 혼자 사는 제임스 씨에게도 플라스틱 인간은 친구이자 가족이었어요. 제임스 씨는 플라스틱 인간에게 수어까지 가르쳤다니까요.
플라스틱은 인류에게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어요. 다양한 형태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고, 대량생산이 가능했어요. 절연성과 내산성, 내알칼리성은 물론, 내구성까지 뛰어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저렴했어요. 그렇게 인류는 플라스틱을 사랑해 왔고, 그만큼 플라스틱은 인간과 친숙해졌어요.
문제는 플라스틱의 생산 과정에서 엄청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거예요. 쓰레기도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오죠. 일반적으로 인간이 소비한 플라스틱은 소각 혹은 매립, 재활용하는데 소각하면 온실가스가 발생해요. 매립은 어떤가요? 플라스틱이 자연분해 되는 데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까지 걸린다고 하죠. 재활용하면 된다고요? 대한민국은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이 높은 나라임에도 그 비율이 14%에 그친다고 하니(그린피스, 2024. 5.), 지구는 점점 더 많은 플라스틱을 짊어지고 가겠죠.
그림책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플라스틱 인간은 어떻게 됐을까요? 플라스틱 인간은 플라스틱을 먹으며 몸집을 불려 갔어요. 그럴수록 더 많은 플라스틱을 먹었죠. 나중에는 닥치는 대로 플라스틱을 찾아다니느라 집이 난장판이 됐어요. 서랍장과 옷장은 열리고, 물건들은 헤쳐졌으며, 플라스틱이 제거된 물건들은 고장 난 채 바닥에 나뒹굴었죠.
그날도 그랬어요. 제임스 씨보다도 훌쩍 커버린 플라스틱 인간은 먹을 걸 찾으려 온 집안을 휘저었고, 제임스 씨는 힘없이 그걸 바라보고 있었어요. 초인종이 울렸어요. 제임스 씨가 문을 열자, 플라스틱 인간은 배달 음식을 낚아챘어요. 비닐을 먹어 치운 플라스틱 인간은 음식을 제임스 씨에게 던져 버리고는 용기를 와작와작 씹어 먹어버렸어요.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제임스 씨가 소리쳤어요. 플라스틱 인간은 먹는 걸 멈추고제임스 씨를 노려보았죠. 그리고 수어로 이렇게 말했어요.
“이 집의 주인은 바로 나!”
현재 우리는 문명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어요.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뉴스는 모든 부분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고, 생존하기 위해 인간이 AI보다 가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할 거라고 해요. 몇 년 안에 범용 인공지능(AGI)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될 거라고도 하죠. 인간이 만들고, 열광하던 인공지능이 주인 행세를 하며 인간을 위협할 거라는 거예요. ‘플라스틱 인간’의 도래라고 할까요?
이러한 전망은 인간의 가치를 존엄성이 아니라 쓸모에, 효율성에 두는 도구적 가치관에 기반해 있어요.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온 것이죠. AI는 그동안 인간이 언어로 구축해 놓은 세상을 그대로 학습했고, 그걸 토대로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플라스틱 인간이 “이 집의 주인은 나”라고 했을 때 제임스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불안하기보다 불길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느꼈을 불길함은 중심인 줄만 알았던 인간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뒤늦은 알아차림이었을 거예요.
플라스틱 인간은 제임스 씨에게서 나왔고, 제임스 씨는 그것을 애지중지 키웠어요. 이 집의 주인은 제임스 씨였죠. 정말 그런가요? 플라스틱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져요. 그것을 가공한 것이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은 플라스틱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어요. 원재료는 인간의 것이 아니니까요. 더욱이 플라스틱은 화석을 만들어낸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쳐요.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머물며, 영향을 미치는 존재죠. 반면 인간의 수명은 짧아요. 지구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생태계의 품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죠.
그런데도 인간은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지구를 대해 왔어요. 마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에요. 플라스틱 인간의 탄생은 생태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과 편리를 향한 욕망의 결과이자, 인간 중심성의 표상인거죠. 그러면 인공지능은 어떨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데이터와 알고리즘 등을 먹고 산다고 해도, 이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해요. 기후 위기 시기에 AI가 중심이 되는 세상은 인간은 물론 지구 전체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있어요. AGI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지구에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어떤 대답으로 돌아오게 될까요?
여름볕의 세례를 받으며 숲이 자라고 있어요. 녹음이 짙어지는 이 눈부신 계절에 숲을 즐기지 못하고 자꾸만 질문하게 돼요. 올해는 얼마나 더울까, 얼마나 비가 올까?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림책, <플라스틱 인간>은 이렇게 질문을 남겨요.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일까, 하고요.
*이 글은 매거진 《허브》 145호에 실린 글을 수정 및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