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누가 피해자인가... l 김동문 타다문화연구소 대표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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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누가 피해자인가...

     


김동문 / 타다문화연구소대표, 중동연구자




 나는 여기서 전쟁을 국가 간의 무력충돌이라는 의미로 먼저 받아들인다. 묘하지만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충돌하여 자국을 공습하고 무력 충돌을 일으켜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던 레바논이 떠오른다.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의 무력행사로 고통당하는 가자 주민의 처지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도 전쟁일 뿐이다. 관전평, 참전, 선제공격, 엄호사격, 지원사격, 복병, 동점포, 전차부대, 투르크멘전사, 오렌지 군단, 결전지, 승전보 등 헤아 릴 수 없는 전쟁용어, 군사용어를 사용한다. 전쟁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한국 사회 구성원은, 실제 전쟁 현장에서 고통당하는 이들의 그 고통의 무게와 깊이를 제대로 헤아리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의 가자 전쟁 관련 보도나 시민의 반응에서도 전쟁게임을 보는 듯, 무덤덤한 글이 적지 않다, 


 전쟁과 회복적 정의를 연결한 이 표현이 나의 눈길을 끈다. 전쟁 현장에서 피해자는 분명하다. 그러나 가해자를 규정짓는 것은, 전쟁의 성격에 대한 차가운 접근이 있어야 한다. 전쟁의 피해자에 주목하는 것 못지않게 불의한 전쟁을 저지른 가해자, 가해집단에게 책임 부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 등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엔지오 활동 대부분은 구호활동에 집중했을 뿐이다. 불의한 전쟁의 가해자에 대한 비판의식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이슬람, 무슬림을 향한 종교적 편견이 작동되기 도 했다. 무슬림 다수국가이기에 이런 화를 자초한 것이라는 식이다.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전쟁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그 피해자를 돕는 모순 속에 빠진 것이다. 


 필자는 이른바 분쟁지역이라는 중동 지역에 닿은 삶을 살아왔다. 최소한 한국이나 미국 등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과 한인 디아스포라보다는 현장에 더 가깝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이집트에서 맞이한 91년 1월의 걸프 전쟁, 요르단에서 마주친 2000년 9월의 911테러,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은 물론이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충돌, 인티파다라 부르는 팔레스타인인 민중봉기 현장 등 뉴스 속 그 현장 안팎을 오고 갔다. 때로는 분쟁 현장 안에 머물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직전인 2002년 가을부터 2004년 사이에는 여러 차례 이라크 곳곳을 방문하고, 일정 기간 체류하곤 했다. 지역연구자로서, 엔지오 활동가로서, 현장 보도를 하는 유사언론인으로서, 다양한 측면에서 현장과 당사자를 마주했다. 


 이런 시간을 거쳐 오면서 나에게는 크고 작은 내상의 흔적이 느껴진다. 팔레스타인 지역 곳곳을 둘러보고 올 때면, 글로 정리할 수 없는 무거운 마음으로 한동안을 눌려 지냈다. 나에게는 하나의 정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 는 현실, 그것도 스스로 내일을 다듬어갈 수 없는 거친 현실을 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듣곤 하던 포성과 총성 덕분에, 나의 일상에서 들려지던 폭죽 소리나 거친 자동차 엔진 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에 올라오는 이른바 분쟁 현장, 전쟁 지역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과 사진 자료를 애써서 외면하고 살아간다. 


 전쟁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고통이다. 그럼에도 ‘관전평’을 늘어놓는 무책임한 글쓰기나 입놀림이 적지 않다. 가자 전쟁을 둘러싸고도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내가 누구의 편인가, 편 가르기를 할 것이 아니다. 누가 가해자인가,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논쟁하는 것 이전에 누가 피해자인가에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앞서 말했듯이 가해자를 규정짓는 것은 단순하지 않지만, 누가 피해자인지는 선명하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주민이나 하마스의 인질이 된 이들과 목숨을 잃은 이스라엘 시민과 그 가족들도 피해자이다. 피해자를 돕는 것과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 모두를 한꺼번에 할 수 없다면, 피해자와의 연대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자주민 230만 명의 70퍼센트에 해당하는 1948년 5월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발생한 가자난민 1세, 2세, 3세, 4세를 거치면서 160만 명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2023년 가자 전쟁 난민 1세대가 되었다. 이 가자난민에게 자신의 내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그날은 올까? 회복적 정의는 언제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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