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와 회복적 정의
파블로 Christian Reformed Church, 목사
키워드 : 다문화, 난민, 회복적정의, 모자이크 정책, 평화
인트로: 다문화와 난민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주제입니다. 회 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다문화와 난민에 대한 경험과 배움을 나누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우리는 직접 만나 대담 형식으로 서로 궁금한 점들을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파블로는 캐나다 기독교 개 혁 교회의 상호문화 사역의 수석 리더로, 교회 및 사회의 건강한 다문화를 위한 연구, 컨설팅,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강수연은 캐나다 토론토의 난민센터인 로메로 하우스(Romero House)에서 난민 정착을 돕는 활동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의 소통과 협력이 다문화 사회가 일찍 정착된 캐나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Q. 간단한 소개와 함께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의 한국 이름은 김선형진입니다. 김선은 저의 성이고, 형진은 저의 이름입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파블로로 불리고 있습니다. 저는 파라과이 한인 2세로서 미국에서 8년을 살았고 캐나다에서 8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기독교 교단 중 하나인 Christian Reformed Church 사무실에서 Senior Leader for Intercultural Ministry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일은 지역 교회와 교단이 반인종주의적이며 상호문화적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캐나다 사회와 교회가 점점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 사람들로 구성되면서, 어떻게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컨설팅하며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파라과이 한인 2세로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과 캐나다를 거치는 성장 과정 속에서 어려움을 겪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겪으셨다면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중 제일 큰 것은 소속감의 부재였습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났지만, 어느 공동체에서도 온전히 환영받고 용납받은 경험을 아직까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저에게, "한국 문화를 잘 알고 한국말도 잘 하네" 하면서도 "하지만 넌 한국 사람처럼 안 생겼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접근할 수 없는 한국문화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저는 파라과이 사람이니까 현지 파라과이 사람들과 놀곤 했지만, 여전히 생긴 것은 "중국인"처럼 생겼기에 거리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You are not one of us(너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어)"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 것이죠.
다양한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깊은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을 경험하고 정체성 혼란도 많이 겪었죠. 어렸을 때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너는 너무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어.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그중에 딱 하나만 골라야지 너의 인생이 편해질 거야."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하나의 문화를 고르고 그 문화권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문제는 제가 가진 세 가지 문화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였습니다. 한국 문화, 미국 문화, 아니면 파라과이 문화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긴 내적 갈등 끝에,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소유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는 모두 네 일부분이야. 그 일부분을 버린다는 것은 너의 중요한 한 부분을 외면 하는 것과 같아. 그러니, 네가 가진 모든 부분을 받아들여야 해." 그 조언을 듣고 나서, 제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하니 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어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을 때 생기는 문제 중 하나는, 제 안에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이 가치관들이 서로 충돌하게 되죠.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제 안의 다양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통합시키고 화해시키는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혼란을 경험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내적 평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과거에 비하면 좀 더 수월해지고 있습니다. 내적인 평화를 경험하고 나니, 많은 사회와 교회들이 다양한 문화 때문에 혼란과 어려움, 그리고 갈등을 경험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부분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제 사명감으로 받아들이고 시작했습니다.
Q. 내적 평화를 찾으셨고, 그로 인해 교회 맥락에서 다문화를 어떻게 더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신다고 말씀하 셨는데요. 아까 말씀해주신 내 안의 화해, 다양한 문화 속의 화해가 평화 세우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다문화와 화해가 중요할까요?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회복적 정의와 연관될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부분은 "다름"인 것 같습니다. 흔히 우리는 다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다름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습니다. 다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같음"을 강조하면서 하나됨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다름을 부정하고 같음만 집중하면 표면적인 하나됨 혹은 공동체성을 만들어냅니다. 다름만 집중하면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구심점을 찾기 어렵죠. 그래서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는 다름과 같음에 대한 깊은 인식과 용납이 필요합니다. 이 두 관점을 균형 있게 보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인드를 intercultural mindset(상호문화적 마음가짐)라고 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평화는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집단적 노력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자와 강자가 함께 협력하면서 만드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다문화가 되어가면서 약자와 강자의 관계가 다양한 문화권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와 사랑의 관점도 다양해졌습니다. 각 문화마다 생각하는 정의와 사랑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반면, 매우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intercultural mindset 없이 다문화 사 에서 정의로운 평화 혹은 회복적 정의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생각했던 정의의 기반으로 평화를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다양한 문화권의 관점을 깊이 이해하면서 함께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방금 말씀해주신 부분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저도 최근에 회사에서 다문화는 아니지만, 장애인 포용성과 관련한 트레이닝을 받았거든요. 퍼실리테이터분들이 각자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분들이었어요. 온라인 으로 진행되었고, 퀴즈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시간 내에 늦는 사람이 있으면 잘 못된 것이라는 OX 퀴즈였어요. 저는 시간이 늦으면 잘못된 게 맞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아니라 고 하시더라고요. 장애 유무나 사는 지역에 교통이 잘 구비되어 있느냐는 등 여러 요인에 따라서 남들보다 몇 배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할 때 맞다고 여긴 정의가 남이 생각할 때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런 부분이 포용성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다른 사람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맞습니다.
Q. 그러면 다문화 사회에서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방금 말씀해주신 화해나 평화, 정의라는 것이 사실 개인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다문화 사회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여러 국가에서의 경험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공동체의 역할을 말씀드리기 전에, multiculturalism과 interculturality의 차이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캐나다는 다문화 사회입니다. 1970년대부터 캐나다는 다문화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였고, 1988년에는 다문화 정책을 헌법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로 다문화 국가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다문화성의 핵심 가치는 다름을 향한 관용(tolerance)입니다. 다름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관용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관용 없이는 다문화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관용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 문화들 간에 경계가 필요합니다. 서로 경계선을 넘으면 관용하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이러한 다이내믹을 잘 묘사하는 이미지가 바로 모자이크입니다. 모자이크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들이 함께 보여 아름다운 큰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각 모양들 사이에 는 명확한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다문화 사회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반면, 상호문화성 (interculturality)은 서로 간의 경계를 중요시하면서도, 서로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입니다. 상호문화 관계성에 초점을 두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며 배우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서로 변화를 주며 더 건강한 공동체로 만들어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입 니다. 같이 공동 창조하는 것이죠. 이러한 관계에서는 서로 섬김을 받고 서로 섬기는 다이나믹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다문화 사회 속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상호문화 관계성을 만들어 나가며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일하고 있는 로메로 하우스는 intercultural한 공동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문화를 나누며 난민을 환대하는 공동체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intercultural한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깊게 봐야 할 것은, 서로 관계는 있지만 공동체의 방향성과 정책은 누가 최종 결정하느냐입니다. 주로 캐나다에서는 중 혹은 상류층의 백인 남자들이죠. 그러니까 이 공동체는 진정한 intercultural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Q. 다양한 나라에서 살면서 다문화 관점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파라과이에서는 저희 부모님이 이민 1세대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어요. 1970년대만 해도 한인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소수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부모님이나 제가 억울한 일을 겪어도 항의할 곳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파라과이는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 입니다. 그래서 경찰들이 별 일 아닌 것으로 핑계를 삼아 돈을 뜯어내곤 했어요. 심지어는 강도와 짜고 한인들의 집을 터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파라과이에서 현지 분들에게 도움과 친절을 받은 경험도 많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부정의에 대해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았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 저는 6학년 때 한국에 가봤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갔고, 부모님의 나라니까 당연히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 저를 한국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도 저를 좀 어려워하셨어요. 물론 2세라는 것도 있지만, 제가 생긴 게 조금 이국적으로 생겼거든요. 그래서 사우나에 가면 제가 한국말을 못하는 줄 알고 "엇, 외국인이 왔네"라고 하고, 식당에 가면 "저분 외국 인이니까 김치 안 줘도 돼"라고 하곤 했어요. 최근에 한국에 갔을 때는 좀 다른 경험을 했어요. 한국 사회가 다문화가 되어가서 그런지,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조심스럽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은 저를 외국인으로 봅니다.
미국 같은 경우, 이민자의 나라라서 그런지 정말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인종차별의 역사와 반인종차별 운동의 역사가 길어서 미국에서 인종 차별에 대해 많이 배우고, 인종차별이 잘못된 것이고 죄이며, 인권의 중요성과 부정의를 당할 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저는 LA와 보스턴에서 살았는데 대놓고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유학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누리는 혜택을 똑같이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어요. 하지만 역시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그런지, 경계를 긋는 것을 너무 잘하는 것을 넘어 좀 냉정하게 느낀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아서 저도 조금씩 경계를 긋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처음 미국에 갔을 때 파라과이 한인 2세로서는 미국 사람들이 좀 유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캐나다는, 다문화 나라이기 때문인지, 제가 살아봤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정말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보다 더 다문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성을 잘 받아들이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더 들으려 하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존중도 있고 원주민에 대한 주권과 인권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처럼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살기 좋은 사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캐나다에도 안 좋은 것들이 많죠.
Q. 감사합니다. 한국의 장·단기 체류 외국인이 2023년 기준 약 251만으로 전체 인구의 4.89%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OECD에서는 외국인 귀화자, 내국인 이민자 2세 및 외국인 인구를 합친 이주 배경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을 경우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되면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다인종 ·다문화 국가가 된다고 합니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는 많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캐나다에서 관련 사역을 하시면서 나눌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다면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연씨와 저는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도와주는 일을 비슷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의 일이 조금 다른 게 수 씨는 새로 오시는 분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캐나다에서 다양한 인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주로 들으면, 특히 제가 일하는 단체 안에서는, 그분들이 "우리는 이 공동체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 20년, 30년, 40년이 넘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손님으로 취급받느냐"라고 말합니다. 물론 처음 교회 공동체에 왔을 때는 손님으로 존중해주고 받아들이고 도와줘야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손님이 아니라 하나의 멤버로서 함께 동참하고 활동하며 나중에는 리더십 역할까지 가는 것이 당연한데, 멤버십이라는 것은 주어졌지만 여전히 그들이 받는 대우는 영구적인 손님입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단은 네덜란드 이민자로 세워진 교단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네덜란드 배경의 사람들이 주로 리더십 역할을 맡습니다. 유색인종들이 이 교단에 들어온 지 50년이 넘었지만, 그들을 여전히 손님으로 대합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이 교단은 여전히 네덜란드 배경의 백인들이 권력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렇게 남는 게 싫어서 떠나는 유색인종 교인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로 가려면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교인들을 포용하며 그들도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리더십 역할을 주면서 그들이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손님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지고 섬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더 이상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로, 그리고 네덜란드 배경의 백인들은 종종 게스트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로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섬기며 상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다문화를 생물다양성(bio-diversity)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생물다양성을 보면,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지켜주고, 서로 공생하도록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이 모여 있다고 해서 지속 가능한 다문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의도성, 계획을 가지고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생태계나 인프라는 절대로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그리고 소속감의 관점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물다양성에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생태계의 생존과 번영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다문화에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건강한 다문화가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시민들을 지켜주고 그들이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 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Q. 맞아요. 저도 현장에서 느끼기에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맞아요.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모든 갈등이 다 나쁜 것은 아니잖아요. 갈등이 있음으로써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고 더 건강하게 갈 수 있는 방향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정말로 혼란스럽습니다! 정말 쉽지 않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계를 거쳐야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많은 공감이 되는 메시지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분들을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달라서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잖아요.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하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번에 한국에 있으면서 한 달 동안 다양한 분을 만나 다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다문화로 가는 길에서 무엇이 제일 두렵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의 색,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문화가 없어질까봐 두렵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한국 사회가 다문화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 문화라는 것은 정착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해왔다는 것입니다. 한국 문화는 오랜 세월 동안 큰 변화들을 겪으며 진화해왔습니다. 옛날 한국 문화를 보고 싶으시면 지금 파라과이 한인 이민 사회를 보시면 됩니다. 많은 이민자분께서 한국을 1960년대에 떠나셨기 때문에, 60년대 한국 문화를 조금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제가 자라왔던 이민 문화는 교회에서 때리고 기합 주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아무튼 한국 문화는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을 거치며 서양 문화도 많이 받아들이면서 한국 문화 안에서도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단어들이 섞이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섞이면서 K-pop, K-영화 같은 것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것을 지키면서 외부로부터 오는 변화를 잘 소화시키며 진화해왔던 것이 한국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문화를 통해서도 물론 완전히 한국 문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봐야 내가 누구인지 더 알게 됩니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알아가는 '나'도 있지만, 남들과 만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발견하게 됩니다. 관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과 비슷하게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 전통과 역사, 신학을 공부하면서 알아가는 것도 있지만, 다른 종교인들을 만나면서 나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국도 다양한 문화를 배우면서 Korean-ness(한국성)가 무엇인지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문화로 가는 것이 한국의 정체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 이 알아가는 또 다른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더 바람직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제일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갈 때 결국 핵심적인 것은 소속감인 것 같아요. 사실, 다양한 인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몇천 년 동안 인류가 해왔던 질문이에요. 과거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들을 동화시키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성경 이야기를 보면 앗수르 제국이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때, 타문화권 사람들을 흡수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제국 내에 뿔뿔이 흩어버리고 강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결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각자의 문화, 종교, 언어를 보존하기 어렵게 만들어 결국 앗수르 제국의 문화에 동화되도록 했습니다.
바벨론 제국 같은 경우는 조금 더 다문화적이었습니다. 정복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허락해 주고, 그 나라 언어와 종교를 유지하게 했지만, 황제를 섬기고 바벨론 법에 따르며 세금을 내는 것은 필수였죠. 또한, 각 나라의 지식인들이나 지도자들을 수도에 데려와 바벨론의 학문, 철학, 과학, 문화를 강제로 배우게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문화와 과학, 종교는 최고이니 우리에게 배워라. 그러니 동화되거나 아니면 수준 떨어진 너희 문화를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동화 방식으로 역사는 흘러왔습니다.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몽골, 중국, 영국, 일본, 미국 등등. 현재 사회에서는 강제로 동화시키지는 않지만, 다양성을 관리하려는 제도들이나 노력들이 있죠. 미국 사회는 다양성을 표현할 때 흔히 '멜팅 포트'라는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녹아 없어지는 뜨거운 육수 안에 들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의미하죠. Korean-American(한국계 미국인), Nigerian-American(나이지리아계 미국인)처럼 하이픈된 정체성이 생기지만, 결국 주도권을 가진 앵글로(Anglo) 백인들은 그냥 American(미국인)이지요. 그들이 미국 문화의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캐나다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개념이 있어서 각 문화의 독특성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다양성을 문제거리 혹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만, 캐나다는 다양성을 우리의 강점으로 확실히 이야기합니다 (Diversity is our strength). 다양성을 바탕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굳게 믿죠. 그래서 조금 더 포용적인 환경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역시도 문화의 표준은 앵글로 백인 남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문화를 관리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있고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탑리더십에서부터 다양한 영역까지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여뿐만 아니라 소속감도 필요합니다. 나를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이 있는 환경에서 사람은 본인의 최대 잠재력을 발휘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그 공동체나 사회에 주인 의식이 생기기도 하죠. 내가 여기서 소속감이 있는지는 나의 의견과 목소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나타납니다. 어떤 사회든 시민들이 "나는 여기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나의 관점이 잘 적용되고 있다"고 느 낄 때 비로소 소속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소속감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좀 이상적이긴 하죠. 그래도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나라나 사회가 그 정도까지 가기는 어렵겠지만, 로컬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앞장서서 모범이 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그러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예언자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되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다문화 사회라고 했을 때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평화롭게 사는 것 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바람직한 사회가 되려면 정책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죠.
맞아요. 다문화 안에서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각 사회가 어느 단계까지 준비되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소수의 국가 지도자들이 머리를 잘 써서 좋은 다문화 정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의식과 거리감이 클수록, 그 정책에 대해 거부 반응이 생깁니다. 그래서 건강한 다문화로 가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의식의 변화, 그리고 관계의 변화도 필수적입니다.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음, 생각, 관계, 영혼, 시스템의 변화를 (transforming heart, mind, spirit, relationship, and systems) 이끌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문화 사회는 모든 사람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문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번영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다문화와 회복적 정의
파블로 Christian Reformed Church, 목사
키워드 : 다문화, 난민, 회복적정의, 모자이크 정책, 평화
인트로: 다문화와 난민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주제입니다. 회 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다문화와 난민에 대한 경험과 배움을 나누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우리는 직접 만나 대담 형식으로 서로 궁금한 점들을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파블로는 캐나다 기독교 개 혁 교회의 상호문화 사역의 수석 리더로, 교회 및 사회의 건강한 다문화를 위한 연구, 컨설팅,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강수연은 캐나다 토론토의 난민센터인 로메로 하우스(Romero House)에서 난민 정착을 돕는 활동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의 소통과 협력이 다문화 사회가 일찍 정착된 캐나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Q. 간단한 소개와 함께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의 한국 이름은 김선형진입니다. 김선은 저의 성이고, 형진은 저의 이름입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파블로로 불리고 있습니다. 저는 파라과이 한인 2세로서 미국에서 8년을 살았고 캐나다에서 8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기독교 교단 중 하나인 Christian Reformed Church 사무실에서 Senior Leader for Intercultural Ministry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일은 지역 교회와 교단이 반인종주의적이며 상호문화적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캐나다 사회와 교회가 점점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 사람들로 구성되면서, 어떻게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컨설팅하며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파라과이 한인 2세로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과 캐나다를 거치는 성장 과정 속에서 어려움을 겪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겪으셨다면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중 제일 큰 것은 소속감의 부재였습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났지만, 어느 공동체에서도 온전히 환영받고 용납받은 경험을 아직까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저에게, "한국 문화를 잘 알고 한국말도 잘 하네" 하면서도 "하지만 넌 한국 사람처럼 안 생겼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접근할 수 없는 한국문화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저는 파라과이 사람이니까 현지 파라과이 사람들과 놀곤 했지만, 여전히 생긴 것은 "중국인"처럼 생겼기에 거리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You are not one of us(너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어)"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 것이죠.
다양한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깊은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을 경험하고 정체성 혼란도 많이 겪었죠. 어렸을 때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너는 너무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어.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그중에 딱 하나만 골라야지 너의 인생이 편해질 거야."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하나의 문화를 고르고 그 문화권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문제는 제가 가진 세 가지 문화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였습니다. 한국 문화, 미국 문화, 아니면 파라과이 문화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긴 내적 갈등 끝에,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소유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는 모두 네 일부분이야. 그 일부분을 버린다는 것은 너의 중요한 한 부분을 외면 하는 것과 같아. 그러니, 네가 가진 모든 부분을 받아들여야 해." 그 조언을 듣고 나서, 제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하니 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어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을 때 생기는 문제 중 하나는, 제 안에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이 가치관들이 서로 충돌하게 되죠.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제 안의 다양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통합시키고 화해시키는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혼란을 경험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내적 평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과거에 비하면 좀 더 수월해지고 있습니다. 내적인 평화를 경험하고 나니, 많은 사회와 교회들이 다양한 문화 때문에 혼란과 어려움, 그리고 갈등을 경험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부분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제 사명감으로 받아들이고 시작했습니다.
Q. 내적 평화를 찾으셨고, 그로 인해 교회 맥락에서 다문화를 어떻게 더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신다고 말씀하 셨는데요. 아까 말씀해주신 내 안의 화해, 다양한 문화 속의 화해가 평화 세우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다문화와 화해가 중요할까요?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회복적 정의와 연관될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부분은 "다름"인 것 같습니다. 흔히 우리는 다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다름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습니다. 다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같음"을 강조하면서 하나됨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다름을 부정하고 같음만 집중하면 표면적인 하나됨 혹은 공동체성을 만들어냅니다. 다름만 집중하면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구심점을 찾기 어렵죠. 그래서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는 다름과 같음에 대한 깊은 인식과 용납이 필요합니다. 이 두 관점을 균형 있게 보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인드를 intercultural mindset(상호문화적 마음가짐)라고 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평화는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집단적 노력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자와 강자가 함께 협력하면서 만드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다문화가 되어가면서 약자와 강자의 관계가 다양한 문화권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와 사랑의 관점도 다양해졌습니다. 각 문화마다 생각하는 정의와 사랑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반면, 매우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intercultural mindset 없이 다문화 사 에서 정의로운 평화 혹은 회복적 정의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생각했던 정의의 기반으로 평화를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다양한 문화권의 관점을 깊이 이해하면서 함께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방금 말씀해주신 부분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저도 최근에 회사에서 다문화는 아니지만, 장애인 포용성과 관련한 트레이닝을 받았거든요. 퍼실리테이터분들이 각자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분들이었어요. 온라인 으로 진행되었고, 퀴즈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시간 내에 늦는 사람이 있으면 잘 못된 것이라는 OX 퀴즈였어요. 저는 시간이 늦으면 잘못된 게 맞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아니라 고 하시더라고요. 장애 유무나 사는 지역에 교통이 잘 구비되어 있느냐는 등 여러 요인에 따라서 남들보다 몇 배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할 때 맞다고 여긴 정의가 남이 생각할 때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런 부분이 포용성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다른 사람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맞습니다.
Q. 그러면 다문화 사회에서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방금 말씀해주신 화해나 평화, 정의라는 것이 사실 개인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다문화 사회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여러 국가에서의 경험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공동체의 역할을 말씀드리기 전에, multiculturalism과 interculturality의 차이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캐나다는 다문화 사회입니다. 1970년대부터 캐나다는 다문화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였고, 1988년에는 다문화 정책을 헌법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로 다문화 국가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다문화성의 핵심 가치는 다름을 향한 관용(tolerance)입니다. 다름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관용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관용 없이는 다문화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관용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 문화들 간에 경계가 필요합니다. 서로 경계선을 넘으면 관용하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이러한 다이내믹을 잘 묘사하는 이미지가 바로 모자이크입니다. 모자이크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들이 함께 보여 아름다운 큰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각 모양들 사이에 는 명확한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다문화 사회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반면, 상호문화성 (interculturality)은 서로 간의 경계를 중요시하면서도, 서로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입니다. 상호문화 관계성에 초점을 두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며 배우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서로 변화를 주며 더 건강한 공동체로 만들어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입 니다. 같이 공동 창조하는 것이죠. 이러한 관계에서는 서로 섬김을 받고 서로 섬기는 다이나믹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다문화 사회 속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상호문화 관계성을 만들어 나가며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일하고 있는 로메로 하우스는 intercultural한 공동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문화를 나누며 난민을 환대하는 공동체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intercultural한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깊게 봐야 할 것은, 서로 관계는 있지만 공동체의 방향성과 정책은 누가 최종 결정하느냐입니다. 주로 캐나다에서는 중 혹은 상류층의 백인 남자들이죠. 그러니까 이 공동체는 진정한 intercultural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Q. 다양한 나라에서 살면서 다문화 관점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파라과이에서는 저희 부모님이 이민 1세대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어요. 1970년대만 해도 한인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소수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부모님이나 제가 억울한 일을 겪어도 항의할 곳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파라과이는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 입니다. 그래서 경찰들이 별 일 아닌 것으로 핑계를 삼아 돈을 뜯어내곤 했어요. 심지어는 강도와 짜고 한인들의 집을 터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파라과이에서 현지 분들에게 도움과 친절을 받은 경험도 많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부정의에 대해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았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 저는 6학년 때 한국에 가봤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갔고, 부모님의 나라니까 당연히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 저를 한국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도 저를 좀 어려워하셨어요. 물론 2세라는 것도 있지만, 제가 생긴 게 조금 이국적으로 생겼거든요. 그래서 사우나에 가면 제가 한국말을 못하는 줄 알고 "엇, 외국인이 왔네"라고 하고, 식당에 가면 "저분 외국 인이니까 김치 안 줘도 돼"라고 하곤 했어요. 최근에 한국에 갔을 때는 좀 다른 경험을 했어요. 한국 사회가 다문화가 되어가서 그런지,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조심스럽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은 저를 외국인으로 봅니다.
미국 같은 경우, 이민자의 나라라서 그런지 정말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인종차별의 역사와 반인종차별 운동의 역사가 길어서 미국에서 인종 차별에 대해 많이 배우고, 인종차별이 잘못된 것이고 죄이며, 인권의 중요성과 부정의를 당할 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저는 LA와 보스턴에서 살았는데 대놓고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유학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누리는 혜택을 똑같이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어요. 하지만 역시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그런지, 경계를 긋는 것을 너무 잘하는 것을 넘어 좀 냉정하게 느낀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아서 저도 조금씩 경계를 긋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처음 미국에 갔을 때 파라과이 한인 2세로서는 미국 사람들이 좀 유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캐나다는, 다문화 나라이기 때문인지, 제가 살아봤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정말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보다 더 다문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성을 잘 받아들이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더 들으려 하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존중도 있고 원주민에 대한 주권과 인권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처럼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살기 좋은 사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캐나다에도 안 좋은 것들이 많죠.
Q. 감사합니다. 한국의 장·단기 체류 외국인이 2023년 기준 약 251만으로 전체 인구의 4.89%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OECD에서는 외국인 귀화자, 내국인 이민자 2세 및 외국인 인구를 합친 이주 배경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을 경우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되면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다인종 ·다문화 국가가 된다고 합니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는 많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캐나다에서 관련 사역을 하시면서 나눌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다면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연씨와 저는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도와주는 일을 비슷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의 일이 조금 다른 게 수 씨는 새로 오시는 분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캐나다에서 다양한 인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주로 들으면, 특히 제가 일하는 단체 안에서는, 그분들이 "우리는 이 공동체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 20년, 30년, 40년이 넘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손님으로 취급받느냐"라고 말합니다. 물론 처음 교회 공동체에 왔을 때는 손님으로 존중해주고 받아들이고 도와줘야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손님이 아니라 하나의 멤버로서 함께 동참하고 활동하며 나중에는 리더십 역할까지 가는 것이 당연한데, 멤버십이라는 것은 주어졌지만 여전히 그들이 받는 대우는 영구적인 손님입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단은 네덜란드 이민자로 세워진 교단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네덜란드 배경의 사람들이 주로 리더십 역할을 맡습니다. 유색인종들이 이 교단에 들어온 지 50년이 넘었지만, 그들을 여전히 손님으로 대합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이 교단은 여전히 네덜란드 배경의 백인들이 권력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렇게 남는 게 싫어서 떠나는 유색인종 교인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로 가려면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교인들을 포용하며 그들도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리더십 역할을 주면서 그들이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손님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지고 섬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더 이상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로, 그리고 네덜란드 배경의 백인들은 종종 게스트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로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섬기며 상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다문화를 생물다양성(bio-diversity)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생물다양성을 보면,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지켜주고, 서로 공생하도록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이 모여 있다고 해서 지속 가능한 다문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의도성, 계획을 가지고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생태계나 인프라는 절대로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그리고 소속감의 관점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물다양성에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생태계의 생존과 번영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다문화에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건강한 다문화가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시민들을 지켜주고 그들이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 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Q. 맞아요. 저도 현장에서 느끼기에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맞아요.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모든 갈등이 다 나쁜 것은 아니잖아요. 갈등이 있음으로써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고 더 건강하게 갈 수 있는 방향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정말로 혼란스럽습니다! 정말 쉽지 않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계를 거쳐야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많은 공감이 되는 메시지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분들을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달라서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잖아요.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하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번에 한국에 있으면서 한 달 동안 다양한 분을 만나 다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다문화로 가는 길에서 무엇이 제일 두렵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의 색,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문화가 없어질까봐 두렵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한국 사회가 다문화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 문화라는 것은 정착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해왔다는 것입니다. 한국 문화는 오랜 세월 동안 큰 변화들을 겪으며 진화해왔습니다. 옛날 한국 문화를 보고 싶으시면 지금 파라과이 한인 이민 사회를 보시면 됩니다. 많은 이민자분께서 한국을 1960년대에 떠나셨기 때문에, 60년대 한국 문화를 조금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제가 자라왔던 이민 문화는 교회에서 때리고 기합 주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아무튼 한국 문화는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을 거치며 서양 문화도 많이 받아들이면서 한국 문화 안에서도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단어들이 섞이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섞이면서 K-pop, K-영화 같은 것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것을 지키면서 외부로부터 오는 변화를 잘 소화시키며 진화해왔던 것이 한국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문화를 통해서도 물론 완전히 한국 문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봐야 내가 누구인지 더 알게 됩니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알아가는 '나'도 있지만, 남들과 만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발견하게 됩니다. 관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과 비슷하게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 전통과 역사, 신학을 공부하면서 알아가는 것도 있지만, 다른 종교인들을 만나면서 나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국도 다양한 문화를 배우면서 Korean-ness(한국성)가 무엇인지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문화로 가는 것이 한국의 정체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 이 알아가는 또 다른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더 바람직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제일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갈 때 결국 핵심적인 것은 소속감인 것 같아요. 사실, 다양한 인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몇천 년 동안 인류가 해왔던 질문이에요. 과거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들을 동화시키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성경 이야기를 보면 앗수르 제국이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때, 타문화권 사람들을 흡수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제국 내에 뿔뿔이 흩어버리고 강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결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각자의 문화, 종교, 언어를 보존하기 어렵게 만들어 결국 앗수르 제국의 문화에 동화되도록 했습니다.
바벨론 제국 같은 경우는 조금 더 다문화적이었습니다. 정복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허락해 주고, 그 나라 언어와 종교를 유지하게 했지만, 황제를 섬기고 바벨론 법에 따르며 세금을 내는 것은 필수였죠. 또한, 각 나라의 지식인들이나 지도자들을 수도에 데려와 바벨론의 학문, 철학, 과학, 문화를 강제로 배우게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문화와 과학, 종교는 최고이니 우리에게 배워라. 그러니 동화되거나 아니면 수준 떨어진 너희 문화를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동화 방식으로 역사는 흘러왔습니다.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몽골, 중국, 영국, 일본, 미국 등등. 현재 사회에서는 강제로 동화시키지는 않지만, 다양성을 관리하려는 제도들이나 노력들이 있죠. 미국 사회는 다양성을 표현할 때 흔히 '멜팅 포트'라는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녹아 없어지는 뜨거운 육수 안에 들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의미하죠. Korean-American(한국계 미국인), Nigerian-American(나이지리아계 미국인)처럼 하이픈된 정체성이 생기지만, 결국 주도권을 가진 앵글로(Anglo) 백인들은 그냥 American(미국인)이지요. 그들이 미국 문화의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캐나다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개념이 있어서 각 문화의 독특성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다양성을 문제거리 혹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만, 캐나다는 다양성을 우리의 강점으로 확실히 이야기합니다 (Diversity is our strength). 다양성을 바탕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굳게 믿죠. 그래서 조금 더 포용적인 환경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역시도 문화의 표준은 앵글로 백인 남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문화를 관리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있고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탑리더십에서부터 다양한 영역까지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여뿐만 아니라 소속감도 필요합니다. 나를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이 있는 환경에서 사람은 본인의 최대 잠재력을 발휘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그 공동체나 사회에 주인 의식이 생기기도 하죠. 내가 여기서 소속감이 있는지는 나의 의견과 목소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나타납니다. 어떤 사회든 시민들이 "나는 여기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나의 관점이 잘 적용되고 있다"고 느 낄 때 비로소 소속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소속감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좀 이상적이긴 하죠. 그래도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나라나 사회가 그 정도까지 가기는 어렵겠지만, 로컬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앞장서서 모범이 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그러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예언자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되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다문화 사회라고 했을 때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평화롭게 사는 것 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바람직한 사회가 되려면 정책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죠.
맞아요. 다문화 안에서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각 사회가 어느 단계까지 준비되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소수의 국가 지도자들이 머리를 잘 써서 좋은 다문화 정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의식과 거리감이 클수록, 그 정책에 대해 거부 반응이 생깁니다. 그래서 건강한 다문화로 가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의식의 변화, 그리고 관계의 변화도 필수적입니다.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음, 생각, 관계, 영혼, 시스템의 변화를 (transforming heart, mind, spirit, relationship, and systems) 이끌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문화 사회는 모든 사람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문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번영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