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저널 12월호] 회복적 생활 공동체 - 백 개의 학교 이야기를 중심으로 _ 이상우 (13년차 마을활동가)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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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생활 공동체 - 백 개의 학교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상우



위스테이별내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자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형 아파트다.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부터 준공과 입주 후 아파트 운영을 하는 과정에서도 협동조합은 일정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아파트여서 조합원들은 임차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중적 구조가 딱히 불편하거나 불안함을 조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집(아파트)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 조합원들은 분양권 문제나 집값 상승에 대한 걱정보다 함께 모여 사는 것으로부터 충분한 삶의 가치를 만들고 누리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2017년 설립된 조합은 2018년 초 벽두부터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갈등조정 마을활동가 양성과정을 운영했고 그 결과 23명이 성공적으로 과정을 이수했다. 그 후 2년 동안 조합은 조합원 전체를 대상으로 ‘필수교육’을 운영한 바 있는데, 교육 상황에서 이 활동가들이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맡으며 여러 형태의 서클을 진행했다. 이제 서클은 우리 조합 활동에 자리 잡아 서클이라는 말 없이도, 각종 모임에서 여는 질문, 목적 질문, 영향과 실천에 대한 질문의 형태로 하나의 회의법이 되어 있다.

 

우리 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백 개의 학교’다. ‘누구나 배우고 가르치며 즐기는’이라는 모토를 가진 우리 위스테이별내의 평생학습 플랫폼의 이름이다. ‘백 개의 학교’는 주민 누구나 강사가 될 수 있고, 학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마을교육프로그램이다. 사실 누구나 남들에게 정보든 기술이든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최소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만,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 또는 나 말고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여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상호돌봄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인 ‘타임뱅크’에서는 “이제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면서 누구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는 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특히, 결혼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어 있는 엄마들의 경우에는 일정 분야에서 스스로 강사가 되어 ‘백 개의 학교’를 테스트베드(test-bed) 삼아 사회로 진출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때로 학생이 되고 때로 강사가 된다. 코로나가 약간 주춤했던 작년 10월에서 12월에 23개의 강좌가 시범적으로 진행되었다. 위드코로나 상황에서도 현재 올해 3기 강좌가 13개가 진행 중이다.


우리 동네 탁구 교실

피아노 반주 12주 완성

사진 강좌 기초

PT ; 통증 없이 안전하고 바르게 운동하기

감성 커피 배우기

그룹 트레이닝

명상과 마음돌봄

모루의 아침샘2

체육관 이용방법 및 운동기구 사용법

중학생, 함께 읽기

놀면서 배우는 파닉스2

필라테스

동네에서 풍물치며 놀기


 

* 2021년 11월 현재

 

또, ‘백 개의 학교’는 강좌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도 담당하고 있다. 강좌 형태로 삼기에는 애매한, 서로 ‘즐기는’ 활동 영역이 해당된다. 작년 동아리 박람회를 통해 45개의 동아리가 시작되었고, 현재 27개의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축구, 골프, 탁구, 라인댄스 등 스포츠 활동과 또래별 육아모임이 주로 활동한다.

 

신뢰와 즐거움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이들끼리 삼삼오오 조직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 개의 학교’는 우리 마을의 가장 근본을 이루고 있는 프로그램이며 주민 스스로 만들고 운영하는 자치 활동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

 

사실 이런 활동이 아파트 안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초에 협동조합 아파트로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상상한 공간 설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카페, 도서관, 체육관, 목공실, 방송실, 부엌, 유아돌봄방, 텃밭 등 법정기준의 2.5배에 달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백 개의 학교’뿐 아니라 여러 형태의 돌봄 프로그램과 캠페인이 진행된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꽁날’이라는 공동체 전체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플리마켓, 나눔장터가 운영된다. 카톡방이나 온라인카페를 통해서는 수시로 공동구매나 나눔활동이 펼쳐진다. 마을 안에서 여러 명목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서 경제적인 면에서도 서로 돌봄을 주고받고 있다.

 

사람들이 누군가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공동체라고 본다면, 또 그런 연결로 안전과 신뢰의 협동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곳이 말 그대로 ‘회복적 공동체’의 전형이 아닐까? 위스테이는 오늘도 즐겁다.

 

*이상우 씨는 13년차 마을활동가, 회복적정의 3급 자격을 가지고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에서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위의 글은 [RJ 저널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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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karj.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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