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글]관계회복전문가로 만난 회복적 정의 l 황태진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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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에 대한 질문들  l  주제글9  l 전문가


관계회복전문가로 만난 회복적 정의

황태진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저는 법대를 졸업하고 어찌어찌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지도교수님의 권유에 따라 정해진 석사논문 주제는 “형사사법에서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에 관한 연구”로 어렵게 정해졌습니다. 

제가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구공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듯이 사회도 개인적 시각에서 개별적인 행위들 및 개인적인 책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관점에서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검토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그에 대한 어떤 집단적인 책임을 수용해야 할 여지도 전혀 없게 된다. 
이에 입각한 응보 위주의 형사사법만으로는 상실한 자기통제의 회복이 곤란하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회복적 사법의 관점에서는 국가, 가해자와 피해자, 지역공동체 모두가 범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대응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게 된다. 국가는 객관적인 평가와 모니터링을 통하여 
범죄로 확산된 부정적 편견과 공포를 제거할 필요가 있고, 공동체는 ‘올바른’ 관계의 회복이 
공동체 가치의 회복을 도와주는 망(network)의 존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각인하고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피해자는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적절한 치유가 
이루어지도록 회복적 절차에 참여하고, 가치체계를 재확인함으로써 분노와 공포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해자로서는 자신의 책임감을 인식하고 아울러 피해자 등 
관계인과 대면을 통해 수치심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되찾아야 한다.


국가는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를 위해 주도권을 행사하기보다는 공동체에 문제해결 권한을 
부여하여 장래의 피해 감소에 대한 보증을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국가차원에서 외국의 
회복적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있다.1) 관계회복이 중요한 소년비행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회복 뿐만아니라 가해자의 원인치료를 통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이루어지도록 회복적 접근이 필요한데 현실에서는 응보적 처벌만을 고집하고 있어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를 위한 한계점이 있다.



 잘못이 발생했을 때 정의롭게 해결된다는 것은 처벌을 넘어 그 일로 영향과 피해를 본 당사자들의 필요와 욕구가 충분히 다뤄지고 최대한 채워져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잘못으로 인해 당사자들에게 생겨난 응당 채워져야 할 필요를 ‘정의 필요(Justice Needs)’2) 라고 부릅니다. 처벌의 역설은 피해자의 요청으로 시작된 처벌이 실제 이뤄지고 나면 그 결과에 가장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피해자일 확률이 가장 높다는 점입니다.


 피해자가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동행해 가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만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피해자의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있을까? 가해자들은 조정, 회합, 서클 프로세스를 통해 자기통제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심화되는 가운데 공동체 회복의 노력으로 회복적 정의 사회가 이뤄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질문은 ‘나는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확신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회복적 사법에 관한 논문을 쓰고 난 이후에는 더욱 많은 고민과 질문이 머리를 채웠습니다. 하지만 ‘방향성은 회복적 정의가 맞다’는 생각은 자석처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듯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을 만나게 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회복적 사법과 관련된 논문을 쓸까말까 고민하면서 도움을 받을 생각도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에 회복적 정의 3급과정을 들으면서 이상(理想)으로만 생각했던 회복적 정의 실천이 현실(現實)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서히 ‘내 삶의 이정표(里程標)’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이때 만난 질문들은 ‘회복적 정의는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인간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가? 많은 세월 동안 쌓아온 법질서에 대하여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가? 회복적 정의 실천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지는 않은가? 회복적 정의의 한계는 없을까?’ 등으로, 끊이지 않는 질문들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만난 ‘벌새의 눈물’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벌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서클에서 만난 많은 벌새들의 순수함들은 ‘너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라는 울림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비판적 사고로 무장되어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회복적 정의에서 말하는 존중과 겸손으로 채우는 것이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회복적 정의를 바로 알아야겠다는 목마름은 2급 조정과정, 영국 연수, 1급과정을 쉬지 않고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2020년부터 광주경찰청과 전남경찰청 소속 회복적 경찰활동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하면서 만난 질문들은 ‘회복적 경찰활동을 의뢰하는 담당경찰의 필요는 무엇일까? 진행자의 입장에서 거의 자원봉사 수준인데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을까?’ 등이었습니다. 확장성과 지속성에 관한 의문들은 언젠가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강사님의 말로 위로받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2022년 6월 경상남도 사천교육지원청 관계회복전문가(임기제 공무원)로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고민만 해오던 것들을 실천해보는 시험장이 되겠다는 기대를 품고 첫 출근을 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관계회복전문가로서 관계회복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1. 관계회복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동의를 받는 선생님들이 먼저 관계회복지원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먼저 존중을 경험해야 하겠지요. 동의를 받는 선생님도 구속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만난 질문은 ‘관계회복지원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미 녹초가 되어 있는 선생님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혹시 나의 열정이 갑질로 느껴지는 선생님은 안 계실까?’ 등으로 많은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2. 당사자들에게 관계회복지원이 안전하고 각자에게 유의미하다는 것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관계회복지원은 자발성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내 생각에 관계회복이 필요하다고 하여 당사자들의 속도를 무시해서는 안 되고, 당사자들이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정리하도록 나는 정보를 제공할 뿐입니다. 진심어린 사과와 신뢰할 만한 재발방지 약속이 처벌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만난 질문은 ‘피해감정이 올라온 상황에서 관계회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힘들어하는 피해 측에 어떻게 안내해야 할까? 혹시 2차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당사자 중에 치료가 필요한 많이아픈 학생이 있을 때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할까? 가해 측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등이었습니다. 어려운 과제는 저도 모르게 움츠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제 마음속에 자리한 벌새는 다시 일어설 힘이 되곤 합니다.


3. 관계회복지원 진행자(관계회복지원단)들은 절차를 숙지하고 안전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주도가 아니면 잔소리로 들리는 것 같아요. 관계회복지원단 입장에서는 저의 열정이 갑질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어요. 나의 속도가 아닌 진행자들의 속도에 맞게, 그분들의 요구가 있을 때 내 역량이 되는 한 친절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것은 저의 기우였어요. 오히려 그분들은 훨씬 친절하게 저를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부족함이 있기에 서로 보완해가며 ‘잘못해도 괜찮아!’ 라는 마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가는 동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관계회복지원단 스스로 역량강화 연수(연습모임)를 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불평 없이 도움을 주고 있는 관계회복지원단들을 생각하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고, 내년이 더 기대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질문들은 ‘어떻게 지원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각자의 기대와 필요의 차이가 있을 텐데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공무원으로서 고민되는 절차에 대한 고민들을 어디까지 지원단과 공유해야 할까? 부담으로 느끼지는 않을까?’ 등으로 생각에 생각은 꼬리를 뭅니다.


4. 관계회복지원 과정과 결과에서 감동이 전해질 때 벌새는 흐뭇해 할 것입니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는 따라온 다고 믿습니다. 물론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결과에 너무 아쉬워해서도 안 되겠지요. 너무 안전만 생각하면 관계회복은 어렵습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진행자들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제 역할이 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질문은 ‘관계회복지원 절차 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무엇인가?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주무관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등으로 안전성에 대한 고민이 커져갑니다. 하지만 오히려 관계회복지원단들의 순수한 벌새의 실천을 보면서, 다시 정신차리고 일어설 에너지를 얻습니다.


5. 한 번의 관계회복지원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관계회복지원 이후에도 소문 등으로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지요. 2024년에는 위기학급 평화로운 학급세우기를 위한 지원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만난 질문들은 ‘일을 늘리기만 하면 나와 지원단은 버틸 수 있을까? 혹시 위험성은 없을까? 바쁜 일정인 지원단들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등으로 현실적인 한계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워드 제어 선생님은 회복적 정의를 존중과 겸손이라고 하신 것 같아요. 백퍼 동의합니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존엄성이 있지요. 저도 존중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구요. 그래서 저는 매 순간 성찰을 합니다. ‘또 내 의를 세우려하는구나’ 한번 웃고 다시 존중의 지팡이를 잡습니다. 겸손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판단하고 가르치려는 이놈의 교만이라는 놈이 항상 앞장서려하니까요. 그때도 금방 성찰하고 그 교만이라는 놈을 붙들어두고 겸손이라는 친구를 불러봅니다.


 저를 부끄럽게 했던 벌새는 ‘너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그 방향성에 회복적 정의 나침반을 맞추고, 잘 안 되는 존중을 실천하며, 제 책임을 스스로 져 보겠다고 다잡아봅니다. 


 나침반의 방향만 보고 가려구요. 뛰어갈 때도 있겠지만 걸어가야 할 때도 있겠지요. 어쩌면 한참동안 멈춰야할 수도 있어요. 아니, 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쌓아둔 탑이 모두 무너지고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남겨진 향기는 남아 있지 않을까요. (벌새의 생각)





1) 황태진(2016), “형사사법에서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2) Howard Zehr(2015), The Big Book of Restorative Justice, Good Books,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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