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RJ 저널 장애와 회복적 정의 l 편집인의 글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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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이형우 회복적정의연구소장



이번 주제와 관련하여 김원영씨라는 분의 책(희망 대신 욕망, 김원영 저, 푸른숲)을 읽게 되었습니다. 글을 쓴 김원영씨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으며 평생을 휠체어 위에서 생활했습니다.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만을 오가며 검정고시로 초등 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한 후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으며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연극배우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원래 그는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슈퍼 장애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주연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등장'은 하고 싶다. 이른바 '슈퍼 장애인'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한 도전을 위해 ‘혼자 버스타기’도 시도하고, 온갖 모욕을 쿨하게 견디려고 노력했으며, 주눅 들지 않는 용기를 위해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는 전교생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울대 사회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 소위 ‘슈퍼 장애인’이 됩니다. 


하지만 재활할 수 없는 ‘장애’는 개인이 ‘슈퍼 장애인’이 된다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장애’를 ‘정체성’으로 인식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거리로 뛰쳐나온 장애인들은 도무지 재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들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의 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이들은 휠체어를 탄 자신의 모습이 개인의 비극과 책임이라는 시각을 부정했다. 오히려 자기 몸의 특징, 예컨대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거나 수화로 대화를 해야 하는 등의 특징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했다. 그것은 피부색이 검다거나 성 정체성이 여성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러한 정체성이 '장애'가 되는 이유는 사회구조가 그 정체성을 제대로 수용할 수 없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동권(移動權). ‘누구나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권리가 중요한 이유는 이동할 수 있어야 교육도 받을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국립국어원에 등재된 시기가 2003년 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동이 자유롭고 안전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리고 ‘이동권’이라는 단어가 무수한 이들의 오랜 투쟁과 희생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구나 단어도 생기고 법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참담합니다. 


일본에서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해 1970년대 초반 주로 활동한 ‘푸른잔디회’라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단체가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의 친목 모임이었던 ‘푸른잔디회’가 투쟁적인 정치집단으로 바뀌게 된 데에는 1970년 5월 요코하마에서 두 살 된 장애아가 어머니에게 살해당했는데 여론이 가해자인 어머니에 대한 동정론으로 확산된 사건이 기폭제가 됩니다. 이들의 목표는 장애인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관념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긍정할 수 있도록 전국의 장애인을 각성시키는 일이었고 그들의 행동강령은 이렇습니다. 


1. 우리는 우리가 뇌성마비자라는 것을 자각한다. 

2. 우리는 강렬한 자기 주장을 행한다. 

3.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4. 우리는 문제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5.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거부한다. 


이 행동강령에 대해 김원영씨는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사회와 자신을 지배해왔던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 기존의 실천, 기왕의 위선적 도덕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거부라는 점에서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부정.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에 대한 부정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조차 부정하는 순수한 부정. 이 부정에는 어떤 연극적 요소(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일종의 퍼포먼스)도 존재하지 않았다.” 


행동강령 하나하나에 사무쳐있는 그들의 절박함과 절망감이 더없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말의 공허함이 더없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누구에게는 당연하고도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일상의 권리가 누구에게는 목숨 걸고 싸워서 얻어내야만 하는 생존의 문제라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누리며 살아온 저이기에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과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했던 저의 무지와 무딘 감수성이 부끄럽습니다. 회복적 정의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했듯이 ‘장애’에 대한 우리의 패러다임도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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