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글]젠더와 RJ l 김재희 성결대학교 교수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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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RJ (Gender & Restorative Justice)


주제글2 회복적 정의와 여성

김재희 성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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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희: 형사법을 전공하면서 "책임-양형"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학위논문도 ‘양형에서 범죄피 해자에 관한 연구’였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곳이 되길 소망하면서 주로 회복적 정의를 형사 사법에 적용하는 분야와 범죄피해자의 형사사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아직도 가르칠 것보다 배울 것이 많은 학자이다.


 ‘여성과 회복적 정의’라는 주제로 기고를 의뢰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제목은 ‘젠더와 RJ’였다. 의뢰자가 사용한 ‘여성’이라는 단어가 생물학적 성을 의미했는지, 혹은 더 포괄적인 의미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형사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필자의 시야가 회복적 사법을 넘어 회복적 정의로 넓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형사사법 체계에 발을 딛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과 회복적 정의’라는 주제를 갈등 구조 안에서의 여성, 즉 ‘피해자로서의 여성’으로 한정지어 바라보게 되었다. 이에 필자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젠더 관점에서의 회복적 정의 대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왜 '성(Sex)'이 아닌 '젠더(Gender)'인가


 먼저 생물학적 성(Sex) 대신 사회적 성인 ‘젠더’를 거론하는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젠더라고 하면 단순히 성별 구분을 넘어 성평등을 추구하는 가치나 성차별, 그리고 무엇보다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구조적 폭력’이란 어떤 사회 구조나 사회 제도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나 권리를 충족하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폭력의 한형태로, 노르웨이 사회학자이자 평화학의 창시자인 요한 갈퉁이 1969년 발표한 논문,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에서 처음 언급하였다. 갈퉁은 폭력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하여 직접적 폭력 외에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 재현의 폭력으로 나누어 구조적 폭력의 예로 제도화된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등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직접적 폭력과 상호 의존적이어서 가정폭력, 성폭력, 증오 범죄, 혐오범죄, 테러리즘 등의 범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가정폭력 연구와 회복적 정의의 필요성


 필자가 RJ와 젠더를 처음 접목했던 연구 주제는 ‘가정폭력’이었다. 해당 연구는 신진학자를 위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는 연구여서 결과물(논문)을 제출하는 것이 필요했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싶은 욕심에 해당 주제와 관련하여 많은 독자를 보유한 학술지에 투고하였다. 10여 년이 자났음에도, 이 주제를 학술지에 발표했을 당시 받았던 날카로운 비판들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젠더 관련 범죄에 회복적 사법을 적용하는 것은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려는 시도나 2차 가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실제로 피해자의 선처 의사를 기계적으로 수용하여 문제(기소유예 혹은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등)가 되었던 사례들이 그런 비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지점에 주목하였다. 왜 어떤 여성들은 생사의 기로에서도 가해자의 선처를 호소할 수밖에 없는가? (예컨대 젖먹이 아이가 있어 취업이나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경우, 자녀들이 아버지를 너무 좋아하거나 엄마의 지속적인 학대 피해를 모르길 바라는 경우 등엔 가해자의 선처를 요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가정보호’나 ‘형사처벌’이라는 이분법적인 경직된 법적 대응만으로는 가정폭력의 넓은 스펙트럼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의 ‘회복적 대화모임’에서 약 80%가 가정폭력 사건이라는 사실은, 당시 필자의 주장이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성학대와 회복적 정의: 존중을 통한 변화


 또 다른 연구는 『성학대와 회복적 정의』라는 번역서 작업이었다. 성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재사회화가 가장 어려운 영역 중 하나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왜 하필 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길 원한다는 점과 가해자가 공동체로부터 자신이 존중받는 경험을 할수록 스스로 그에 합당한 람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고백이었다. 이는 회복적 정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특히 성범죄 전과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답을 구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공동체성 회복을 통한 근본적 해결


 젠더 관련 회복적 정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공동체성’이다. 구조적 폭력에 대응하려면 공동체의 변화와 인식 전환(폭력에 대한 감수성 강화 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조직문화 개선과 공동체에 의한 성희롱 대응 방안에 관한 연구’에선 앞서 소개한 구조적 폭력, 특히 젠더 문제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은 갈등 상황에서 작동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의 회복과 치유를 지지해 줄 공동체가 필수요소로 꼽힌다. 무엇보다 공동체는 당사자의 회복을 위한 대화가 진행될 수 있도록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적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공동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의 근본 원인인 구조적 폭력에 접근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해결책은 늘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일시적 방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젠더 문제를 구조적 폭력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공동체성의 회복 없는 근본적 해결이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젠더 문제에 회복적 정의의 접근법을 적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갈등의 한가운데서 피해자의 고통을 깊이 살피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로운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젠더와 회복적 정의에 대한 논의 역시 공동체의 건강한 회복을 돕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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