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사이드와 회복적 정의 l 김순애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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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사이드와 회복적 정의

경제성장 중심 사회에서 지워졌던 뭇생명들의 존재와 목소리

그들을 발견하고 외침에 귀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김순애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



김순애: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이며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 실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비자림로를 지키기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 제주기후예산 시민조사단 활동도 같이 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한다. 제주의 기후위기 대응 활동, 난개발을 막기 위한 활동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주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관광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올해 여름 제주 언론에 빈번히 등장한 뉴스중 하나는 ‘비계 삼겹살, 바가지요금 등이 불거지면서 사람들이 제주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광지에 더해 귤 생산지의 이미지가 덧붙여질 것이고,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4.3을 떠올릴 수도 있다. 


 4.3은 3만 명 정도가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다. 1946년에 체결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은 제노사이드를 ‘국민‧인종‧민족·종교 집단 전체 또는 부분을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실행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4.3 발생 70여 년이 지나서야 국가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고 2022년부터 4.3 희생자들에 대해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국가가 뒤늦게 돈으로 보상을 결정했지만 4.3은 제주에 깊은 상흔을 남겼고 제주의 시간은 일그러졌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많은 남자들이 자취를 감춘 마을에서 생존은 절대적인 목적이었지만 트라우마는 사람들 내면에 깊이 박혀 사람들의 삶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제노사이드의 현장이었던 제주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박 전 대통령은 1973년 ‘제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해 중문관광단지 등을 조성했고 제주도는 전 국민의 신혼여행지가되었다. 1991년에 관광개발을 위해 각종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제주도개발특별법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당시 20대 청년 양용찬은 “제주가 제2의 하와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삶터로서의 제주를  원한다!”라는 말을 남기며 분신하였다. 


 제주도가 관광지로 변해가는 과정은, 제주도의 땅들이 난도질당하고 파헤쳐져 수많은 생명들의 삶 터가 파괴되는, 또 다른 학살의 과정이었다. 제노사이드와는 다른 의미의 학살, 바로 생태학살, 에코 사이드의 과정들이다. 제노사이드에서 유래된 용어인 에코사이드(ecocide)는 1970년 미군이 베트남전쟁에서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다이옥신을 함유한 맹독성의 고엽제를 베트남 산간 지역과 농지에 대량 살포한 것을 고발하며 처음 사용되었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탄생한 이 개념은 점차 기후위기, 환경훼손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인적 피해를 동반하지 않은 평화 시기에 발생한 환경 파괴까지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이는 인간 중심의 제노사이드 개념을 자연으로 확대한 것으로 자연이 인간에 종속되어 인간의 이익을 위해 수단화되었던 관계를 재설정할 것을 요구한다. 


 스톱에코사이드재단(Stop Ecocide Foundation)은 2021년 다양한 국적의 국제변호사 12명으로 독립전문가 패널을 소집해 에코사이드의 개념을 “환경에 심대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간의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함을 인식하고서도 저지른 불법적이거나 고의적인 경시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정의했다. 에코사이드를 ‘제노사이드,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다루는 중대한 4대 범죄에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고, 베트남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등의 나라에서는 이미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조항을 갖추고 있다. 


 언어적 상징을 넘어 처벌이 가능한 범죄로서 기능하려면 더 엄밀한 규정과 입법이 필요하다. ‘환경에 심대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간의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함을 인식하고서도 저지른 불법적이거나 고의적인 경시에서 비롯된 행위’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따라서 논쟁적이다. 하지만 법 규정의 쟁점을 떠나 제주의 현실에 대해 에코사이드 담론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려 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생태학살이 진행되었을때 심대하고 광범위하며 장기간에 걸친 환경피해라고 볼 수 있을까? 


 2018년 8월 30년 이상 넘게 살아온 삼나무 1000 그루 정도가 2~3일 사이에 모두 베어졌다. 그 길은 전국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곳이기도 했다. 벌목의 목적은 3km의 2차선 도로인 비자림로를 4차선 도로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는 동안 총 3500여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다. 공사시행자인 제주도는 공사 전 진행한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고의로 축소하며 멸종위기종의 서식을 감췄다. 하지만 시민들의 노력으로 환경영향평가에 문제가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후 추가로 진행된 생태조사를 통해 10여 종 이상의 법정보호종이 공사 구간에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민들은 제주도가 고의로 환경영향평가를 왜곡했기에 이 공사가 무효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원고 중 9명에 대해 ‘비자림로 지역 밖에 거주하고 있어 도로구역 결정으로 인해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은 강원 양양군 남대천 양수발전소 건설 사업에 대해 통상산업부 장관을 상대로 시민들이 낸 ‘발전소건설사업승인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1998년 재판부가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이들에게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를 따른다. 당시 판결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의 법체계는 입증 가능한 재산피해나 건강피해 등에 한정된 피해만을 인정한다. 판결 직후 소송을 냈던 시민들은 “환경과 기후 문제는 손에 잡히지 않지만 명백히 존재하고 있으며 지구 생명체의 생존과 직결되어있다. 특정 당사자의 이익 문제로 협소하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며 항의 기자회견을했다. 


 매년 초봄 새별오름을 불사르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들불축제는 또 어떤가? 단 며칠 동안의 축제를 위해 축구장 약 46개 규모에 해당하는 38만㎡ 면적의 새별오름이 화염에 휩싸인다. 날씨 등의 영향으로 불이 잘붙지 않을 경우 활활 잘 타라고 석유를 뿌리기도 하며 불꽃놀이를 위해 화약이 대량 사용된다. 들불축제를 계속하길 주장하는 이들은 이 축제가 중산간 지역 목초지에 불을 놓아 묵은 풀과 해충을 없앴던 전통을 계승하는 행사라고 하지만 목초지로서의 기능이 사라진 오름 38만㎡ 규모를 인간들의 볼거리를 위해 매년 석유까지 부어가며 불태우는 행위를 과연 전통계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름에서 1년 동안 부지런히 싹을 틔워 생장했던 식물들과 오름에 깃들어 사는 다양한 생물들의 입장에서는 들불축제는 학살 행위이다. 이들의 피해는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다 점점 뜨거워지는 제주의 여름, 양식장과 양돈장에 집단폐사가 잇따르고있다. 양식장 집단폐사는 기후위기로 인한 바다온도 상승이 1차 원인이고, 양돈장 집단폐사는 돼지들을 밀집시켜 고기로 키워내는 공장식 축산이 폭염이라는 기후위기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이다. 


‘잘못은 피해를 낳고, 피해는 책임을 부른다’ 


 우리가 올 여름 맞닥뜨린 폭염과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산불,홍수,가뭄은 경제성장을 절체절명의 과제로삼으며 필요 이상의 과도한 이익을 얻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성장과 개발을 밀어붙인 결과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자연에 대한 착취를 동반하는 대량생산과 과잉 소비 사회와 한 쌍이며, 이는 극소수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반면 그 피해는 인간중심 사회에서 목소리가 배제된 자연, 그리고 인간사회에서 가장 힘이 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것을. 


 회복적 정의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경제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피해당하고 훼손된 존재 중 주목받지 못했던뭇생명들의 존재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것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참고 : 한빛나라, 황지선. ‘2022. 환경범죄와의 전쟁: 에코사이드’. 기후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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