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줍깅과 기후정의 l 오정오 영동중학교 교사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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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줍깅과 기후정의

오정오 영동중학교 교사





오정오 : 생각이 꽃피는 시기, 사춘기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과 아이들 삶과의 간극, 그리고 학교와 마을 사이의 그 거리를 어떻게 좁히면 좋을까 궁리하며 삽니다.


히말라야의 눈물

 지난해 겨울,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에 동행했습니다.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면서 일행과줍깅도 했습니다. 4,200미터 마르디히말 뷰포인트에서 들고 온 쓰레기를 모아서, 아이 얼굴을 형상화하는 정크아트(junk art) 퍼포먼스도 펼쳤습니다. 쓰레기 중에는 신라면이나 정(情) 초코파이 같은 한글 상표도 여럿 눈에 뜨였습니다. 한국산 쓰레기를 잘 보이게 중앙에 배치할 것인가, 아니면 숨길 것인가를 놓고 소소한 토론도 벌였습니다. 이번 퍼포먼스는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될 것인데 국위선양을 위해 또는 부끄러우니 숨기자는 말도 나왔고, 도리어 더 잘 보이게 해서 실상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결국 중앙에 배치하였습니다. 작품 제목은 “히말라야의 눈물(tears)”이라 지었고, 히말라야의 아름다움만큼이나 멋진 퍼포먼스가 되었습니다. 


 이번 트레킹을 통해 히말라야 쓰레기는 네팔이 아니라 외국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네팔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품은 아름다운 나라지만,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나라 중 하나입니다. 네팔은 인도와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국토의 많은 부분이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있는 산악 국가입니다. 인구의 7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업국가지만, 최근 가장 빠르게 도시화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네팔 인구의 18.3%가 카트만두와 같은 큰 도시에 거주하고, 갈수록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더 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 역시도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형편이라, 실업률은 아주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백만 명의 네팔 노동자가 인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저임금 일자리로 취업을 나가는 실정입니다. 그중 한국은 가장 가고 싶고 인기 많은 곳이라 했습니다.


 네팔에서 히말라야 관광은 핵심적인 산업입니다. 히말라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2018년 기준으로 연간 100만 명을 넘어섰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관광산업 종사자 역시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히말라야 쓰레기의 출처는 히말라야 관광산업, 즉 외국 관광객이 가져왔거나 관광객을 위해 상점에서 판 것으로 봐야 합니다. 저와 같이 부자 나라에서 관광객이 쓰레기를 가져와서 버린 것이고, 저는 그중 아주 일부를 주운 것입니다.  


 저도 한국에서 쓰레기를 많이 가져갔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도 많았고, 트레킹 중에 먹을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먹을거리도 제법 챙겨왔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네팔 현지 아이들을 자주 마주칩니다. 히말라야추운 날씨에 얇은 옷을 입고 변변찮은 신발도 없이 발가락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표정은 그렇게 순수하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그리고 살짝 짠한 마음이 들어서 사탕 같은 것을 자주 건네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받아먹고 뒤돌아서면 바로 쓰레기를 버립니다. 애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여행을 돕는 가이드나 짐을 나르는 포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등반하면서 주운 쓰레기를 모아서 캠프 숙소인 롯지에 가져가면, 다음날 뒤 편에서 태우는 장면도 보게 됩니다. 카트만두나 포카라 등 네팔 대표 도시의 하천을 보면 흐르는 물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쌓여 있습니다. 당장 먹고사니즘이 팍팍한데, 쓰레기 처리가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한국처럼 쓰레기를 모아서 분리 배출하고 재활용될 여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분리 수거율은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2위)라 합니다. 대단하죠. 그런데 분리수거 중 재활용되는 비중은 실제로는 14%에 불과합니다. 결국 우리 나라든 네팔이든 쓰레기를 열심히 줍는 것보다는 쓰레기가 안 만들어지게 하는 게 더 현명해보였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쓰레기는 소비에서 생깁니다. 쓰레기가 안 나오는, 또는 최소화하는 소비를 일컬어 프리사이클링(Precycling)이라 합니다. 재활용 이전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합니다. 소비성 여행에서 벗어나 쓰레기 없는 여행(제로웨이스트)을 하거나, 자신의 가치나 신념에 따라 계획하고 떠나는 여행(미닝아웃)을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불편한 여행은 불편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불편해져야 하는 이유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기후정의와 쓰레기 정의

 네팔은 기후위기 취약국가이기도 합니다. 히말라야 고지대에서는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기, 파리, 메뚜기떼가 보이고 뱀도 출몰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 트레킹에 안전을 위해 아이젠을 챙겨서 갔으나 한 번도쓰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겨울인데도 히말라야에 눈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편안하고안전했지만, 히말라야 고지대 초원의 풀들과 작은 생명들은 힘든 시기를 보냈을 듯합니다. 남극, 북극 다음으로 빙하가 많은 곳이 히말라야입니다. 그런데 히말라야 눈은 빠르게 녹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빙하가 급격히 녹아내리면서 그 아래로 홍수와 같은 기후 재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란 말이 자주 들립니다. 온실가스 등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흔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부자 나라와 부자들에게 있습니다. 이들이 그동안 부를 쌓고 사치를 누리느라 온실가스를 마구 쏟아 낸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재난과 고통은 선진국이 아닌 가난한 나라에 먼저 도착합니다. 정의를 말한다면, 먼저 온실가스를 그간 배출한 나라와 기업, 부자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어쩌면 기후위기의진짜 주범은 국제적·사회적 불평등이며, 우리의 삶의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기후정의처럼 쓰레기 정의란 말이 있다면, 쓰레기를 만들어 이익을 본 사람(나라)이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히말라야에서 본 신라면 봉지와 오리온 초코파이 껍질은 그것을 먹고 버린 사람과 함께, 쓰레기를 만들고 팔아서 이익을 본 사람들이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알아야 하고 한국에서 네팔까지 쓰레기가 오는 이유도 살펴야 합니다. 히말라야의 눈물을 닦는 것이,쓰레기를 줍는 개인적 실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텀블러를 들고 가고 줍깅도하는 것이 환경보호를 위한 중요한 실천입니다만, 그 자체만 강조하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더욱 중요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놓치거나 감추는 잘못을 뜻하지 않게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고지대에서 내려오면서 일행에게 들은 이야기는 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네팔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나눠주는 것을 최근 네팔 정부에서는 불허하고 있답니다. 저야 만나는 아이들이 예뻐서 무심코 건네는 사탕이지만, 그것이 성장기 아이들의 이를 썩게하고, 치과 등 보건의료시설이 열악한 네팔에서는 충치를 치료할 길이 없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들 치아가 여기저기 썩어가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선의로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1) 한국어 '줍(다)'과 영어 '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면서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행위. '플로깅'이의 한국 표현. MZ미디어트랜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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