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가 필요한 이유 l 서지유 부산시교육청 학교폭력회복지원단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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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가 필요한 이유

서지유 / 부산시교육청 학교폭력회복지원단



서지유 : 부산에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학교 공동체를 위하여 관계회복프로그램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서로 배우고 지지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는 일을 할 수 있어 자랑스럽고, 그 일에 보람을 느끼며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관계회복프로그램 조정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떠오른다. 고등학생의 또래 관계 갈등으로 신청이 들어왔고, 모임 순서에 맞춰 진행을 시작했다. 대화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사전에 학부모들과 통화하고 일정을 조율 하는 것부터 본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든 과정에서 줄곧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가해 관련 학생과 학부모들이 피해 관련 학생이 학교폭력 신고를 함으로써 오히려 피해를 받았다면서, 사안의 부당함과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태도였다. 물론 피해 관련 학생에 대한 미안함과 사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진정으로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그것에 책임지려는 마음보다 자신들의 고통에 더 많은 무게를 싣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조정위원으로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피해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피해가 발생되었는지 함께 들어보면서, 회복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노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조정위원들의 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서로의 입장을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왔지만, 합의문 작성 시에도 가해 관련 학생측의 자신의 자발적 책임 부분에서 내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태도를 보면서 회의감을 느꼈었다.


초, 중학교보다 고등학교는 입시가 당면한 과제이고,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관련 내용이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져서 대학 입시나 사회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피해 정도를 최소화하고, 사안을 빠르게 그리고 경미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안 된다는 의지가 진하게 느껴졌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피해자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얼마나 힘들지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고 지켜보면서 가해관련 학생은 피해자의 고통에 마음이 닿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조정위원으로서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자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진정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하며, 당사자들의 관계가 회복되고, 더 나아가 교실, 학교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에 익숙하고, 학교가 사법화되고 있는 현장에서 관계회복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을 대화할 수 있도록 돕고, 필요시 교육을 하면서 회복을 돕는다는 것이 현실적 한계가 있음을 느꼈던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스며들어가고 있지만, 학교와 교육 현장에서는 그 필요성이 다른 어떤 곳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 공동체가 그래도 서로를 보듬어주고, 내가 언제 어떤 피해를 입게 되더라도 진심으로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고, 나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힘써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구조적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좀 더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학교에서부터 경험적으로 자연스럽게 배우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배우면 학교에서 나아가 사회에서도 그런 의식과 구조의 필요에 대한 공감대가 훨씬 쉽게 형성되고, 장벽이나 걸림돌의 힘이 약화되어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될 것이다.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 구조 안에서 나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면 처벌받는다는 공식으로, 처벌에 대한 부당함, 나도 피해자라는 인식, 법률적 상황에 매몰되는 현상으로 피해자가 소외되고, 진정한 회복의 기회조차 없는 그런 모순적이고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힘 빠지고 슬프게 만들 수 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배웠던 것 같다. 우리 안의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널리 퍼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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