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가정에 대한 제도적 관점에서의 고찰
황태진 /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RJ 저널 2021년호에 실렸습니다.
Ⅰ. 들어가며
회복적 사법은 응보적 사법의 한계로 등장하였다. 응보적 사법은 범죄에 대응하는 책임으로 처벌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범죄의 원인은 생물학적 원인, 심리학적 원인, 사회학적 원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최근 가장 관심 있게 다루어지는 분야는 사회학적 원인이다. 사회학적 원인은 다시 거시적 사회구조원인과 미시적 사회과정원인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이 범죄의 원인이라고 하며, 후자는 인간이 태어나서 경험하는 사회화 과정에서 범죄를 학습하거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과정원인 중에서 가정환경이 범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가정폭력을 경험하거나 기능적 결손가정에서 받은 억압은 자살이나 범죄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환경이 정상적인 사회 적응에 장애가 된다고 본다면 대책은 가정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가정환경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가정문제 불개입주의”에 입각하여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따라서 현행법상의 제도들이 가정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를 검토하여야 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회복적 가정의 제도화를 위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Ⅱ. 현행법상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대응과 한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특법)의 목적은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호ㆍ지원함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진행 중인 가정폭력범죄에 대하여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즉시 현장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응급조치에는 ① 폭력행위의 제지, 가정폭력행위자ㆍ피해자의 분리, ② 「형사소송법」 제212조에 따른 현행범인의 체포 등 범죄수사, ③ 피해자를 가정폭력 관련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 인도(피해자가 동의한 경우만 해당한다), ④ 긴급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를 의료기관으로 인도, ⑤ 폭력행위 재발 시 임시조치를 신청할 수 있음을 통보, ⑥ 제55조의2에 따른 피해자보호명령 또는 신변안전조치를 청구할 수 있음을 고지하는 것 등이 있다.
가정법원 판사는 가정보호사건의 원활한 조사ㆍ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가정폭력행위자에게 할 수 있는 임시조치로 ①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또는 점유하는 방실(房室)로부터의 퇴거 등 격리, ②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이나 그 주거ㆍ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③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에 대한 「전기통신기본법」의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④ 의료기관이나 그 밖의 요양소에의 위탁, ⑤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 ⑥ 상담소 등에의 상담위탁 등이 있다.
현행 가정폭력정책들은 ‘피해자 보호와 안전’에 치중되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와 엄벌화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현행 가특법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가족의 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지향하는 가정의 원상회복 목적과는 거리가 있으며, 피해자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길 희망하고, 보호시설에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무력한 대응이 될 수밖에 없다.
가특법의 입법목표가 가정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회복적 사법의 목표와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신설(시행: 2021년 1월 21일)된 임시조치인 상담소 등에의 상담위탁은 적극적 대응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상담만으로는 관계회복과 환경개선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Ⅲ. 회복적 정의에 따른 회복적 가정의 필요성과 제도화를 위한 방안
1. 예방적 접근
비대면 시대에 가정폭력이 세계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는 기사들을 접하게 된다. 소통의 부족과 소통력의 결여는 가족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회복적 가정의 실현을 위한 단계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회복적 정의가 가장 먼저 실천되어야 할 영역은 가정일 것이다.
가족은 일상의 시간을 가장 많이 공유하므로 가족 간에도 존중의 약속이 중요하다. 존중의 약속은 무엇을 지켜야 한다고 강제하는 규율이 아니라, 개인간의 경계와 전체 공동체의 경계를 스스로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결과이다. 가족간의 공동체성을 높이기 위한 공동체 서클 프로그램들이 더욱 많이 제시되고 경험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예방적 차원에서 가족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일반화되도록 제도화될 필요성이 있다.
2. 사안처리적 접근
점차 복잡해지고 사법화되고 있는 가정폭력의 문제를 회복적 접근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식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종래의 수강명령이나 사회봉사명령처럼 임시방편이 아닌 관계회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정의 문제를 각 당사자들의 영향(피해)과 필요를 중심으로 자발적 책임에 입각한 약속 이행문을 도입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신설된 임시조치인 상담소 등에의 상담위탁에 신뢰서클이나 문제해결서클 프로그램 등을 결합하여 가족관계의 회복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단시간에 가정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가정의 회복을 위한 제도 자체가 없다는 것은 해결의 실마리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회복의 창구를 만드는 것이 회복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가족간 갈등이 해결될 것인지는 당사자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이 일반화된다면 가족관계의 회복은 급속히 증가할 것이다.
회복적 가정의 실현 | | 국가 | ⇨ | ◾ 가정폭력을 예방 ◾ 피해자를 보호ㆍ지원 | ⇨ | ◾ 객관적인 평가와 모니터링 ◾ 연구 및 감독 활동 지원 |
| | | | | |
| 공동체 | ⇨ | ◾ 공동체 가치의 회복 ◾ 가정의 회복 | ⇨ | ◾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 ◾ ‘올바른’ 가족관계의 회복 |
⇨ | | | | | |
| 피해자 | ⇨ | ◾ 신체적·정신적 피해 ◾ 분노와 공포 치유 | ⇨ | ◾ 적절한 치유 ◾ 가치체계를 재확인 |
| | | | | |
| 가해자 | ⇨ | ◾ 자기통제의 회복 ◾ 수치심 극복 | ⇨ | ◾ 자신의 책임감과 대면하기 ◾ 자존감 되찾기 |
<그림 1-1> 회복적 가정의 제도화 방안
Ⅳ. 정리하며
가정폭력이 가지는 특징을 고려할 때, 형사사법기관을 통한 처벌과 억제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가해자의 책임 인정 그리고 공동체의 지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핵심으로 하는 회복적 정의 모델의 적용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복적 가정에 대한 제도적 관점에서의 고찰
황태진 /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RJ 저널 2021년호에 실렸습니다.
Ⅰ. 들어가며
회복적 사법은 응보적 사법의 한계로 등장하였다. 응보적 사법은 범죄에 대응하는 책임으로 처벌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범죄의 원인은 생물학적 원인, 심리학적 원인, 사회학적 원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최근 가장 관심 있게 다루어지는 분야는 사회학적 원인이다. 사회학적 원인은 다시 거시적 사회구조원인과 미시적 사회과정원인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이 범죄의 원인이라고 하며, 후자는 인간이 태어나서 경험하는 사회화 과정에서 범죄를 학습하거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과정원인 중에서 가정환경이 범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가정폭력을 경험하거나 기능적 결손가정에서 받은 억압은 자살이나 범죄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환경이 정상적인 사회 적응에 장애가 된다고 본다면 대책은 가정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가정환경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가정문제 불개입주의”에 입각하여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따라서 현행법상의 제도들이 가정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를 검토하여야 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회복적 가정의 제도화를 위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Ⅱ. 현행법상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대응과 한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특법)의 목적은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호ㆍ지원함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진행 중인 가정폭력범죄에 대하여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즉시 현장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응급조치에는 ① 폭력행위의 제지, 가정폭력행위자ㆍ피해자의 분리, ② 「형사소송법」 제212조에 따른 현행범인의 체포 등 범죄수사, ③ 피해자를 가정폭력 관련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 인도(피해자가 동의한 경우만 해당한다), ④ 긴급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를 의료기관으로 인도, ⑤ 폭력행위 재발 시 임시조치를 신청할 수 있음을 통보, ⑥ 제55조의2에 따른 피해자보호명령 또는 신변안전조치를 청구할 수 있음을 고지하는 것 등이 있다.
가정법원 판사는 가정보호사건의 원활한 조사ㆍ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가정폭력행위자에게 할 수 있는 임시조치로 ①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또는 점유하는 방실(房室)로부터의 퇴거 등 격리, ②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이나 그 주거ㆍ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③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에 대한 「전기통신기본법」의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④ 의료기관이나 그 밖의 요양소에의 위탁, ⑤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 ⑥ 상담소 등에의 상담위탁 등이 있다.
현행 가정폭력정책들은 ‘피해자 보호와 안전’에 치중되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와 엄벌화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현행 가특법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가족의 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지향하는 가정의 원상회복 목적과는 거리가 있으며, 피해자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길 희망하고, 보호시설에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무력한 대응이 될 수밖에 없다.
가특법의 입법목표가 가정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회복적 사법의 목표와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신설(시행: 2021년 1월 21일)된 임시조치인 상담소 등에의 상담위탁은 적극적 대응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상담만으로는 관계회복과 환경개선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Ⅲ. 회복적 정의에 따른 회복적 가정의 필요성과 제도화를 위한 방안
1. 예방적 접근
비대면 시대에 가정폭력이 세계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는 기사들을 접하게 된다. 소통의 부족과 소통력의 결여는 가족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회복적 가정의 실현을 위한 단계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회복적 정의가 가장 먼저 실천되어야 할 영역은 가정일 것이다.
가족은 일상의 시간을 가장 많이 공유하므로 가족 간에도 존중의 약속이 중요하다. 존중의 약속은 무엇을 지켜야 한다고 강제하는 규율이 아니라, 개인간의 경계와 전체 공동체의 경계를 스스로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결과이다. 가족간의 공동체성을 높이기 위한 공동체 서클 프로그램들이 더욱 많이 제시되고 경험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예방적 차원에서 가족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일반화되도록 제도화될 필요성이 있다.
2. 사안처리적 접근
점차 복잡해지고 사법화되고 있는 가정폭력의 문제를 회복적 접근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식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종래의 수강명령이나 사회봉사명령처럼 임시방편이 아닌 관계회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정의 문제를 각 당사자들의 영향(피해)과 필요를 중심으로 자발적 책임에 입각한 약속 이행문을 도입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신설된 임시조치인 상담소 등에의 상담위탁에 신뢰서클이나 문제해결서클 프로그램 등을 결합하여 가족관계의 회복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단시간에 가정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가정의 회복을 위한 제도 자체가 없다는 것은 해결의 실마리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회복의 창구를 만드는 것이 회복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가족간 갈등이 해결될 것인지는 당사자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이 일반화된다면 가족관계의 회복은 급속히 증가할 것이다.
회복적 가정의 실현
국가
⇨
◾ 가정폭력을 예방
◾ 피해자를 보호ㆍ지원
⇨
◾ 객관적인 평가와 모니터링
◾ 연구 및 감독 활동 지원
공동체
⇨
◾ 공동체 가치의 회복
◾ 가정의 회복
⇨
◾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
◾ ‘올바른’ 가족관계의 회복
⇨
피해자
⇨
◾ 신체적·정신적 피해
◾ 분노와 공포 치유
⇨
◾ 적절한 치유
◾ 가치체계를 재확인
가해자
⇨
◾ 자기통제의 회복
◾ 수치심 극복
⇨
◾ 자신의 책임감과 대면하기
◾ 자존감 되찾기
<그림 1-1> 회복적 가정의 제도화 방안
Ⅳ. 정리하며
가정폭력이 가지는 특징을 고려할 때, 형사사법기관을 통한 처벌과 억제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가해자의 책임 인정 그리고 공동체의 지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핵심으로 하는 회복적 정의 모델의 적용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