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글]회복적 정의를 만난 아파트 l 이상우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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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에 대한 질문들  l  주제글3  l  공동체


회복적 정의를 만난 아파트

이상우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


*올해로 16년차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네에서는 '모루'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고 

환경교육, 민주시민교육, 사회적경제교육 등을 부업으로 하고 있따.




내가 만난 회복적 정의 

 

 마을에서 활동가로서 삶을 시작한 것은 2009년 무렵이었습니다. 이재영 원장님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구글 캘린더를 검색해보니 원장님은 2011년 1월에 제가 활동하고 있던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서 특강을 하셨네요. 그 동네 첫 강의였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원장님을 비롯해 여러 차례 많은 선생님이 오셨으니까요. 


 광수중학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 푸른숲발도르프학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회복적 정의에 대한 공부를 하기시작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청소년들과 ‘평화의 식탁’을 운영하고, 청소년 축제와 청소년 영화제를 몇 년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할 수 있던 것은 ‘회복적 정의’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활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안에서 큰 갈등이 일어났을 때에는 회복적 질문과 신뢰서클 등을 통해 구성원들이 어렵고 힘들게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갖지 못한 경험도 있습니다.


 2017년부터 활동무대를 경기도 남양주시로 옮겨왔습니다. 국내 최초로 만들어지는 협동조합 아파트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합류했는데, 여기서 주민들의 갈등관리 솔루션이 필요했고, 적극적으로 회복적 정의를 추천했습니다. 비폭력대화, 퍼실리테이션, 심리상담 등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 23명을 모아, 협회와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사회적 협동조합 안에 ‘갈등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화와 소통 훈련을 더했습니다. 수많은 조합원 교육과 모임, 회의 등을 서클로 진행하고 회복적 질문을 통해 공동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주민이 공동체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또 다른 각자의 모임에서 동그랗게 앉아서 대화를 하고 일상을 나누는 모습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 시국에 491세대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웰컴파티를 진행했습니다. 새롭게 이사 온 이웃을 서로 맞이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꿈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구조적 한계 안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주민간 불화는 없을 수 없었고, 갈등조정위원회는 그 불편함을 전달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았습니다. 오해가 있을 때는 오해를 풀었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힘을 보탰습니다. 옆집, 아랫집, 윗집 사정이 이해되기 시작했을 때 불편함은 인내의 도구가 되었고 이해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물론 더 조심하고 주의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상황을 직면하고 선물을 나누며 서로에게 이해를 구하는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주거 공동체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입주 첫 해에 30여 건에 달했던 주민간 갈등은 연간 십여 건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서로 더 많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굳이 조정이 필요치 않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 교육을 받을 때 일상으로 맺어진 관계가 갈등을 최소화한다는 것을 활동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반상회를 조직하고, ‘존중의 약속’을 제정했습니다. 갈등조정위원회에서 초안을 만들고, 크게 확대 출력해서 엘리베이터에 부착하고 추가 의견을 받았습니다. 엘리베이터 라인별로 반상회를 개최해서 최종안을 확정하고, 협동조합의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에서 ‘존중의 약속’을 인준했습니다. 층간소음, 흡연, 반려견, 쓰레기 분리배출, 주차, 공용시설 이용, 직원과 택배기사 존중 등 7가지 주제로 구성된 존중의 약속은 예쁜 포스터로도 만들어져서 아파트 곳곳에 부착되었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동네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갈등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서 공동체 방식으로 해결해갈수 있다는 준비를 차근차근 해 온 덕에 회복적 정의는 우리 마을 운영 원리이자 패러다임으로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가 가르쳐 준 질문들


 마을공동체 활동가로 살면서 끊임없이 저에게 주어진 질문은 ‘공동체란 무엇인가?’입니다. 누군가 그렇게 알려주셨습니다. “공동체는 자기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신뢰서클을 시작할 때 여는 질문은 나의 컨디션이나 하루 일정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등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가벼운 것들이 많았지만 사실 그것들은 그렇게 가볍다라고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질문을 받는 순간부터 그렇게 동그랗게 앉은 이들과 분명 하나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서클의 진행 역할을 맡을 때에도 늘 질문을 던지고 진행자인 나로부터 대화의 내용이 채워지는 것을 배웠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도 있었지만, 나의 대답이 분명 어떤 작동을 통해 다른 이들의 답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반은 우스갯소리지만 신뢰서클이 ‘신뢰’서클인 이유는 그 모임이 끝난 후에 참가자들끼리 일종의 ‘신뢰’가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를 열고 ‘우리’를 맞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동체는 ‘어떻게 지속되는가?’ 이것이 두 번째로 저를 붙잡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가져야만 했기에 억지로라도 ‘환대, 평화, 재미’라는 키워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환대란 또 무엇일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환대해야 하는 것일까? 일단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야 했습니다. 내가 모임의 주최자가 아니고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 어색할까 하는 지점을 찾아서 풀어내야 했습니다. 서클이 만들어지고 공동체의 순간이 이뤄졌을 때에는 참여자들 속에서 그들의 욕구를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눈빛과 대화와 움직임 속에서 그 욕구를 이끌어내고 연결시켰을 때 공동체의 순간은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평화란 또 무엇일까요? 둥글게 둘러앉아 서로의 시선을 확인하는 것. 이것 자체가 평화였습니다. 향기 가득한 예쁜 꽃다발이 센터피스로 자리잡으면 더할 나위 없었지요. 목소리 큰 사람, 자꾸 이야기하는 사람, 말 못하는 사람... 누구라도 눈 맞추며 조용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안전이었고 평화였습니다.


 재미란 또 무엇일까요? 호기심으로 참여했건 필요가 있어서 참여했건 억지로 끌려나왔건 그 공동체의 순간이 재미로 가득하길 바랬습니다. 존재에 대한 존엄함이 가득한 재미라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함께 웃으며 공동체놀이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내가 존중받았을 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삶의 순간은 없었습니다.


 몇 년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온 관계의 공동체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서로 바라는 것이 달랐고, 그로 인해 내 편과 네 편이 맞서고, 미래에 대한 꿈조차 분명해지면서 조각조각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한참을 지나온 지금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지키고자할 때 유의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공동체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절대불변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불편하고 재미지고... 반복되는 우리 관계는 그 편안함 속에 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고 관계 안에서 완성되는 영원한 반복. 이것을 연결해주는 것이 ‘회복적 질문’이었습니다.


  • 공동체란 무엇인가?
  •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무엇을 기대하는(기대했는)가?
  •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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