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바다를 항해한다
송강호 / 개척자들 제주팀장
요나스 웨일호 선장
제1차 평화의 항해: 100일간의 제주-오키나와-타이완 5000Km 요트항해
올해 4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제주도 강정마을을 출발해서 큐슈와 오키나와를 돌아 타이완을 거쳐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는 5000km의 항해를 했다. 6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107일간의 항해였다. 우리가 항해한 바다는 지도에 동지나해로 표기되어 있다. 이름처럼 이 바다는 중국이 지배하려 드는 바다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원치 않고 일본과 우리나라도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에 맞서고 있다.
이 바다는 보이지 않는 전선으로 갈라져 있고 팽팽한 긴장감이 드리워져 있다. 이 바다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여러 섬들은 이미 전쟁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거나 그렇게 변모해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변방에 놓인 타이완은 전쟁터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섬들의 주민들은 본국이라고 주장하는 중국과 일본과 한국에 의해 지배당하고 수탈당하고 착취당하고 학살당하고 배신당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고도 애국과 충성을 강요당하고 있다.
나는 제주도에 지어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운동에 13년동안 참여하면서 군사기지의 문제는 단지 제주도뿐 아니라 오키나와와 그 부속도서들도 겪고 있는 동아시아의 섬들 모두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많은 섬의 주민들이 자기의 섬을 파괴하며 점령하고 있는 이 군대들에 맞서 섬과 바다를 평화롭게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국가들은 이웃나라로부터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는 명분과 이유를 들어 무기와 군대를 배치하고 있지만 우리 평화운동가들은 군대와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정부에 맞서고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전선이 세워져 있는 셈이다. 어느 전선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제주나 오키나와, 타이완에서 전쟁과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만날 때 동족을 만난 것 같은 친근감과 일체감을 느낀다. 우리를 규정하는 대한민국이나 일본, 타이완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그저 영남이냐, 호남이냐를 따지는 정도의 문화적 정체성 이상을 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섬들에서 평화의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국가를 넘어서는 무언가 다른 사회 구성체에 속한 것 같아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런 개념을 알고 있고 또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 현실 국가를 초월하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국적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아버지를 모시고 살지만 하늘에도 우리의 아버지가 계시듯이 이 땅의 나라와 하늘의 나라를 동시에 품고 살아갈 수 있다. 굳이 우리의 국적을 포기하고 독립이나 해방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현 국적들은 그대로 놔둔 채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이 국가를 넘어서는 평화의 섬들의 연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가주의라는 픽션에 의해 서로 연결된 푸른 대륙인 바다는 갈기갈기 찢겨진다. 그리고 그 바다를 둘러싼 섬들은 변방이 되고 섬들의 주민들은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채 국가 안보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버린다. 평화의 섬들의 연대는 이런 차별과 불공정을 혁파하려는 섬 주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다. 바다는 나뉠 수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바다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그 바다의 주체들이요, 우리 인간들에 의해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할 존재들 이다. 또한 이 바다를 둘러싼 섬들이야말로 그 섬들 각자가 세상의 중심들로 존중받아야 할 공동체들이다. 섬들의 주권과 평화권을 지키기 위해서 섬들은 연대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렇게 섬들을 잇고 그 섬들의 평화운동가들과 연대하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다.
여인의 눈물과 어리석은 영웅들
우리나라와 일본과 중국은 이 동지나해를 국경이란 임의의 선으로 갈라놓고 무시무시한 미사일과 함포를 장착한 군함들을 띄워서 이 가공의 분단선을 지키고 있다. 중국 쪽의 바다는 수심이 얕은 데다 수많은 어망들이 과밀하게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쌍끌이와 같이 무자비한 방식으로 어획을 하는 바람에 죽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공허한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바다를 갈라놓고 자기가 지켜야 할 바다를 죽이고 있다.
나는 이번에 이 바다를 항해하며 국가주의의 폐해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항해 도중 미야코지마 섬에서 일본 자위대의 미사일 기지를 반대하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네 자녀의 엄마인데 자기 자녀들에게는 절대로 전쟁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군사기지 앞에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 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여인의 눈물이 이 바다에 불원간 닥칠 전쟁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흘릴 핏물을 예고하는 것처럼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며 군사기지들의 건설에 항의하는 많은 분을 항해 도중에 만났다. 그 분들은 모두 자신의 양심과 신념 때문에 혹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국가라는 무소불위의 거대한 괴물과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순진한 바보들이었다. 나는 이 바보들이 좋고 사랑스럽다. 우리는 이 어리석은 영웅들에게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응원했고, 이들은 바람을 타고 험한 바다를 건너온 우리들을 따뜻하게 환대 해주었다.
공평해(共平海)
나는 동지나해가 중국 중심의 제국주의적인 이름으로 들려서 기분이 나쁘다. 이 바다를 동아시아의 이웃국가들 간의 평화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뭇 생명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전쟁도 군대도 없는 공존과 평화의 바다로 만들자는 뜻으로 공평해(共平海)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나는 공평해를 항해하면서 이 바다와 이 바다를 둘러싼 이 섬들 모두를 비핵 비무장 지대로 만들어 이 지역에서는 핵무기를 포함한 어떤 무기도 반입할 수 없는 진정한 평화지대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동지나해를 공평해라고 고쳐 표기한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번에 이 바다를 항해하였던 것처럼 다시금 젊은이들을 모아서 2차, 3차의 항해를 하려고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과 타이완의 청년들도 이 항해에 동참하도록 부르려 한다. 공평해는 우리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간 홍해와도 같다. 그 바다를 건너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인 셈이다. 우리에게 그 약속의 땅이란 바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전쟁도 무기도 군대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다.
항해자는 이 바다를 지나며 평화의 세례를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공평해의 항해는 군사로 나라를 지킬 것을 헌법에 명시한 자기 나라의 정부들과 외롭게 싸우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 평화의 사람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특별한 항해다. 우리는 공평해 항해를 한 우리 요트의 이름을 ‘요나스 웨일’이라고 명명했다. 하나님이 예언자 요나를 불러 그가 혐오하고 증오했던 이웃나라로 가서 재앙을 피하도록 예언하라고 했을 때 이를 거역하려던 요나를 삼켜 결국 운명의 장소로 이끌어준 큰 물고기를 뜻하는 이름이다. 요나스 웨일은 전쟁이라는 파멸적인 재앙을 피하도록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들을 태운 배다.
우리는 앞으로도 요나스 웨일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을 태우고 동아시아의 아름다운 중정(中庭)과도 같은 공평해를 항해하면서 그 꿈을 실현하며 살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울 거다. 나는 젊은 청년들이 이 힘들고 위험한 항해를 자원해서 참여해 주는 것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느낀다. 이번에 항해를 하면서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다섯 번의 태풍처럼 앞으로도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난관들은 성난 파도들처럼 닥쳐올 거다. 그럴지라도 우리들은 앞으로 계속 전쟁과 죽음의 붉은 바다를 모두가 공생하는 푸른 바다로 만들기 위해 평화의 항해를 계속할 거다.
평화의 바다를 항해한다
송강호 / 개척자들 제주팀장
요나스 웨일호 선장
제1차 평화의 항해: 100일간의 제주-오키나와-타이완 5000Km 요트항해
올해 4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제주도 강정마을을 출발해서 큐슈와 오키나와를 돌아 타이완을 거쳐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는 5000km의 항해를 했다. 6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107일간의 항해였다. 우리가 항해한 바다는 지도에 동지나해로 표기되어 있다. 이름처럼 이 바다는 중국이 지배하려 드는 바다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원치 않고 일본과 우리나라도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에 맞서고 있다.
이 바다는 보이지 않는 전선으로 갈라져 있고 팽팽한 긴장감이 드리워져 있다. 이 바다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여러 섬들은 이미 전쟁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거나 그렇게 변모해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변방에 놓인 타이완은 전쟁터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섬들의 주민들은 본국이라고 주장하는 중국과 일본과 한국에 의해 지배당하고 수탈당하고 착취당하고 학살당하고 배신당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고도 애국과 충성을 강요당하고 있다.
나는 제주도에 지어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운동에 13년동안 참여하면서 군사기지의 문제는 단지 제주도뿐 아니라 오키나와와 그 부속도서들도 겪고 있는 동아시아의 섬들 모두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많은 섬의 주민들이 자기의 섬을 파괴하며 점령하고 있는 이 군대들에 맞서 섬과 바다를 평화롭게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국가들은 이웃나라로부터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는 명분과 이유를 들어 무기와 군대를 배치하고 있지만 우리 평화운동가들은 군대와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정부에 맞서고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전선이 세워져 있는 셈이다. 어느 전선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제주나 오키나와, 타이완에서 전쟁과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만날 때 동족을 만난 것 같은 친근감과 일체감을 느낀다. 우리를 규정하는 대한민국이나 일본, 타이완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그저 영남이냐, 호남이냐를 따지는 정도의 문화적 정체성 이상을 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섬들에서 평화의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국가를 넘어서는 무언가 다른 사회 구성체에 속한 것 같아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런 개념을 알고 있고 또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 현실 국가를 초월하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국적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아버지를 모시고 살지만 하늘에도 우리의 아버지가 계시듯이 이 땅의 나라와 하늘의 나라를 동시에 품고 살아갈 수 있다. 굳이 우리의 국적을 포기하고 독립이나 해방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현 국적들은 그대로 놔둔 채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이 국가를 넘어서는 평화의 섬들의 연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가주의라는 픽션에 의해 서로 연결된 푸른 대륙인 바다는 갈기갈기 찢겨진다. 그리고 그 바다를 둘러싼 섬들은 변방이 되고 섬들의 주민들은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채 국가 안보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버린다. 평화의 섬들의 연대는 이런 차별과 불공정을 혁파하려는 섬 주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다. 바다는 나뉠 수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바다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그 바다의 주체들이요, 우리 인간들에 의해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할 존재들 이다. 또한 이 바다를 둘러싼 섬들이야말로 그 섬들 각자가 세상의 중심들로 존중받아야 할 공동체들이다. 섬들의 주권과 평화권을 지키기 위해서 섬들은 연대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렇게 섬들을 잇고 그 섬들의 평화운동가들과 연대하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다.
여인의 눈물과 어리석은 영웅들
우리나라와 일본과 중국은 이 동지나해를 국경이란 임의의 선으로 갈라놓고 무시무시한 미사일과 함포를 장착한 군함들을 띄워서 이 가공의 분단선을 지키고 있다. 중국 쪽의 바다는 수심이 얕은 데다 수많은 어망들이 과밀하게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쌍끌이와 같이 무자비한 방식으로 어획을 하는 바람에 죽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공허한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바다를 갈라놓고 자기가 지켜야 할 바다를 죽이고 있다.
나는 이번에 이 바다를 항해하며 국가주의의 폐해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항해 도중 미야코지마 섬에서 일본 자위대의 미사일 기지를 반대하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네 자녀의 엄마인데 자기 자녀들에게는 절대로 전쟁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군사기지 앞에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 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여인의 눈물이 이 바다에 불원간 닥칠 전쟁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흘릴 핏물을 예고하는 것처럼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며 군사기지들의 건설에 항의하는 많은 분을 항해 도중에 만났다. 그 분들은 모두 자신의 양심과 신념 때문에 혹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국가라는 무소불위의 거대한 괴물과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순진한 바보들이었다. 나는 이 바보들이 좋고 사랑스럽다. 우리는 이 어리석은 영웅들에게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응원했고, 이들은 바람을 타고 험한 바다를 건너온 우리들을 따뜻하게 환대 해주었다.
공평해(共平海)
나는 동지나해가 중국 중심의 제국주의적인 이름으로 들려서 기분이 나쁘다. 이 바다를 동아시아의 이웃국가들 간의 평화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뭇 생명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전쟁도 군대도 없는 공존과 평화의 바다로 만들자는 뜻으로 공평해(共平海)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나는 공평해를 항해하면서 이 바다와 이 바다를 둘러싼 이 섬들 모두를 비핵 비무장 지대로 만들어 이 지역에서는 핵무기를 포함한 어떤 무기도 반입할 수 없는 진정한 평화지대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동지나해를 공평해라고 고쳐 표기한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번에 이 바다를 항해하였던 것처럼 다시금 젊은이들을 모아서 2차, 3차의 항해를 하려고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과 타이완의 청년들도 이 항해에 동참하도록 부르려 한다. 공평해는 우리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간 홍해와도 같다. 그 바다를 건너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인 셈이다. 우리에게 그 약속의 땅이란 바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전쟁도 무기도 군대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다.
항해자는 이 바다를 지나며 평화의 세례를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공평해의 항해는 군사로 나라를 지킬 것을 헌법에 명시한 자기 나라의 정부들과 외롭게 싸우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 평화의 사람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특별한 항해다. 우리는 공평해 항해를 한 우리 요트의 이름을 ‘요나스 웨일’이라고 명명했다. 하나님이 예언자 요나를 불러 그가 혐오하고 증오했던 이웃나라로 가서 재앙을 피하도록 예언하라고 했을 때 이를 거역하려던 요나를 삼켜 결국 운명의 장소로 이끌어준 큰 물고기를 뜻하는 이름이다. 요나스 웨일은 전쟁이라는 파멸적인 재앙을 피하도록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들을 태운 배다.
우리는 앞으로도 요나스 웨일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을 태우고 동아시아의 아름다운 중정(中庭)과도 같은 공평해를 항해하면서 그 꿈을 실현하며 살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울 거다. 나는 젊은 청년들이 이 힘들고 위험한 항해를 자원해서 참여해 주는 것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느낀다. 이번에 항해를 하면서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다섯 번의 태풍처럼 앞으로도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난관들은 성난 파도들처럼 닥쳐올 거다. 그럴지라도 우리들은 앞으로 계속 전쟁과 죽음의 붉은 바다를 모두가 공생하는 푸른 바다로 만들기 위해 평화의 항해를 계속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