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저널 12월호] 어느 피해자의 일기 <이웃갈등과 공동체> _ 황태진 (회복적경찰활동 조정위원)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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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피해자의 일기 - 이웃갈등과 공동체


황태진



나는 경력단절 후 며칠 전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다. 남편은 곧 퇴근한다고 하고, 5살인 이쁜 공주는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한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 배달이 오니 아이는 기뻐서 뛰어나갔다. 그때 아래층에서 천정을 두 번 치는 소리가 들렸다. 5분 후에 초인종이 두 번 울렸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안 나가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아래층 남자는 다짜고짜 아이가 보는 앞에서 욕을 하고 남편의 멱살을 잡고 협박을 하면서, 5시부터 시끄러워 참을 수 없다고 소리쳤다. 5시에는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황당했다. 무서워하는 아이와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 112에 신고를 했다. 조금 뒤에 경찰관이 도착하니 다행히 아래층 남자는 조용해졌다. 남편은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몇 달 전에도 아랫집 남자는 두 번 정도 올라온 적이 있다. 한 번은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을 통해 시끄럽다는 연락이 왔고, 그 뒤에 아래층 남자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때는 손님들이 와서 바닥에 깔아두었던 매트를 걷고 청소하느라 시끄러웠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아래층 남자는 내려갔다. 두 번째도 친척들이 와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그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이야기를 하느라 조금 시끄러웠을 것이다. 인정을 하고 집에 있던 이모님이 나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니 앞으로 조심하라고 하면서 내려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예전에도 층간소음 때문에 갈등이 있어서 아랫집 남자는 재판까지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상습적인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활소음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난동을 부린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도 시끄러웠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래층 남자의 말을 신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과할 생각도 없다. 며칠 지난 후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3자 대면을 하자는 것이었다. 관리사무소 앞에서 우리 부부는 아래층 남자를 마주치게 되었는데, 입구에서부터 그 남자는 우리에게 ‘이 새끼, 저 새끼’, ‘어린것들이 싸가지가 없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내가 왜 나가냐?’, ‘내가 죽어야 나갈 거다’, ‘내가 경고했는데 너희들은 왜 미안해 안 하느냐’라고 막말을 하니 대화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말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관리소장의 말에 따르면 세 번이나 이사 조치를 해주겠다고 했는데도 본인이 안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랫집 남자는 관리소장이 이사를 거부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거짓말탐지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제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경찰서에서 대화로 해결하는 회복적 경찰제도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직장 사람들과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화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다. 내 생각에도 대화나 약속이 크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우리 귀여운 꼬마 아이는 자다가 깨더니 갑자기 운다. 그리고 어떤 날은 “엄마, 조용히 다녀. 아저씨가 쫓아와!”라고 말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나와 남편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추가 진료도 예약되어 있다. 아이도 트라우마 검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일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아직 검사받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변호사사무소를 찾았다.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일단 녹음파일, 동영상, 사진 등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의 충격은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걱정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실형을 받더라도 나와서 보복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된다. 사실 소동이 있던 다음 날 ‘집들이’가 계획되어 있었다. 지인들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취소하였다. 솔직히 이사하자마자 거실 바닥에 얇은 매트와 두꺼운 매트를 깔았고, 슬리퍼를 신고 조용히 걸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는데, 너무하다는 생각과 억울한 마음이 든다. 


대화 진행자라는 사람의 연락이 왔다. 아랫집 사람과의 대화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약간 궁금하기도 하다. 사전만남을 하고 나서 상대방을 만날지 말지 결정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일단 만나보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어린 딸을 봐줄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가도 되냐고 물었는데, 데려와도 된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아이와 며칠 전에 식구가 된 강아지까지 데리고 약속된 장소인 경찰서로 향했다. 진행자는 대화모임의 취지가 피해자의 회복이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하면서, 지금까지의 피해를 경청해주었다. 모두 말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나는 “아래층 남자가 직접 올라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비실이나 관리사무소를 통해서 연락하도록 약속받고 싶어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과할 생각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진행자는 아래층 남자가 피해자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면서, 대화의 진행이 직접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자와 대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신랑과 상의하여 직접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대화모임의 분위기는 관리사무소에서 대화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내 입장에서 그날 있었던 일과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힘들었던 시간을 모두 이야기할 수 있었다. 처음에 아랫집 남자가 자신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상한 대로 대화가 힘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래층 남자는 자신이 참기 어려울 정도의 소음(쇳덩어리 소리, 걷는 소리, 운동하는 소리 등)을 들었고, 우리 아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다니고, 어른들의 걷는 소리인 ’쿵쿵‘하는 소리에 본인이 키우는 애완견도 깜짝 놀래서 짖을 정도였다고 했다. 살다 보면 어느 정도의 소리가 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라 정말 참기 어려웠다고 했다. 지금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빈집을 얻어 텐트를 치고 전기장판을 틀고 생활하고 있으며, 몸이 많이 아파서(뇌졸증, 혈압, 당뇨 등) 매달 검진을 받기 위해 2,3일 정도 아파트에서 잠을 자는 정도라고 했다.


약값으로 한 달에 40,50만원 정도 지출하고, 몸이 아파서 한 달에 1주일 정도 일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아래층 남자의 배우자는 세 살 때 머리를 다쳐서(뇌졸중) 잘 걷지 못하고, 걷다가 잘 넘어진다고 했다. 타지의 아파트로 이사하려고 하는데 보증금 1천 8백만 원 정도가 부족해서 이사할 것인지를 다음 달에 결정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아래층 남자의 배우자가 눈물을 흘리며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아저씨가 성질을 못 참아 그러니 용서해주세요. 어린아이가 상처받은 것이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진심어린 사과의 말을 하였을 때, 나도 눈물이 났다. 그리고 아래층 남자는 경비실과 관리사무소에 먼저 연락을 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러면 제 전화번호를 드릴 테니 저에게 직접 전화해주세요.”라고 제안을 했고 아래층 남자도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을 종이를 달라고 하여 전화번호를 나에게 주었다. 아래층 남자는 “재송함니다”, “노력하개씀니다”, “다하개씀니다”라고 적어서 제출하였다. 틀린 맞춤법이지만 진심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지에 나는 ‘막말하고 경솔하게 이야기하였던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과를 받았구요. 애기가 상처를 받은 부분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기에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관계회복에 관한 질문에는 ‘좋은 취지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남편도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다’, ‘현재도 조심하고 있지만 이번 계기로 인해 앞으로 더 조심하고 주의하고 좀 더 생각하고 배려해야겠다’, ‘대화로 해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어서 조금이나마 갈등이 해소된 것 같다’고 적었다. 이렇게 대화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조정사례를 피해자의 시각에서 각색한 것입니다.

*황태진 선생님은 현재 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복적 경찰활동 조정위원으로 활동중이시며 회복적정의연구소 산하   

 회복적사법연구회에서 회장을 역임하고 계십니다.






위의 글은 [RJ 저널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독자 투고는 누구나에게 열려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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