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저널 12월호] 회복적 경찰활동 - 가정폭력 조정 사례 _ 주선희 (회복적경찰활동 대화모임 진행자)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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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경찰활동 - 가정폭력 조정 사례


주선희(회복적정의 실천가)



사건

 

혼인한 지 50년 된 부부 사이인 남편 손00(77세)과 아내 이00(75세)는 결혼하고 신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잦은 외도로 다툼이 많았고, 그러던 중 남편은 10살 연하의 여자와 동거를 하며 25년 가까이 떨어져 살게 되었다. 최근 1년 전 합가를 하게 되었고, 현재 자녀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따로 살고 있다. 현재는 부부만 같이 살고 있는데,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생활 습관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부부는 각방을 쓰며 지내고 있는데, 청소가 깨끗이 되어있지 않으면 평소에도 아내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청소를 할 때 걸레로 방을 깨끗이 닦고 방 정리를 하라는 아내의 말이 불편하던 중 사건이 있었던 2021. 06. 27. 02:00경에도 자고 있는 남편을 향해 걸레를 던지며 방 청소를 하라고 했고, 너무 이른 새벽부터 아내가 청소를 하라고 잔소리를 시작해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는데, 9:00경 다시 집안일 문제로 다투던 중 남편이 아내의 팔을 잡아채며 넘어뜨린 후 손등 부분을 폭행하였으며, 연이어 머리채를 잡아 뜯는 등의 방법으로 아내를 폭행한 사건이다.

 

남편의 외도로 떨어져서 생활할 때, 남편 명의로 된 아파트를 아내 명의로 돌려 놓았지만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많이 내고 아이들 양육비를 전혀 주지를 않았다. 아내 혼자 1남 2녀의 자녀를 양육하며, 남편이 쓴 대출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아내는 한눈을 팔 여유도 없이 앞만 보며 지금까지 살았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젊어서 혼자 아등바등 살았던 자신이 불쌍하고 바보같이 살았던 자신에 대해 화도 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세월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르게 자라준 자녀들 덕분이라며 힘든 가정 형편에도 서로 의지하며 잘 자라준 자녀들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남편과 잘 지내는 것이 자식들 보기에도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지금 현실이 답답하고, 남편을 보면 그동안 받지 못한 사과도 받고 싶고 긴 세월 아내 혼자 지켜온 가정에 고마움을 남편이 모르는 것 같아 섭섭하다. 그리고 폭행사건으로 이웃들에게 시끄럽게 싸운 것이 부끄럽고 다시 그 이웃들 얼굴을 편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폭행과 폭언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가해자

 

경찰에 조사를 받게 된 손00은 이제 자신의 잘못이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교회 다니는 다른 사람에게 밝혀진 이상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후회와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내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고 당분간 누구와 만나는 것도 자제했다. 오해나 비난으로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했다며 과거의 일로 오해를 해서 이번 일을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억울함도 있다. 이야기가 부풀려지는 것 같고, 아내가 매일 하는 “외도를 해서 죄를 지으면 천국 못 가고 죽을 때까지 죗값을 치러야 한다”라는 말이 듣기 싫다. 새벽 2시 잠을 자고 있는데, 아내가 청소하라고 걸레를 던지면서 시작된 일인데, 폭력을 쓰고 화를 냈다는 이유로 아내의 원인제공 부분은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도 있다. 이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회가 될 때 잘못한 부분을 사과하고, 재발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고, 이런 과정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피해자

 

한편 경찰 신고 후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이00은 남편과 딸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남편이 자신에게 “미안하다”라고 표현한 것이 결혼 생활 중 처음 듣는 사과였다. 평소에도 남편은 화가 나면 폭행과 폭언을 하는 습관이 있어서 남편이 화가 나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 자신이 희생하며 가정을 지킨 것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분노와 억울함이 찾아오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가장 힘든 것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자녀들의 가족과 사건 당일 소란을 일으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부부의 다툼이 알려져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젊어서부터 혼자만 생각하고 즐기며 살아온 남편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가 폭발하여 혼잣말을 하며 폭언을 하는 날이 많아지고, 그러다 정말 남편도 화가 나게 되면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불안감과 함께 슬픈 생각만 날 뿐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평소에도 남편과 대화가 별로 없어서 그동안의 잘못을 자신에게 표현한 적이 없다며 지금이라도 남편이 가정을 소홀히 하고 외도를 했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남은 생은 가족들에게 집중하고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표현하며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다고 한다.

 

 

회복적 대화모임에 의뢰되다

 

경찰에 사건이 신고가 되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가정폭력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경찰의 신고만으로 결코 아내가 회복되거나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서로의 불편했던 마음을 깊이 있는 대화로 연결하는 것이 힘들었다. 경찰서에서 시행되고 있던 회복적 대화모임 절차 덕분에 그동안 상대가 불편할까봐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각각의 상황과 피해(영향), 그리고 그동안 겪어왔던 감정과 어려움에 대해 들어보고 본인들이 원하는 최선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회복적 질문을 통해 고민하게 도와주었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서로의 약속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결국 고민 끝에 양측 당사자들이 만나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피해자 가해자 한자리에 모이다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서 열린 회복적 대화모임으로 그동안 각자가 아프고 힘든 기억이지만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은 피해자인 아내는 이번 사건과 남편의 외도로 힘들었던 지난날의 아픔과 분노를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따지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던 그 많은 분노와 울분, 억울함을 눈물과 함께 쏟아놓고 보니 모임 자리는 이미 후회와 연민의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는 무거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던 가해자 남편은 본인의 외도로 그 사이 가족들과 아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려고만 했던 모습을 후회하며 다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이전에 한번 사과한다고 말은 했지만 가장 큰 위로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내를 위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자리가 되었다. 처음에 아내는 남편과 서로 불편할 수도 있는데 대화가 과연 잘 진행될지와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가 오해 없이 전달이 될지에 관한 의문이 생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남편이 잘 견뎌주었고, 또 앞으로의 다짐으로 폭행과 폭언이 반복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신뢰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임의 결론을 정리하면서 결혼하고 두 사람이 다정하게 대화하고 편안한 관계로 지내지 못해서 자식들 보는 것도 미안할 지경인데, 늙어서까지 싸우며 좋지 못한 관계로 지내는 것이 많이 미안했다며 이제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자녀들에게도 편안한 부모로 지내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편안한 이웃으로 지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듣던 남편 또한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말은 “지나간 것은 잊기를 바란다. 계속 생각하면 무슨 이득이 있겠나.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 앞으로는 안 그럴 테니까 믿어주길 바란다.”였다. 그 말을 듣던 모임의 모든 사람은 두 사람이 생애 마지막은 서로 의지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며 응원을 하게 되었고, 단순하게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피해와 아픔을 직접 듣고 그것을 인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심어린 마음의 이야기라는 것을 모두 느꼈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RJ 저널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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