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소년법 폐지 주장을 바라보는 단상_ 이재영 이사장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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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 폐지 주장을 바라보는 단상


이재영 (사단법인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이사장)



기쁜 성탄절을 지나자마자 초등 5학년 여학생이 자신의 부모의 이혼을 험담한 또래 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12살 아이가 저지른 끔직한 행동... 한 순간에 동갑내기 아이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다.

담당경찰서에는 언론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폭주하고 관할 교육청은 비상사태라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평소 이 아이들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나? 보호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왔나? 충격과 슬픔, 두려움 속에 있을 가족은? 학교는? 친구들은? 이웃들은....어떻게 해야 이들의 깨진 공동체를 돌볼 수 있을까? 앞으로 경찰은, 교육청은, 시청은, 지역사회는, 관련기관들은, 교회는, 이웃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질문과 채워져야 할 필요들이 남겨졌다. 이 비극의 현실에서 우리사회는 어떻게든 답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언론에 반복해서 올라오는 논조는 딱 한가지다.

 '14세 미만이라 처벌 안 받는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기자와 언론사가 있는데 이런 문제를 보는 관점이 한결 같이 모노렌즈인지 그저 놀랍다. 그 가해학생이“난 촉법소년에 해당되니 처벌 안 받아.”라며 또래친구를 죽였을까? 처벌나이가 어려지면 이런 일이 사라질까? 우리가 촉법소년 나이를 몇 년 더 낮추고 아이들에게 “이제 너희도 형사처벌 받으니 친구들 때리거나 죽이지 마라. 그러면 큰 벌 받는다'고 가르칠 것인가?


 무엇인가 변화하길 바란다면 근본적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12살이면 아직 어른들과 사회의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다. 처벌도 처벌이지만 우리사회에 자꾸 늘어가는 정신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12살짜리 아이에게 남을 죽일 만큼 강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주변 환경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같은 반 아이들과 학교공동체는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가. 나는 이런 근본적 부분에 대해 고민을 던지고 공동체적 대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캐나다의 모호크 족 언어 카니엔케하(Kanien' Keha)에는 법과 정의라는 뜻의 단어가 없다고 한다. 가장 가깝게 번역될 수 있는 말이 '함께 가장 잘 사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진정한 법과 정의의 의미가 아닐까?


만약 예수가 여기에 있었다면 분명 피해학생의 장례식장을 찾아 위로하고, 가해학생의 피 묻은 손을 씻겼을 것이고, 이들을 방치해왔던 어른들에게 호통을 쳤을 것이 틀림없다.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와 분류심사원으로 간 아이, 남은 가족과 학교 공동체, 벌어진 비극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모두에게 주님의 특별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들이 함께 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2019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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